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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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감사, 판을 다시 짜야 한다.(시민의신문 기고)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3 13:35
조회
212

국정감사, 판을 다시 짜야 한다


[기고]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


작성날짜: 2004/10/22
오창익기자


국정감사가 끝났다. 개혁세력이 원내 다수를 차지했다고 평가받는 17대 국회의 국감이 끝났다. 지난 3주 동안 언론은 국감의 이런저런 소식을 자세히 보도했다. 잔치는 요란했고 기대도 적지 않았지만, 막상 국감이 끝나고 난 다음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없다. 온통 색깔론으로 범벅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저급한 정치공세를 빼고는, 김용갑 의원이 '쥐가 먹고 죽었다는' 4급수를 마셨다는 해프닝 정도가 기억에 남아 있을까.


국감을 통해 국회의원들이 얻고자 했던 것은 대체로 두 가지였던 것 같다. 하나는 모처럼의 기회를 살려 오로지 자신의 홍보에만 열중하는 것이다. 국감장마다 이들이 뿌린 보도자료가 넘쳐난다. 기자들의 시선을 끌기 위한 현란하고 자극적인 표현들이 넘쳐나는 보도자료는 사실 그 누구의 시선도 끌지 못한 채 폐지가 되어 버리기 일쑤이지만, 그래도 국회의원들은 혹시 하는 심정으로 보도자료를 뿌리고 또 뿌려댄다. 국감장에서 언론의 시선을 잡기 위해 퍼포먼스 한두 개쯤은 기본이다.


또 하나는 자신을 국회의원으로 만들어준 정당을 위해 충성을 다하는 것이다. 이들은 당리당략을 위해서 멸사봉공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대학교수까지 지냈기에 문자해독에 있어 별 지장이 없었을 한 국회의원은 멀쩡한 국사 교과서에 씨뻘건 색깔을 덧칠해버렸다. 전혀 친북적이지도 좌경적이지도 않다는 합리적인 지적에 대해서 "나는 그렇게 읽었다"고 호기있게 말하는 대목에서는 우리는 할말을 잃게 된다.
검사출신의 한 국회의원은 국가인권위 국감에서 "왜 인권위가 인권문제도 아닌 국가보안법 에 대해 언급하냐"고 호통을 친다. 차라리 인권위원장의 월급이 아깝다며 퍼붓는 인신공격이 더 그럴 듯해 보일 지경이다.


추석 연휴도 반납한 보좌진의 밤샘 결과가 겨우 이런 저급한 색깔론 공세였다니 기가 막힐 지경이다. 국민의 편에서 피감기관의 개혁을 위해 성실한 준비를 했던 의원들도 있었겠지만, 껀수 챙기기 식의 폭로와 당리당략만을 위한 색깔론 공세는 도대체 그런 의원들이 있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
국감을 진행하는 방식도 문제다. 20일 밖에 안되는 짧은 일정에 하루에 한두 개의 피감기관을 살피는 일은 애초부터 무슨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방식이다. 수박 겉 핥기 식의 감사가 반복되고, 이러한 생리를 잘 아는 피감기관들은 오늘 하루만 잘 참으면 된다는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기대를 모았던 17대 국회의 국감이 끝났다. 지금 우리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국회의원들은 모처럼 펼쳐진 판에서 자신과 소속 정당만을 위한 푸닥거리를 펼쳐서 좋았을 것이고, 피감기관은 단 하루의 잔소리를 참는 것으로 면죄부를 받는 기분이어서 좋았을 것이다. 언론도 오랜만에 집중할만한 기사거리를 찾을 수 있어서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국민들은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빈손이 되었다. 국민의 일꾼들은 잔뜩 선물보따리를 챙기고, 그동안 수고했다며 외유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는 이때, 국민들은 국감의 성과를 단 하나도 기억하지 못한 채, 그저 허탈하기만 하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민주노동당 등 정치권 일각에서 주장하는 상시 국감은 문제를 극복하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국회는 국정 전반에 관하여 소관 상임위원회별로 매년 9월 10일부터 20일간 감사를 행한다"고 못박고 있는. 현행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제 2조부터 개정해야 한다. 국감은 필요한 경우 언제든지 진행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감이 국회의 일상활동이 될 때, 비로소 국감의 고질적인 구태가 청산될 수 있다. 그래야 피감기관을 제대로 감시하고, 피감기관의 개혁도 도울 수 있는 이른바 '정책 국감'이 실현될 수 있다. 언제까지 그들만 요란한 잔치를 벌이고,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은 빈손으로 허탈해할 수는 없지 않은가. 고칠 것이 있으면 지금 당장 고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