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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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의 인권, 그래도 희망은 있다.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19 17:59
조회
411

2004년 인권, 그래도 희망을 꿈꿔본다.


 이영자교수 : 오국장님 어서 오십시오. 오늘은 새해 첫 방송인만큼, 새해 소망이랄까 이런 것도 좀 말씀해주시고, 또 인권분야에서의 새해 전망도 해주시죠.


오창익국장 : 지난주에 2003년 한 해 동안 인권분야에서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살펴본 결과, 매우 유감스럽게도 인권분야에 있어서 진전은 하나도 없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더 유감스러운 것은 진전이 하나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상당히 많은 인권문제가 뒤로 후퇴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진전은 없었고, 후퇴만 있었다는 것이 대통령, 법무장관, 국정원장, 청와대의 주요 수석까지 전부 인권변호사 출신들이 맡고 있는 상황을 감안할 때는 충격적이기까지 했습니다. 지난해야 이미 지났으니 그렇다 쳐도, 새해부터는 소중한 인권현실이 지난해처럼 뒷걸음질치지 않고, 나아지기만 하는 소망을 갖게 됩니다.


이 : 모든 사람이 인권이 좀 나아졌으면 하는 바램이 있는데, 과연 그런 소망이 얼만큼 현실에 반영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관건인데, 올해의 인권상황에 대해서는 어떻게 전망하나요? <17대 총선이 인권에 미칠 영향>


오 : 앞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만, 과연 인권상황이 좋아질 것인지에 대해서는 좀 회의적입니다. 저는 한국의 인권상황이 좀 더 좋아져야 한다는 당위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는 제자리에 머물거나, 오히려 뒤로 퇴보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하고 있습니다. 우선 올 4월 15일로 예정된 총선이 인권상황에는 매우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물론 총선을 통해 인권문제에 적극적인 국회의원들이 다수 당선되면야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지만, 올해 총선에서 그런 기적이 일어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총선에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 인권상황이 극적으로 반전되지 않는다면, 올 4월 치러질 총선이란 계기는 인권상황을 뒤로 후퇴시키는 부작용을 낳게 될 것입니다. 모든 관심이 총선에 집중되고, 벌써부터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책임있는 인사들이 총선을 챙기게 되면, 자연스럽게 총선과 별 상관없어 보이는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는 더욱 외면당하는 결과가 빚어질 것입니다. 총선은 당연히 민의를 반영하겠지만, 총선이라는 민의 반영의 마당이 오히려 민의를 왜곡하고, 민중들의 소외를 가중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 표를 가진 시민들, 특히 노동자, 농민, 도시서민들이 전체 인구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의 준엄한 심판이 내려지는 총선공간이 오히려 인권상황을 후퇴시킬 것이란 전망이네요. 너무 역설적인 것 아닌가요?


오 : 역설적이지만, 한국의 현실에서는 그렇게 될 것입니다. 물론 큰 물줄기를 바꾸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이 전개될 것이고, 그 노력이 어떤 결실을 맺는가에 따라서는 뜻밖의 성과를 거둘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노력이 전개된다고 하여도 “바꿔!” 열풍이 불었던, 16대 총선만큼은 아닐 것 같은데, 당시 한나라당의 이사철후보를 비롯한 많은 국회의원 후보들이 반인권 전력이 문제가 되어 낙선운동의 표적이 되었고, 우리가 아는 것 같은 결과가 나왔지만, 이후 국회에서 인권문제가 중요한 이슈가 되거나, 국회의원들의 입법 활동에 있어 중요한 잣대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니까 낙선운동의 열기와 국민적 참여와 관심이 정작 의정활동으로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당장 지난 연말만 해도 국회의원의 절대 다수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의 개악안을 통과시킨 것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로지 총선에서 어느 정당이 더 많이 당선되고, 또 어떤 인사가 당선되는가가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되면서, 다른 사안들이 묻혀버리게 될 것입니다. 구체적 인권사안에 대한 관심과 해결 노력은 간곳없이 사라져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 : 총선 때문에 인권상황이 좋지 않은 영향을 받을 것이란 전망을 해주셨는데, 그러면 총선이후에는 어떻겠습니까?


오 : 총선 이후에도 총선의 파장이 상당기간 영향을 미치겠지요. 지난 한 해 동안 새로운 정부의 출범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는 온통 총선에만 집중하는 형국이었으니, 총선이 끝난 다음이라고 해서, 차분하게 민생이나, 인권을 챙기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총선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고, 일부 시민단체들은 당선운동을 전개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기도 합니다. 부디 총선과정이 인권을 진일보시키는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데, 그 전망이 그리 밝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집시법 개악에 따른 인권의 후퇴>


이 : 그럼 총선 말고 다른 문제들은 어떻습니까? 몇 차례 언급하긴 했지만, 집시법의 개정으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 벌어질 것 같기도 한데요?


오 : 걱정이 많습니다. 일부 언론에도 보도되었듯이 집시법 개정에 대해 경찰 상층부와 일선의 경비부대와는 상당히 다른 시각을 갖고 있습니다. 경찰청을 중심으로 한 상층부는 일단 집회와 시위가 원천적으로 봉쇄되니까, 잘 되었다고 환호하는 상황이고, 일선 경비부대는 집시법의 악법조항들로 인해, 집회와 시위를 신고하는 등의 절차에 따라 집회와 시위를 개최하려 하지 않고, 이른바 게릴라 시위처럼 신고 없는 집회와 시위가 많아질 것이고, 이를 경찰력으로 막기는 역부족이란 이유에서 난처한 입장임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 집시법 개정 관련해서는, 경찰 내부에서도 이견이 존재하는군요. 집시법 개정안이 발효되는 것은 언젠가요,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벌써부터 우려도 많은데요.


오 : 우선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즉 집시법이 왜 있어야 하나부터 살폈으면 합니다. 일단 집시법처럼 집회나 시위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 법률 자체에 대한 고민부터 있어야 하는데, 개악되기 이전상태의 것이라고 해도, 이런 종류의 법률이 과연 민주주의 국가, 법치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있는 법률인지가 의문입니다. 우리나라의 집시법과 같은 법률을 갖고 있는 나라는 전세계적으로 독일의 [집회 및 행진에 관한 법률]이 유일한데, 이 또한 한국의 집시법과는 입법취지도 다르고, 연방헌법재판소 등이 결정한 평화구역내에서의 옥외집회와 행진을 금지하도록 한 정도의 금지조항이 있을 뿐입니다. 일본은 집회와 시위에 대해 지방자치단체의 조례에서 규정하고 있고, 영국, 프랑스 등은 아예 관련 법률이 없으며, 미국은 몇 개의 주가 주법의 개별 조항에 집회가 규정되어 있을 뿐입니다. 인권선진국에는 우리의 집시법과 관련 법률이 아예 없다는 것부터 유념해 보아야 합니다. 흔히 집회나 시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외국 경찰은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진압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는 자극적인 장면이 방영되는 텔레비전의 기본적 속성과 일반적인 집회 상황을 구별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에서 빚어진 일입니다. 직접 경험해 본 사람들의 목격담에 의하면 미국은 백악관 코앞에서도 시위를 할 수 있고, 일본에서도 야간에 수천 명이 일본 국회의사당을 에워싸고 집회를 벌이기도 한다고 합니다. 일본 국회는 한국처럼 권위적이지 않아서 본회의장을 보호할 널찍한 마당이나 담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의사당과 의원회관이 바로 도로에 면해 있는데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 : 집회나 시위를 법률로 규정하는 것부터가 잘못되었고, 외국의 사례와도 많이 다르다는 것인데, 우리에게는 왜 그러면 외국의 일면만이 비춰졌을까요?


오 : 지난해 마지막 방송을 들으면서 참으로 공감하는 바가 컸는데, 특히 하종강 소장이 말씀하신 8학군 기자에 대해서 그랬습니다. 제가 새해 첫날 텔레비전 방송을 보면서, 정말 어이가 없고, 화가 치민 적이 있는데, 바로 텔레비전 방송의 새해 관련 보도 때문이었습니다. MBC에서는 환경미화원을 인터뷰하면서 그를 집회 때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고 소개하면서 “집회가 없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새해 소망을 들었고, KBS 한국방송의 (9시 뉴스 다음에 하는) 스포츠뉴스에서는 새해에는 불법 파업이 없었으면 하는 등산객의 인터뷰를 소개했습니다. 그저 가족이 건강하길 바라고, 취업이 잘되고, 또 나라도 평안하고,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고 이런 소망이면 모르지만, 집회가 없고, 불법 파업이 없었으면 하는 바램은 보는 사람을 분통터지게 하는 의도가 담겨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니면 기자 자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그런 인터뷰를 담았을 것입니다. 예전과 달리 요즘 기자들은 대부분 좋은 부모 만나서 공부 잘했고, 또 좋은 대학 나와서 좋은 직장에 취직한 사람들로서,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이 되어 버린 느낌입니다. 이 사람들이 보여주는 세상은 실제로 존재하는 세상이기보다는 자신들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으로 편집된 세상이기 쉽습니다. 이야기가 좀 빗나갔습니다만, 집회와 시위에 대한 왜곡된 시각도 언론의 잘못된 보도에 크게 기인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사실 민주주의만 해도 그렇습니다만, 민주주의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절대적 선인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제도 자체가 그렇게 효율적, 생산적인 것은 아닙니다. 토론도 해야 하고, 지루하게 기다리기도 해야 하고, 상당한 인내도 필요한 것이 민주주의란 제도입니다. 민주주의를 하기 위해서 우리가 일정한 부담을 지고,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것처럼, 집회와 시위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정한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고, 또 일정한 비용도 지불해야 합니다. 이건 상식입니다.


이 :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하지만, 일부에서는 폭력집회, 폭력시위에 대해서 지적하고 있는 것이라는 논리를 펴기도 합니다.


오 : 불법행위는 그 자체로 처벌하면 됩니다. 이때 집시법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남의 물건을 빼앗거나, 누구를 때리거나, 남의 물건을 파괴하거나 하면, 다 그에 맞는 법률의 적용을 하면 됩니다. 주로 형법의 적용을 받게 되겠지만, 구체적인 탈법행위, 구체적인 일탈행위는 그 행위에 대한 책임만 물으면 됩니다. 집시법과 같은 유례가 없는 악법으로 단죄할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이 : 집시법의 개정으로 아예 집회나 시위 자체를 신고하지 않는 단체나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지적하셨는데, 그러면 상당한 혼란이 오겠군요.


오 : 그렇습니다. 상당한 혼란이 올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전에 또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집회를 신고하는 것은 그저 하나의 행정적 절차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무슨 거창한 불법행위도 아닙니다. 제가 아이를 낳고 매번 출생신고를 제때 하지 못했는데, 여기에는 무슨 거창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게을렀기 때문입니다. 집회 신고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는 저처럼 게으른 사람들이 늘어나겠지요. 경찰이 집시법 개악을 주도했지만, 앞으로 고달파지는 것은 경찰뿐일 것입니다. 그전에는 그래도 신고를 하고 집회를 했지만, 그래서 예측할 수도 있었고, 언론을 통해 관련 교통정보도 알릴 수 있었지만, 이제 그냥 거리로 쏟아져 나오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답답하기만 합니다. <악법은 온존하고…….>


이 : 집시법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에는 여러 가지 법률이 반인권 악법으로 벌써 오랫동안 개폐논란이 있어왔는데, 이런 법률들의 전망은 어떻습니까?


오 : 다양한 법률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처리되어야 하는데, 국가보안법, 사회보호법, 보안관찰법, 그리고 방금 말씀드린 집시법 등의 악법이 폐지되어야 하고, 사형판결과 집행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는 법률들도 손질을 해야 합니다. 이외에도 수많은 인권관련 법률들이 있습니다. 이런 법률들과 관련하여 지금까지는 주로 국회의원들의 양식에 호소하는 방식의 운동방식을 펼쳐왔으나, 이제는 이런 방식의 운동이 일정하게 한계에 왔다는 점을 운동추진 세력들도 인정했으면 합니다. 사형폐지만 하더라도 사형제도 폐지에 찬성하는 의원이 반수가 넘지만, 사형제도는 요지부동입니다. 국가보안법은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동안 인권문제와 관련하여 5.18 특별법이나 제주, 삼청교육대 관련 법률들이 미흡하나마 통과되었는데, 이런 법률들이 통과된 것은 특정 지역을 반영하거나, 표가 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운동을 전개하는 쪽에서 구체적으로 표로 압박하지 않는다면, 악법은 온존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국회의원들의 양식을 믿을 수는 없습니다. 보다 과감하고 공세적인 문제제기를 통해 오래된 숙제들도 풀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외에도 많은 문제>


이 : 오늘 말씀 나눈 것 말고도 많은 문제가 있을 텐데요.


오 : 예, 정말 많은 인권문제가 있는데, 시간이 제한되어 다 다루지 못했습니다. 경찰, 검찰, 국정원, 법원의 개혁도 매우 중요하고, 법집행 공무원들의 의식을 개혁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국민들이 일할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는 일이며,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여러 권리들을 제대로 보장받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이런 중요한 일들에 대해서는 올 한 해 동안에도 이 시간을 통해 좀 더 구체적인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새해를 맞는 포부랄까, 제가 생각하는 것을 한 가지만 말씀드리고 맺을까 합니다. 제가 이곳저곳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해달라고 해서 불려 다니고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가기 싫은 곳이 사실은 대학입니다. 그것은 요즘 대학생들의 변화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권문제에 대해 절실히 생각하지 않는 대학생들의 이상한 태도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대학에 가는 경우, 저는 학생들에게 최근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청년실업에 대한 이야기를 꼭 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일할 권리가 있고, 정부는 이를 보장해야할 책무가 있다. 사람으로 태어나 일을 하고, 일의 결과로 임금을 받아 가족들과 함께 안정된 주거공간에서 문화적 혜택을 누리고 사는 것은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본권이다. 권리이다. 이렇게 강조하면서, 그 권리는 그러나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 정부가 달라지도 않는 사람들에게 권리를 챙겨줄 정도는 당연히 아니기 때문에, 여러분이 적극적으로 정부에게 일할 권리를 달라고 요구해야 한다. 누구도 권리 위에 잠자는 자의 권리까지 보호해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있는데, 청취자 여러분들에게도 인권은 공짜가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제게도 해당하는 금언입니다. 2004년 우리가 인권의 진전을 꿈꿀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우리도 인권을 위해 무언가를 내놓을 때만 가능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올 한해 함께 노력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