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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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조가 된 육군 중령 피우진(경향잡지, 2006년 11월호)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3 16:34
조회
270

불사조가 된 육군 중령 피우진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


사범대학을 마치고, 교사로 일하던 피우진의 인생은 길에서 우연히 본 한 장의 포스터 때문에 바뀌게 되었다. 여군 장교 모집공고였다. 한번도 군인이 되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희한한 일이었다. 요즘 말로 ‘필이 꽂혔다’고 할까. 포스터를 보는 순간, 저것이 바로 내가 갈 길이라고 생각했단다. 멀쩡한 교사 일을 그만 두고, 여성의 몸으로 직업군인이 되겠다는 결심을 단박에 했다니 용감하다고 해야 하나, 무모하다고 해야 하나.

1979년 1년에 한번 겨우 13명을 뽑는 여성 사관후보생 시험에 합격하였고 이때부터 피우진의 군생활이 시작되었다. 말이 좋아 정예요원이고, 사관후보생이지, 그가 받은 훈련은 외박은 물론 외출조차 없는 26주간의 험한 훈련이었다. 발에 맞지 않는 군화를 지급받아도 발을 군화에 맞혀야 한다는 억지가 통하는 곳이었지만, 피우진은 엄격한 규율과 거친 훈련에 누구보다도 잘 적응했다. 그렇지만 최소한의 사리분별은 놓치지 않았다. 스스로 원칙을 정하고, 군인으로서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을 엄격히 구분했다.

포복이나 구보 같은 힘든 훈련은 지휘자의 감정적인 보복이 분명해도 묵묵히 받아들였다. 어쨌든 체력단련은 되니까 좋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슬리퍼 밑바닥에 흙이나 이물질이 묻어있나 따위를 살피는 유치하고 비실용적인 일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러한 사리분별은 그를 최고의 벌점왕으로 만들었다. 벌점왕인데도 그의 첫 임지는 그가 훈련생으로 살았던 바로 그 훈련소였다. 퇴소할 때 수료생들의 상호평가에서는 자신을 제외한 모든 동기생에게 몰표를 받을 정도로 통솔력이 있다는 점이 높이 평가된 탓이었다.

이후 특전사를 거친 피우진은 남성과 동일한 조건으로 시험을 쳐서, 최초의 여군헬기조종사가 되었다. 특전사를 거친 최초의 여성헬기조종사는 빛나는 영예였지만,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척박한 환경에서 한 여성이 직업군인으로 생활하는 것은 매순간이 전투와 다름없는 일이었다. 오로지 영리만을 추구하는 일반회사와 달리, 나라를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니 능력을 우선시하는 공평한 시스템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군대는 일반 사회보다 훨씬 더 원색적인 경쟁과 폭력적인 권위주의가 횡행하는 곳이었다.

여군을 그저 업무보조나 술자리 분위기 전환용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았다. 질 낮은 남성 상관들의 무리한 요구를 매번 거절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상급자와 친하게 지내고, 그럼으로써 진급도 수월하게 하고 싶은 욕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의 원칙을 저버릴 수는 없었다. 남녀나 계급을 떠나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없는 무례와 횡포를 그냥 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넘겨버릴 수는 없었다.

그의 태도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옹고집으로 여겨졌고, 적지 않은 상급자들이 그를 불편해했다. 부대 공금이나 식자재를 착복하는 나쁜 관행에 대한 그의 원칙적인 태도는 그를 더욱 외롭게 만들었다. 힘들어도 버틴 것은 후배들의 힘이었다. 공평하고, 업무처리를 원칙적으로 하면서도 부하들을 인격적으로 대하는 그는 장교로서 남부럽지 않은 존경과 신뢰를 받았다.

피우진에게 시련이 닥쳐온 것은 지난 2002년의 일이었다. 유방암이었다. 다행히 조기에 발견하였고, 간단한 수술로 완치되었다. 암이 발병하기만 해도 전역을 시키는 군인사법상 시행규칙이 있었지만, 그것도 큰 문제는 아니었다. 규칙 자체가 의학이 발전하지 못한 때에 만들어져 시대착오적이었고, 규정 때문에 실제로 옷을 벗는 군인들도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사문화된 규정이었다. 피우진의 소속 부대장을 비롯한 부대원들도 그의 암발병과 수술, 그리고 수술 후 경과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문제는 없었다.

정작 문제는 수술 후 3년이 지난 2005년에 터졌다. 새로 온 부대장과 원칙을 지키려는 피우진 사이에 자잘한 다툼이 있자, 부대장은 3년 전에 받은 수술을 문제삼아 피우진을 공중자격심사위원회에 회부하였다. 조종사가 비행근무를 계속할 수 있냐를 심사에서 피우진은 해임 판정을 받았다. 곧이어 국군논산병원에서는 전역에 해당하는 심신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정년을 3년 남짓 앞둔 상태였다. 지금 아프거나, 군복무를 할만큼의 심신상태가 아니라는 뜻이 아니다. 암발병만으로 전역이 되는 사문화된 규정이 되살아난 것이다. 유방암이 무서운 건 사실이지만, 피우진처럼 초기 진료를 한 경우의 생존율은 98%나 된다. 완치된 과거의 병을 이유로 평생을 조국을 위해 헌신한 군인을 불명예스럽게 전역시킬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피우진은 지난 9월 14일 육군본부전역심사위원회에서 전역 결정을 받았다. 지금의 결정이 그대로 굳어진다면 피우진은 12월 강제전역을 당하게 된다. 최초의 여성 헬기 조종사라는 영예와 27년 동안 군인으로 헌신했던 그의 이력이 지금 구태의연한 규정과 이상한 군대문화에 의해 비감한 최후를 맞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