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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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인권상황 점검 - 나아진 것이 하나도 없다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19 17:58
조회
449

인권분야에 있어서 진전이 하나도 없었던 2003년 - 한해동안의 한국의 인권상황, 어떻게 변했는가


이영자교수 : 오국장님 어서 오십시오. 지난 4주 동안 한국의 감옥의 현실에 대한 말씀을 나누었는데요. 오늘은 2003년의 마지막 방송인만큼, 한해동안 인권 분야에서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좋아진 것은 무엇인지, 후퇴한 것이 있는지에 대해 말씀을 나누었으면 합니다.


오창익국장 : 요즘 때가 때이다보니, 여러 가지로 지난 한해를 정리하는 모임도 많고, 각종 언론매체의 보도도 쏟아지고 있습니다.


인권분야만이 아니라, 다른 많은 분야가 그럴 텐데, 지난 한해를 생각해보면, 그저 답답한 생각뿐입니다. 일년전 요즘에는 대통령선거가 막 끝나고, 그래도 ‘인권’을 주요 국정과제로 제시했던 김대중정부의 성과를 계승하는 노무현 정권이 출범을 앞두고 있었고, 인권운동 내부도 상당한 기대를 갖고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지난해 이맘 때의 활동일지를 꺼내 보니까, 요즘에 주로 했던 일이, 새로운 정부의 인권정책을 가다듬고, 인권분야의 개혁과제를 정리하는 일이었습니다.


지난주까지 감옥에 대해 말씀드렸지만, 감옥은 이렇게 바꾸고, 검찰개혁은 이렇게 하고, 경찰도 이렇게 바꾸고, 수백가지의 인권현안을 정리하면서 기대감에 부풀어 있을 정도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상당한 기대를 갖고, 구체적인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이 : 그런데 1년이 지난 지금의 평가는 어떻습니까? 인권변호사 출신이 대통령이 되고, 또 인권주무부서인 법무부장관도 대중적 인기가 높은 인권변호사 출신이고, 게다가 여성이고, 그동안 국민들에게 많은 고통을 안겨주었던 국가정보원의 수장도 인권변호사 출신이 되는 등의 물갈이가 있었고, 국가인권위원회도 설립 초기의 혼란을 극복하고 나름대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것 같은데...


오 : 다 옳으신 지적입니다. 그렇게만 보면, 한국의 인권상황은 드디어 유럽의 인권선진국의 수준으로 도약할 발판을 마련한 것이 분명해보입니다. 드디어 한국이 인권문제에 관한 한 아시아의 모범으로 거듭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한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단언하건대, 인권문제에 관한 한 노무현 정권에서의 성과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 방금 제가 단 하나도 없다고 말씀드렸는데, 이 방송을 준비하면서, 몇 번씩 고쳐 생각해보고, 또 여러 가지 자료도 훓어보았는데, 눈을 씻고 찾아봐도 지난 1년 동안 노무현 정권에 의한 인권분야의 성과는 정말이지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 : 인권변호사 출신이 지도하는 정부가 취임 초기에 인권분야의 성과가 오국장 말씀대로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데요? 그러면 인권분야의 성과가 단 하나도 없다는 지적에 대해 법무부나 청와대에서도 동의하고 있나요? 그래도 나름대로 이런저런 노력을 했고, 이런저런 성과도 있었다고 설명하고 있는 것은 없나요?


오 : 그런 이야기를 제가 직접 들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고, 간접적으로 정부의 입장을 알 수는 있었는데, 지난 12월 18일치 문화일보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 1년을 기념해서 인권, 사회복지, 경제, 환경, 노동 등 각 분야의 성과를 평가하는 기사를 게재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기사를 작성하면서 문화일보 측에서 제가 일하는 단체에서도 인권분야의 성과에 대해 의견을 묻기도 했는데, 이때 간접적으로 정부가 스스로 내세우는 인권분야의 성과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 정부 스스로 평가하는 성과들로는 어떤 것들이 있었나요?


오 : 준법서약제도의 폐지, 4.3사건 공식 사과, 사회보호법 폐지 추진, 호주제 폐지 추진 등이 그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것들을 스스로의 성과라고 내세울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양심이 있다면, 현정부의 성과라고 내세울만한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준법서약은 이미 이 방송을 통해서도 말씀드렸지만, 사실상 양심수들의 거부로 사문화된 것을 폐기한다고 공식화한 정도의 성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전혀 성과로 기록될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거의 대부분의 일반 형사사건 피의자들에게 경찰이나 검찰단계에서 반성문, 준법서약서 등을 쓰게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송두율교수에게 공개적으로 반성문의 제출을 요구하면서, 무슨 준법서약제를 폐지했다고 우기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 : 호주제를 정부가 폐지하겠다고 나선 것은 의미가 있는 일이 아닌가요?


오 : 물론 의미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노무현 정권의 성과로 기억되어야 하는지 역시 의문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처럼 처음으로 여성부를 신설한 대통령도 아니고, 여성부의 주요추진과제가 늘 호주제 폐지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새로울 것은 전혀 없는 업적 아닌 업적이었습니다.


4.3사건에 대해 정부가 공식적으로 사과했다는 대목도, 제주에서 대통령이 식사하는 자리에서 했던 이야기인데, 4.3 특별법이 통과된 것도, 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위원회가 구성된 것도 전임 대통령의 치적이고, 현 노무현 대통령시절에는 그저 공식 보고서가 발간되었을 뿐입니다.


사회보호법에 대해서는 한나라당이 법안 폐지에 앞장서고 있지, 대통령은 아무런 언급조차 없었고, 특히 법무부는 초지일관 사회보호법 폐지에 반대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 : 정부가 스스로 밝히는 인권분야의 성과도 사실상 현 정부의 성과라고 볼 수 없는 것들뿐이라는 것인데 그러면, 후퇴한 것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오 : 오늘 하루만 해도 국회 앞은 온통 집회와 시위의 물결이었습니다. 집시법, 테러방지법,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이라크전 파병 등 현안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부안사태, 집시법 개악 추진, 외국인노동자 강제 단속. 추방, 테러방지법 추진,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의 무리한 추진, 송두율 교수 구속,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대응,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의 생존권, 중산층의 붕괴 등 한국에서의 인권이 뒷걸음질 친 것은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총체적으로 후퇴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인권분야의 여러 영역이 자꾸만 뒤로 후퇴를 거듭했습니다.


이 : 너무 가혹한 평가가 아닌가요? 지난 한 해 동안 우리 사회가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앞으로 나아간 것은 하나도 없고, 퇴보하기만 했다면, 특히 현정부가 인권변호사 출신 노무현대통령의 정부인데도 인권분야가 이렇다면, 믿기지도 않을 뿐더러, 참으로 큰 일이 아닌가요.


오 : 저도 사실 잘 믿기지 않는 일입니다. 그래서 앞서 말씀드렸지만, 혹시 제가 잘 모르는 인권분야의 성과가 있는지 찾아보았지만, 없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상황이 계속 나빠지다가는 인권변호사는 고사하고, 오히려 인권의 적이 되기 딱 좋은 상황입니다.


이 : 대통령에게 문제가 있는 것인가요? 일부에서는 대통령이 안정적으로 국정운영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전혀 아니었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오 : 인권단체 중에서도 소수이긴 하지만, 그런 견해를 가진 단체 또는 개인이 있습니다. 취임 하기도 전부터 거대 야당과 조중동 등 수구언론이 지속적으로 발목을 잡았고, 그에 대응하기 위해 무엇 하나 제대로 챙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주장이 일부 설득력있게 들리기도 하지만, 이는 그저 핑계에 불과하다고 말씀드립니다.


이 : 그렇다면 대통령의 문제였다는 것이네요?


오 : 그렇습니다. 대통령 자신의 문제가 가장 컸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집권 2,3개월때부터 이해할 수 없는 태도를 보여주었는데, 지난 5월 18일 광주 망월동에서의 발언이 좋은 예입니다. 텔레비전을 통해 생중계되는 상황에서 대통령은 자신의 입장을 15분 정도 지연시킨 사람들 때문에 노골적으로 인상을 쓰며, 객석에는 시선조차 주지 않은채, 준비된 원고만을 읽었습니다. 그리고는 참모들에게 “정권 타도를 외치고 난동을 부렸다”고 사태를 규정해버렸습니다.


이러한 사태 규정은 일선에서 집회와 시위를 몸으로 막아야 하는 경찰의 반응보다도 훨씬 더 강도 높은 것이었고, 신경질적인 것이었습니다. 흔한 각목이나 화염병도 없었고, 아무 것도 파괴하지도 않았고, 대통령을 규탄하는 구호도 외치지 않았는데, 망월동 묘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위를 벌인 사람들은 졸지에 난동자들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5.18 관계자들이 청와대를 찾았을 때, 그 문제의 “대통령 못 해먹겠다”는 발언이 나온 것입니다.


대통령의 발언 이후에 광주 전남 지역에서 상당한 강도의 검거사태가 진행되었음은 물론입니다.


이러한 대통령의 태도는 화물연대에 대한 파시즘적 대응이나, 집시법 개정 과정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나도 노동운동 해봤다”며 대통령이 쏟아내는 발언들은 민주노총으로 하여금 “선무당 노무현이 노동자를 잡는다”는 성명으로 화답하게 하였고, 집시법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부안군수 폭행사건이 일어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집시법 개정을 내각에 지시하였습니다.


이 : 대통령의 잘못된 인식이 인권분야에서의 후퇴를 가져왔다는 말씀이네요.


오 : 그렇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조성된 정치지형, 언론지형은 사실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었고,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도 누구나 쉽게 예측할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물론 양심수 사면 문제, 송두율 교수에 대한 문제 등이 불거질 때마다 야당과 수구언론의 반격이 있었지만,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만큼 곤혹스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부분은 대통령이 초래한 다른 정치적 국면과 비교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대통령이 오로지 총선 승리만을 염두에 두고 있는 상황, 대통령이 자신에게 비판적인 목소리에 대해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는 상황, 대통령이 직언할 사람들의 이야기를 안들어봐도 다 안다고 치부하는 오만이 계속되는 한, 한국의 인권상황은 더 후퇴할 수 밖에 없습니다.


수구언론과 야당이 인권의 발목을 잡고, 대통령과 여당은 인권문제에 관심조차 없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인권은 그저 시장의 논리에 따라 이리 저리 밀리고 있으며, 집시법 개정과정에서 보듯이 주무 부처인 경찰의 편의만을 쫓아 헌법적 가치도 서슴없이 유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대통령이 다시 자기 중심을 잡지 않고서는 앞으로의 전망도 어둡기만 합니다.


이 : 앞으로의 전망도 어둡다는 말씀인데, 그래도 무언가 지금 상황을 타개해야 하지 않나요?


오 : 참모들, 특히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를 줄 아는, 즉 운동을 했던 인사들이 이렇게 가면 안된다고 직언을 하고, 직언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과감하게 자리를 차고 나오기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참모들이 누구는 비리혐의 때문에, 또 누구는 총선에 출마하려고 그만두고 있지만, 누구 하나도 우리의 인권상황이 이렇게 가서는 안된다고 직언하며 그만두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다는 것이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인권당사자, 피해자들도 인권이란 것이 대통령 1인에 의해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들의 부단한 노력을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는 평범한 사실을 다시 확인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