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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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싸워 이기려면(경향신문, 2019.08.08)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9-08-09 17:27
조회
85


 

한·일전. 일단 국면은 경제전쟁처럼 보인다. 일본 아베 정권의 도발에 한국이 대응하는 식으로 싸움이 진행되고 있다. 대통령부터 확고한 의지를 보이고, 2019년은 1919년과 다르다는 결의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위기를 기회로 삼자는 다짐도 눈에 띈다.


아베 정권의 도발에 대해 시민사회는 단호했고 또 지혜로웠다. 일본 국민과 아베 정권은 나눠 봐야 한다며, 서울 중구청이 내건 일본 반대 깃발을 내리게 했다. 보이콧 운동은 민간의 몫이라며 여론을 일으킨 것은 놀라웠다. 시민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며 곧바로 깃발을 내린 중구청의 대응도 좋았다. 꼭 중구청이 잘못했다는 게 아니라, 보다 성숙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집단지성의 발현이었다.


그렇다. 이번에는 이겼으면 좋겠다. 아베 정권의 오만한 행패를 묵과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싸움에서 이기려면, 무엇을 위해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부터 점검해야 한다. 시작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배상청구권을 보장받을 수 있냐는 법리논쟁이었다. 한동안 오락가락하긴 했어도 대법원은 청구권협정과 별개로 개인 청구권은 살아 있다고 판결했다. 국가 사이의 채권·채무관계는 풀었을지 몰라도,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와 기업에 위자료를 청구할 수는 있다는 거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피해자들의 일본 기업 재산 압류와 매각 절차가 진행되었다. 판결에 따른 민사 집행을 하는 데 행정부의 역할은 전혀 없다. 삼권분립은 민주주의의 대원칙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일본의 경제보복은 뜬금없고 가당치 않은 것이다. 반성조차 없는 가해자의 횡포일 뿐이다. 그게 북한과의 국교 정상화를 염두에 둔 것이든, 평화헌법을 개정하려는 정치적 속내 때문이든 상관없다. 전쟁을 일으키고 이웃 나라를 강제 점령해 식민지로 만들어 수탈했던 전범국가가 취할 행보는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니 양식 있는 시민들이 분노하고 이번에는 제대로 싸워보자고 벼르는 거다.


일본 정부는 제국주의 침략에 따른 인권문제를 간단하게 경제전쟁으로 바꿔 버렸다. 이른바 프레임 전쟁에서 주도권을 잡으려는 술책이다. 상대가 프레임을 바꿔 자행한 경제도발에 제대로 맞받아 싸워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대책을 마련하고 또 다른 도발에도 대비해야 한다.


하지만 이 싸움이 원래 가해자의 책임을 묻는 인권문제에서 시작됐다는 것은 결코 잊어선 안된다. 아니, 단지 잊지 않는 데서 멈춰선 안된다. 경제전쟁의 프레임을 되돌려 가해자가 책임을 지기는커녕 반성도 사과도 없으며, 나아가 객관적 사실조차 부인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내부적으로는 1965년 이후 우리 정부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일본 제국주의에 희생당한 피해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거의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것도 되짚어야 한다. 정부의 역할이 부족했기에, 피해자들은 법원을 통한 구제라는 우회로를 선택했던 거다. 아쉽게도 지난해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정부 차원에선 별다른 대응이 없었다. 기본적인 인권문제에 대해 미온적이었다. 생존 피해자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구체적인 방안을 갖고 보다 신속하게 움직였어야 했다.


가해자가 반성조차 없고, 엉뚱한 경제보복이나 일삼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방의 비도덕성, 반역사성, 그리고 반인권만을 탓하고 있을 수는 없다. 일본과 싸움을 벌이는 한편, 피해자들을 구체적으로 도울 방법도 찾아야 한다. 우리 국민의 피해를 우리 정부가 먼저 걱정해야 하는 당연한 책무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래야 인권을 소중히 여기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과거사를 이렇게 푼다는 것도 보여줄 수 있다. 두 나라 사이의 싸움을 지켜보는 여러 나라의 정부와 시민들에게도 한국이 인권문제에 대해 진정성을 갖고 대응한다는 점을 확인시켜줄 수 있어서 좋다.


솔직히 말하면, 인권문제를 두고 일본과 아옹다옹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풍경이다. 일본의 정치지도자 아베 신조는 외할아버지와 아버지 덕에 정치인이 된 전형적인 도련님이다. 아베 신조는 아버지 아베 신타로가 외무대신이던 시절, 그의 비서로 정계에 입문했다. 아베 신타로가 장인 기시 노부스케 총리의 비서를 지낸 것과 같은 방식의 정계입문이었다. 아베 신조는 2021년까지 총리직을 예약해놓았으니, 이대로라면 역사상 최장수 총리가 된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유명한 가쓰라 다로 총리의 20세기 초반 기록을 넘어서는 거다.


단 한 번의 예외가 있었을 뿐, 한국에서라면 아베식 성취는 불가능했을 거다. 문재인 대통령의 외할아버지나 아버지가 누군지 아는 사람은 없다. 집안 내력에 따른 후광 따위는 없었다.


두 나라 헌법만 봐도 금세 답을 찾을 수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고,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 헌법 제1조는 일본왕이 국가와 국민 통합의 상징이라 규정하고 있다. 흔히 말하는 평화헌법 조항인 제9조에 이르기까지 제1조부터 제8조까지는 모두 일본왕에 대한 규정들이다. 설명이 필요 없는 극단적 대비다. 적어도 국가체제와 민주주의에 관한 한 일본은 한국의 경쟁 상대가 아니다. 일본에는 흔한 국가인권기구도 없다. 일본은 여전히 봉건시대에 머물러 있다. 그래서 아베 신조의 직함은 내각총리대신이다. 일본왕의 신하일 뿐이다.


당장의 경제전쟁에서 이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일본과 달리 한국에서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인권문제를 풀기 위해 진지하게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지형을 만들 수 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복수가 아니라, 일본 정부는 상상도 못할 새로운 방식으로 싸우는 거다. 우리의 진지한 노력은 일본 시민들에게도 새로운 영감을 줄 수 있을 거다. 괜히 무시하거나 괴롭혀도 좋을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 따라 배우고 싶은 부러운 나라가 되는 게 진짜 이기는 거다. 이번에는 제대로 이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