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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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 조백기를 왜 가두는가(한겨레 칼럼, 060327)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3 15:55
조회
256
박래군·조백기를 왜 가두는가/오창익(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
야!한국사회

인권운동사랑방의 박래군, 천주교 인권위원회의 조백기가 구속되었다. 특수 공무집행 방해 혐의다. 늘 따라붙는 폭행이나 상해 혐의도 없이 공무 집행방해가 전부다. 그저 대추분교 문짝을 잡고 앉아 있거나 굴착기에 올라가서 구호를 외친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덜컥 구속이 되었다.
경찰과 검찰이 내세운 구속 이유는 세 가지다. 이들이 미군기지 평택 이전을 반대하므로 국가의 법 집행 및 공사 작업에도 반대한다는 취지로 진술했고, 손가락에 인주를 묻히는 것이 싫다는 이유로 형사소송법에서 규정한 피의자 신문조서의 날인을 거부하는 등 법을 경시하는 태도를 강하게 표출하였으며, 자신의 행위에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아니하고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기에 증거인멸과 도망의 염려가 있다는 것이다. 다른 것은 없다. 이것이 전부다.


국가 정책에 반대한다는 취지로 진술하면 구속하고, 형사소송법은 ‘간인’과 ‘서명 날인’만을 규정하고 있는데도 지문을 찍지 않으면 구속하고,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는 수사기관의 주관적인 판단만 있으면 구속한다는 경찰, 검찰의 주장은 정말 웃기는 논리의 비약다. 구속기준은 ‘주거 부정, 증거 인멸, 도망 염려’가 아니라 수사기관 마음대로라는 한국의 형사법 현실이 이 사건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수사기관이 겨냥하면 멀쩡한 사람이 자유를 빼앗기고 감옥에 갇혀야 하는 현실이 무섭다. 수사기관은 그렇다 쳐도, 구속영장을 발부한 법원의 판단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형법, 형사소송법 책을 꺼내 봐도 국가정책 반대 활동에 대한 정치적 보복 말고 다른 어떤 적당한 답도 찾아낼 수 없다. 경찰, 검찰 그리고 법원이 법과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정치적 판단에만 기대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


인권운동가라고 특별한 대접을 해달라는 것은 아니다. 지난 세월 동안 경찰, 검찰, 법원이 유린한 인권을 지키고자 노력했다고 공치사를 하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원칙대로, 법대로 하자는 것이다.


이 땅에서 인권운동가의 구속은 제주 4·3 사건을 다룬 영화를 상영했다는 이유로 서준식이 체포된 1997년이 마지막이었다. 98년 이후 정권은 인권운동가의 평화적인 활동을 두고 구속의 칼을 휘두를 정도로 무도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2006년 3월15일 이전까지는.


박래군, 조백기는 누구인가. 남부럽지 않은 민주화 운동의 훈장을 차고서도 40대 중반에 인권현장을 지키는 박래군, 난민과 북한 인권문제에 정통한 법학박사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인권운동에 투신한 조백기는 얼마든지 손에 넣을 수 있는 기득권을 포기하고, 민중의 삶에 다가서 헌신하는 운동가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민중을 위해 싸우자며, 민중의 삶에 투신하자며 떠들었던 많은 이들이 부나방처럼 권력을 쫓아 스스로 반동이 되어버린 시대이기에 박래군, 조백기의 삶은 더 각별하다. 청와대와 국회, 정부의 386들이 오늘 점심과 저녁의 메뉴를 고민하는 지금, 박래군과 조백기는 구치소에 갇혀 870원짜리 관식으로 허기를 채우고 있다.


평화적으로 국가정책에 반대한다고 인권운동가를 구속하는 전형적인 후진국형 인권문제 앞에서 그 386들은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올해도 정든 고향땅에서 농사짓고 싶다는 노인들의 절규를 외면하고 인권운동가를 구속하면서 얻고자 하는 이익이 무엇인지 옛 동지들에게 먼저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