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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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장, 국민은 두렵지 않은가 (내일신문 08.05.27)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4 10:01
조회
237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정부가 ‘미친소’ 반대 집회에 대해 연일 강경책을 쏟아내고 있다. 그중 가장 험한 말은 어청수 경찰청장의 것이다. “1천명을 한꺼번에 체포하고 싶었다. 하지만 참았다.” “(앞으로는) 수백 명이라도 체포하겠다.”


 경찰청장의 말이니 단순한 협박만은 아닐 게다. 경찰청장이 1천명을 한꺼번에 체포하고 싶어 했던 사람들의 범죄혐의는 겨우 도로교통법 위반 정도였다. 인도로 가야 할 사람이 차도로 걸은 것이 전부다. 오가는 차량이 별로 없는 심야와 새벽에 교통의 원활한 흐름을 방해하고, 경찰관의 지시를 불이행한 것이 전부였는데 1천명이나 되는 시민들을 한꺼번에 체포하고 싶었다니. 경찰청장의 머릿속에는 도대체 무엇이 들었을까.


 그동안의 행보를 보면 짐작되는 것이 적지 않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치안비서관, 부산, 경기, 서울경찰청장으로 승승장구하던 그가 아니었던가. 여러가지 의혹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와 새 정부가 합의를 통해 경찰청장으로 임명할 정도로 관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자신을 중용한 이명박 정부에 큰 빚을 진 탓인지, 그의 언동은 늘 누구보다 앞서 있었다. 공당인 민주노동당을 불법시위단체로 규정하고, 불심검문에 불응하면 형사처벌하고 백골단을 부활시키겠다는 것도 모두 그의 입에서 나온 말들이었다. 이명박 정부의 기초질서 지키기 캠페인이나 ‘노 할리데이’, 한 시간씩 일찍 출근하기도 경찰이 가장 열심이었다.


 이런 모습을 보고 경찰청 출입기자들은 어청수 경찰청장이 ‘스스로 코드 맞추기’에 열심이라고 꼬집는다. 임기 보장에 자신이 없어서 ‘오버’를 자주 한다는 거다.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대통령이 수백 명을 체포하라고 시켰다고 생각하기는 싫으니 말이다.


 문제는 어청수 경찰청장의 험한 말이 그저 말로만 그치지는 않는다는 거다. 경찰은 다른 국가기관에 비해 위계에 분명한 계급조직이다. 부당해도 일단 상관의 명령에는 복종해야 한다. 경찰청장이 이틀이 멀다하고 직접 촛불집회 현장에 나와 지시를 내릴 때, 그의 의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경찰관은 한명도 없다. 그가 쏟아내는 험한 말은 현장에서 시민의 머리를 향해 휘두르는 의경의 방패가 되고, 시민을 향해 쏘아대는 물대포가 된다.



당장 주말에만 이틀 동안 고등학생을 포함해 68명이 체포되었다. 회사원, 자영업자, 주부, 대학생 등이다. 도로에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체포되어 경찰서 유치장에 갇혀서 사법처리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경찰청장은 잊었는지 모르지만, 형사사법은 헌법정신에 따라 비례성, 최소성, 합리성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도로가 시위대에 점거되어 원활한 교통이 되지 않았다지만, 그것이 1천명이나 되는 시민들이 헌법상 보장된 신체의 자유를 박탈당하고 경찰에 의해 체포되어야 할 만큼의 심각한 법익침해라고 볼 수는 없다. 차가 막히면 돌아가는 길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설령 사법처리가 진행되어도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합리적으로 해야 하다.


 경찰청장의 발언은 법치주의의 근간을 허물고 인권과 상식에 반하는 망언이다. 그가 경찰청장이란 직분을 잊고 정치적 레토릭이나 구사하고, 국민을 상대로 협박이나 늘어놓은 것은 아닐 것이니 더 큰 문제다.


 수백 명을 체포하면 어떻게 될까. 그와 그의 든든한 뒷배가 되는 이명박 정부가 바라는 것처럼 사태가 진정되기는 할까. 수백 명을 체포하면 곧 수천 명을 체포해야 하는 사태로 이어질 것이다. 5,6공 시절 집회에 참석할지도 모른다는 이유만으로 ‘격리 차원’에서 수천 명을 체포했던 예전의 실력을 끄집어낸다고 해도, 국민의 저항은 커져만 갈 것이다. 한명이 체포되면 열 명이 새롭게 집회에 참여한다는 것은 머리 나쁜 사람도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쉬운 이치다. 누구도 바라지 않는 사태, 그저 이명박 정부만의 위기가 아니라 국가적인 위기가 오게 될 것이다.


 꼭 ‘미친소’ 문제만 아니라, 총체적인 난국이다. 물가는 폭등을 하고, 경제를 살리겠다던 정권은 대운하에만 집착하고 있다. 사회공공성이 무너지고 서민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가뜩이나 살기 힘든데 국민의 공복인 경찰청장까지 국민을 괴롭혀서야 쓰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