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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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에게는 인권이 없다는 똥같은 소리(05.01.24)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3 14:04
조회
385

군인에게는 인권이 없다는 똥 같은 소리


지난해 육군본부의 초청으로 전방부대를 돌아본 적이 있다. 무엇을 하든지 남는 것은 사진밖에 없다면서 참가자들이 군인들과 사진을 찍는 순서가 있었다.


촬영을 맡은 사진병은 깍듯이 경례를 붙인 후에 절도있는 목소리로


“자, 준비되셨습니까? 하나 둘 셋! 한 다음에 사진촬영을 하겠습니다”


“하나, 둘, 셋!”


“예, 감사합니다.”


하면서 사진촬영을 끝냈다.


나도 육군 병장 출신인지라 이런 식의 장면이 어색할 것은 없었다. 좌회전이나 우회전할 때마다 “좌회전 하겠습니다. 좌회전 -”이라며 뻔한 소리를 반복하는 운전병이나, 정확히 복명복창을 하는 사진병이 어색할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런데 참석자 중의 한사람이 군기가 꽉 잡힌 사진병을 보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으로 잠깐 어색한 분위기가 되자, 우리를 안내하는 장군은 군에서 사진 찍을 때는 원래 저렇게 보고를 하는 것이라면서 “아무 것도 모르고던철없고 예의도 없는 젊은이들이 군에 와서 저렇게 절도있게 변하고, 또 윗사람과 손님들에게 저렇게 깍듯하게 예절을 차리게 되는 것이 우리 군이 징병제를 유지하는 매우 중요한 효과”라며 설명을 하는 것이 아닌가.


대개들 수긍하는 분위기였지만, 나는 그 장면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날 행사에서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먹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데.


흔히들 군대에는 인권이 없다고 한다. 시민이 군인이 되는 순간 시민권은 정지된다. 군대의 위병소는 시민권을 털고 가는 관문의 역할을 한다. 어쩌면 맞는 말인지도 모른다. 비상시 자기 목숨을 내걸고 적과 싸워야 하는 군인이 시민처럼 자기 권리를 다 행사할 수 있다면 군인에 의지해야 하는 시민의 안전이 위태로워질지도 모른다. 군인 한사람 한사람의 인권을 챙기다보면 전시처럼 정작 군인이 필요한 중요한 순간에 군은 무력하기 짝이 없는 오합지졸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인권이 없는 군대를 어쩌면 당연하게 여기거나 최소한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군에 가는 것 자체가 인권의 정지를 의미하기도 한다. 공부를 하거나 돈을 벌 수도 있는 젊은이들이 정든 가족을 떠나 군부대에서 먹고 자는 일 자체가 인권과는 너무 먼 거리에 있다. 지금이라도 당장 헌법 제 10조에서 37조까지의 기본권 조항을 놓고 군인의 삶을 견주어보면, 겨우 참정권 정도를 제외하고는 온통 군인의 삶과는 배치되는 것 투성이다. 군인에게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헌법 제 10조)도 배제되고, 법 앞에 평등할 권리(11조), 신체의 자유(12조), 거주. 이전의 자유(14조), 직업선택의 자유(15조), 주거의 자유(16조),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17조), 통신의 비밀(18조), 양심의 자유(19조), 종교의 자유(20조) 등 일일이 열거할 필요도 없이 헌법이 정한 국민 기본권의 거의 모든 조항을 비껴가고 있다. 적어도 한국사회에서는 그렇다. 적어도 한국사회에서는 “군인에게는 인권이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최근 논산훈련소에 일어난 인분사건도 군인에게 인권이 없다는 상식을 드러내었다. 이 사건으로 인한 국민의 충격과 분노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만약 중대장이 훈련병들에게 똥을 먹이는 엽기적인 행각 대신 ‘얼차려’라고 부르는 단체 기합을 주었거나, 머리를 몇 대 쥐어 박았다면 사태가 이렇게까지 커지지 않았을 것이다. 단체기합이나 구타가 아니라 우공이산의 교훈을 실천이라도 하듯 말도 안되는 작업이나 오로지 상급자들의 편의만을 위한 작업을 시켰더라도 문제가 이렇게 커졌을까? 문제가 된 것은 ‘군인의 인권’이기보다는 엽기적인 행각이 아닐까?


나는 군대가 아예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있는 현실을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고 해도 군인에게는 인권이란 것이 아예 없다는 지금의 체제와 지금의 생각은 크게 바뀌어야 한다. 아무리 군인이어도 정해진 일과시간에만 군인으로서의 직분을 다하고 일과시간이 끝나면 군인이 아닌 시민으로 지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일과보다는 내무반 생활이 더 어렵고 온갖 인권문제도 내무생활 중에 더 많이 일어난다. 군인에게 엄정한 군기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교육훈련이나 작업 등 일과시간에 필요한 것이지, 편히 쉬면서 내일을 준비하는 내무생활에 왜 엄정한 군기가 필요하다는 것인지 도통 모르겠다. 


이런 이상한 상황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는 모르겠다. 일제시대 군국주의 일본의 잔재인지, 군사독재의 잔재인지는 모르겠지만, 크게 잘못된 것에 대해 우리 사회가 이토록 무관심하고 무신경한 것은 왜일까?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라며 대한민국과의 싸움을 거듭하는 사람들이 가장 곤혹스러워하는 것은 본전 생각에 사로잡혀 무조건 반대하는 예비역들의 거부감이라고 한다. 나도 군에 다녀왔는데, 저들은 무슨 ‘양심’을 내세워 군에 가지 않겠다는 것이냐, 그러면 나는 양심이 없다는 말이냐며 불쾌함을 숨기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설득이 쉽지 않단다. “내가 고생했으니, 너도 고생해야 한다”는 식의 본전 의식은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에만 그치지 않고, 군인권 문제 전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군에 가면 고생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람들, 아무리 반인권적이고 아무리 비합리적인 것도 ‘군대인데’라며 그냥 지나치는 무신경한 사람들이 사실 한국의 군을 훈련병에게 똥이나 퍼 먹이는 똥같은 군대로 만들어버렸다.


논산훈련소 사건이 알려진 다음, 군에 자식을 보낸 엄마들이 똥을 먹은 자식들 생각에 울부짖는 장면이 보도되었다. 아무리 군이 원래 그런 곳이라지만 생때같은 자식이 똥을 먹었을 생각에 몸서리치는 엄마들의 마음, 그 마음이 우리에게는 부족한 것 같다. 군인에 대한 어느 정도의 제약, 구타와 가혹행위는 용납된다는 사람들도, 그 군인이 자기 자식이라면 전혀 다른 생각을 갖게 된다. 따라서 반인권이 용납할 수 있는가 아닌가는 바로 그 군인이 누구인가에 달려 있다.


자, 다시 생각을 정리해보자. 70만명이나 되는 군인들이 누구인가. 우리 모두가 말로는 인정하고 있듯이 그들은 모두 우리의 자식이고, 조카이고, 동생들이 아닌가. 아무리 군대라고 해도 내 자식이 조카가 동생이 그런 몹쓸 일의 희생양이 된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군대에서 군기가 팍 들어서 똑 부러지고 절도있게 생활한다고 해서 사회생활을 하는데 무슨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군기라는 것도 짬밥을 더 먹게 되면 군대 내에서 다 풀어지기 마련이다. 또한 가혹행위가 무서워서 스스로 예의를 갖추고 절도있게 행동하는 타율적인 인간을 길러내는 것이 이 복잡한 사회에서 당사자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군대도 인권의 개념이 도입되어 타율적인 군기를 ‘예의’라고 호도하는 대신, 제대로 된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기관으로 거듭나야 한다. 흔히들 필요악이라고 말하는 군대가 유사시 적과 싸워 이긴다는 잔혹한 목적은 그대로여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