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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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진상 조사하자 (시민의신문 06.04.18)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3 15:57
조회
223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를 둘러싼 갈등과 내홍이 거듭되고 있다. 함세웅 이사장과 문국주 상임이사 등 기념사업회 현직 임원들과 송무호 전 기념사업본부장, 최상천 전 사료관장 등 전직 임원들 간의 갈등 차원에서 머물던 사태가 최근에는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의 토론회와 관련 연구단체의 성명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송 전 본부장은 벌써 두 달 넘게 기념사업회 현관에서 농성을 계속하고 있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1인 시위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인권운동의 한 원로는 “함 이사장을 규탄하는 신문광고를 내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계승연대 등 일부 단체는 더 이상 중재는 의미가 없다며 기념사업회에 대한 투쟁을 벼르고 있다. 


기념사업회의 해명서 ‘최근 사태에 대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입장’에 실린 항목만 봐도, 정규직 직원의 퇴직 강요 논란, 모든 신규채용직원의 1년 계약직화로 인한 노동권 부정 논란, 광복 60주년 기념전과 관련한 논란, 미술작품 구매 논란, 한일 우정의 잔치 사업 관련 논란, 직원의 보궐선거운동 참여 주장 논란, 최상천 전 사료관장의 계약 만료 관련 논란, 송무호 전 기념사업본부장 대기 발령과 계약만료 관련 논란, 양경희 전 사료수집팀장의 직위해제 논란 등 다양한 쟁점이 불거져 있는 상태다. 물론 이들 쟁점을 전직 임원들의 버전으로 바꾸면, 한일우정의잔치 사업 관련 논란은 삼계탕 비리가 되고, 다른 논란은 비민주적 운영, 비판세력에 대한 탄압, 비리, 범죄(배임, 횡령) 등이 된다.


양쪽의 이야기를 다 들어보긴 했지만, 구체적인 쟁점 사안에 대한 사실관계를 파악하지 못한 처지이기에 논란의 실체적 진실이 무언지 판단할 근거가 내게는 없다. 기념사업회의 주장처럼 고용 연장을 위해 억지를 쓰는 일부 인사의 불순한 책동인지, 아니면 형사처벌도 가능한 범죄에 대한 용기있는 내부고발인지 정확히 판단하기도 힘들다. 워낙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양쪽의 주장 사이에서 나는 문제가 어디서부터 꼬이기 시작했는지,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이 사태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적당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금의 사태는 기념사업회 지도부의 도덕성이나 위법 의혹에 대한 문제 제기를 이미 넘어서고 있다. 정부의 지원을 받는 특수법인이며, 민주화운동의 성과로 설립된 기구가 마치 비리의 종합전시장처럼 여겨지고 있는 사태 자체가 문제다. 


과거 민주화운동이 나름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신을 역사와 민중 앞에 내던지는 운동가들의 헌신과 투신 때문이었다. 실제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제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렸고, 이 숭고한 투쟁 덕에 우리는 오늘 이만큼이나마 자유를 호흡하고 있다. 그런데 이 자랑스러운 민주화운동의 역사가 그 역사를 기념하고 계승하기 위해 설립된 조직에 의해 우스꽝스러워지는 답답한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은 즉각 종식시켜야 한다. 


나는 시민사회에 기념사업회 사태에 대한 객관적인 진상조사를 제안한다. 기념사업회는 자체 감사나 이사회의 검증을 거쳤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지만, 그것은 어차피 문제제기하는 쪽을 설득하지 못하는 내부의 작용일 뿐이다. 


시민사회가 다른 많은 논란에 대해서는 누구도 위임한 적 없이 역할을 자임하면서도, 정작 우리 내부의 문제라고 볼 수 있는 기념사업회 논란에 대해서 애써 침묵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더 이상 추해지기 전에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역할이 있어야 할 것이다. 문제제기를 하는 쪽이나, 잘못이나 비리는 없고 억울할 뿐이라는 쪽 모두에게 꼭 필요한 작업이 바로 진상조사이다. 


문제가 있다면 조사활동을 통해 그 문제점을 해결하면 되고, 문제가 없는데도 모략을 하고 있다면, 억울한 피해자가 더 큰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념사업회 입장에서도 객관적인 진상조사활동을 거부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진상조사를 통해 누구에게 잘못이 있는지, 누가 이 사태에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따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거 반독재민주화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는 우리 시민사회가 스스로 성찰하고 정화할 기능을 갖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더 이상 민주화운동 자체가 우스꽝스런 조롱거리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단 하나뿐인 진실을 제대로 밝혀보자.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