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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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울 좋은 무기계약직(경향신문, 2019.07.11)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9-07-12 10:54
조회
138


 

한국 사회는 비정규직 때문에 신음하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를 기준으로 친다면 벌써 20년이 넘었다. 당사자와 가족이 아픔을 겪는 것은 물론이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차별은 양극화로 이어진다. 한국 사회의 계급 분화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건널 수 없는 큰 강을 사이에 둔 것처럼 각기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희망마저 사라지고 있다는 거다. 희망이 없으니, 한국 사회 특유의 활기도 사라진 느낌이다. 고용 형태의 차이는 꼭 소득만이 아니라, 건강과 수명, 주거와 환경, 교육, 사회적 평판 등 모든 분야에서의 삶의 질을 가른다.


문재인 정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부터 해결하겠다고 했다. 모든 비정규직 문제를 한꺼번에 풀 수는 없겠지만, 공공부문부터 모범을 세워 나가겠다는 거다. 공공분야에서 81만개의 좋은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약속도 했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이 한창이던 지난주.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용어부터 잘못이라고 했다. 비정규직이 아니라, 무기계약직이라는 거다. 기한을 정하지 않는 계약직으로 사실상 정년까지 보장되니 비정규직이라 부르는 것은 잘못이란다.


다수의 비정규직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것은 맞다. 2007년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마련한 이후, 정부는 같은 방향으로 꾸준하게 정책을 추진했다. 하지만 새로운 이름 말고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비정규직의 무기계약직화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도 줄곧 이어졌다. 문제는 실속이 없다는 거다. 노동조건이나 삶의 질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은 “우리는 무기계약직이라는 이름으로 평생 비정규직이 되었다. 또 하나의 계급이 되었다”(강규혁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위원장)고 탄식한다. 문재인 정부 역시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노동조건은 그대로 둔 채, 정규직 전환이라는 허울에만 매달리고 있다. 청와대 상황판에 걸린 정규직 숫자는 늘고 있을지 모르지만, 허울뿐인 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은 달라지지 않고 있다.


정부가 그토록 내세우는 고용안정만 해도 그렇다. 무기계약직 노동자의 신분은 여전히 불안하다. 해고는 쉽고, 해고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안전장치는 부실하기 짝이 없다. 공무원처럼 신분 보장이 되는 것도 아니다. 어느 부처나 엇비슷한 ‘공무직 및 기간제 근로자 관리규정’을 보면, 무기계약직은 해고, 정직, 감봉, 견책 등 네 가지 징계를 받을 수 있다. 공무원에 대한 징계가 파면, 해임, 강등, 정직, 감봉, 견책 등 여섯 가지인 것에 비하면 두 가지나 부족하다. 게다가 징계를 결정하는 단위도 다르다. 무기계약직 노동자는 해당 기관에서 곧바로 징계를 의결할 수 있다. 관계 공무원들이 모여 결정하면 그만이다. 반면 공무원에 대한 징계는 징계위원회를 중앙기관에 둔다. 징계를 받은 다음의 구제절차도 다르다. 무기계약직도 공무원처럼 재심을 청구할 수 있지만, 재심은 1심 위원 중 위원장을 제외한 위원들만 다른 사람들로 바꾸고 진행한다. 상급 기관에서 재심을 하는 게 아니라, 징계를 의결한 그 기관이 재심도 맡는다. 약간의 형식만 달리할 뿐, 1심 결과가 재심에서 뒤집힐 가능성을 아예 차단하는 거다. 반면 공무원은 인사혁신처 소청심사위원회에서 재심을 다룬다. 인적 구성은 물론 부처까지 다른 곳에서 다른 판단을 구할 수 있는 것이다.


규정이 이러니, 무기계약직 노동자는 기관장이나 다른 공무원들에게 밉보이면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다. 최근에 만난 한 무기계약직 노동자의 사례가 꼭 그랬다. 그는 중앙부처 소속으로 10년 넘게 일했지만, 지난달 해고되었다. 그 노동자가 건넨 징계의결서는 읽기조차 민망한 수준이었다. 불화를 조성하고 유언비어를 유포하고 갈등관계를 조장했다는 등의 혐의가 잔뜩 적혀 있었지만, 대개 귀에 걸면 귀걸이식이었다. 다른 사람의 생계를 박탈하는 의결서치고는 형식과 내용이 모두 엉망이었다.


무기계약직에 대한 규정은 공무원들이 만든 것이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는 일정한 구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공무원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합리적 구분과 차별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무기계약직의 노동조건은 그야말로 차별적이다. 일단 급여 차이가 너무 크다. 9급 공무원과 비교해도 실질임금은 절반 남짓에 불과하다. 공무원과 달리 승진도 승급도 없으니, 그 차이는 갈수록 커진다. 30년을 일해도 급여는 호봉만 반영되어 고만고만한 수준이다. 게다가 가족수당이나 자녀학비보조수당 등 공무원들이 챙길 수 있는 수당도 받지 못한다. 급여를 받기는 하지만, 이마저 인건비 항목이 아닌 사업비 항목에 편성되어 있다. 예산 편성에 따라 사업비는 얼마든지 줄어들 수도 있다. 노동을 제공하고 받는 임금이 인건비가 아닌 사업비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더 심각한 것은 아예 보수 규정조차 없다는 거다. 공무원연금에도 가입할 수 없다. 임금을 사업비가 아닌 인건비로 편성하는 쉬운 일조차 하지 않는 까닭을 모르겠다.


대부분의 무기계약직은 공무원이 하기 싫은 일, 부담스러워하는 일을 맡고 있다. 누군가는 꼭 챙겨야 하는 일들이다. 숙련되어야만 가능한 업무가 대부분이고, 대민 접촉 업무도 많다. 그런데도 무기계약직은 정원에 반영되어 있지도 않다. 이런 식의 푸대접은 일상화되어 있다.


정부 차원의 통일된 규정도 없으니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당장 막대한 예산을 들이는 것은 어렵다 쳐도, 방향을 제대로 잡고 관련 규정부터 다듬어 차별을 줄여 나가는 것은 당장 할 수 있는 일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비정규직이 당하는 노골적인 차별을 공공분야에서부터 줄이는 것이다. 그래야 사영 기업들을 견인할 수 있다. 공공부문부터 비정규직 문제를 풀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방향은 옳았다. 문제는 그에 걸맞은 실행이 뒤따르지 않는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