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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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수사본부, 경찰의 역량을 증명하라(경향신문, 2021.04.02)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1-04-05 15:00
조회
140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20여년에 걸친 검경 수사권 조정 끝에 태어났다. 경찰에 독자적 수사권을 주면서 일종의 안전장치로 만들었다. 그러나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 같은 경찰관들이 똑같은 일을 한다. 경찰청 수사책임자 계급을 한 단계 올리고 국가수사본부장을 개방직으로 임명한다는 것 말고 눈에 띄는 건 없다. 부서 이름이야 아무래도 좋다. 경찰청 수사국이 하든,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하든 같은 경찰일 뿐이다.


 달라진 건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경찰이 명실상부 수사의 주체로 거듭났다는 거다. 권한이 없다며 억울하면 검찰에 가서 말하라는 식의 뻔한 변명은 통하지 않게 되었다. 경찰로서는 2021년이 책임 수사 원년이 되는 거다. 국가수사본부가 어떻게 하느냐에 경찰의 명운이 달려 있다.



사진 출처 - 경찰청


 범죄 수사에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경찰만을 위한 수사다. 2015년 1만4556건이던 공무집행방해죄 사건은 2019년 1만1654건으로 20%나 줄었다. 공무집행방해죄 사건 피해자의 다수는 경찰관이다. 구속 건수 감소폭은 훨씬 크다. 같은 기간 1437건에서 577건으로 60%나 줄었다. 박근혜 정권에서 문재인 정권으로 바뀐 것이 경찰활동에 영향을 미쳤다. 경찰관을 피해자로 하는 모욕죄나 명예훼손죄 적용도 정권에 따라 급격하게 변한다. 이런 식의 자의적 법집행, 경찰만을 위한 수사는 없어져야 한다.


 한국은 치안여건이 좋은 나라다. 이를테면 가장 끔찍한 범죄, 살인을 보자. 2015년 919건이던 것이 2019년엔 775건으로 줄었다. 4년 만에 16%나 감소했다. 그러나 연간 775건도 살인미수를 포함한 거다. 살인이 자행된 기수사건만 친다면 297건으로 줄어드는데, 여기에도 자살교사·자살방조 등이 포함되었으니, 실제 살인사건은 연간 225건에 불과하다. 일본 다음으로 살인사건 발생률이 낮고, 검거율은 늘 세계 최고다. 강도사건은 2015년의 1445건이 2019년엔 798건이 되었다. 4년 만에 45%나 줄었다. 믿기지 않는 놀라운 감소폭이다. 폭력·절도 등 다른 강력범죄들도 마찬가지다.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범죄 자체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치안 상황이 매우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그런데 시민들은 세계 최고의 치안 현실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꼭 필요한 수사가 제때 진행된다는 믿음, 경찰의 수사역량이 정확하게 발휘된다는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야말로 경찰의 명운을 걸 때다.


 여전히 검찰개혁 요구가 거센 것은 검찰이 자초한 것이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기 조직만을 위해 휘두르는 행태가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일깨워주는 거다. 검경 수사권 조정이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립으로 끝난 게 아니라, 수사권과 기소권의 완전한 분리가 검찰개혁의 핵심이 되었다.


 경찰도 마찬가지다. 김창룡 경찰청장은 “경찰의 수사역량을 온전히 증명해내야 할 첫 시험대에 올랐다”고 했다. 지난 월요일 경찰지휘부 회의에서 했던 말이다. LH 임직원들의 투기 의혹 사건은 국가수사본부 설립 이후 처음 떠맡은 국민적 사건이다. 성역 없는 수사, 부패와 비리의 뿌리까지 뽑아내는 철저한 수사를 하면 경찰은 국민의 신뢰라는 엄청난 자산을 얻게 될 것이다. 수사 성과를 내지 못하면 국가수사본부는 시작부터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될 것이다. 수십년 동안 경찰 주변을 맴돌았던 ‘자질미달론’이 틀리지 않았다며 수사권을 다시 조정하자는 목소리도 나올 거다. 말에 대한 책임은 무섭다. 경찰청장의 말이 수사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엄청난 후폭풍이 불 거다. 모처럼 경찰에 주어진 새로운 권한도 얼마든지 거둬들일 수 있다. 제도는 늘 변하기 마련이다.


 민주공화국의 주권자들이 경찰 수사를 주시하고 있다. 인권 보장을 위한 적법절차를 잘 지키면서도, 증거를 충실하게 모아 악랄한 투기세력의 뿌리까지 파헤쳐 들어가야 한다.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지 말고 여야, 지위 고하 등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 LH 사태 수사를 통해 과감하게 성과를 내야 한다. 우리 사회에 공정한 원칙이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고, 범죄자들에게는 확실한 법률적 응징을 통해 정의가 살아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공무원이나 LH 직원들의 불법적 욕심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보여줘야 한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시작부터 중요한 시험대에 서게 되었다. 조직 출범부터 유명무실한 조직이 되어 곧 문을 닫을지, 국민의 사랑과 신뢰로 거듭나는 탄탄한 조직이 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어떻게 되든 그건 모두 경찰청의 의지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