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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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남은 58개월 동안(전교조 기관지 <교육희망>, 08.04.27)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4 09:55
조회
223

[희망칼럼]앞으로 남은 58개월 동안


오창익/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



많은 사람을 설레게 했던 아르헨티나 실업자 운동. 수많은 실업자들이 도로를 점거하고 저항했다. 그런데 이 운동이 바꾼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집회 참가자 대부분은 해외 원조를 받는 NGO들이 일당을 주고 동원한 실업자들이었다. 운동이란 형식은 있었지만 여기에 각성된 개인의 참여는 없었다.


피부색에 따라 계급과 직종이 달라지는 중남미에서 좌파의 잇단 승리에도 새로운 대안의 마련에까지 이르지 못한 것은 교육 때문이다. 공교육 체제는 붕괴되었고, 가난한 사람들은 교육에서 배제되었다. 교육이 없으니 개인의 각성도 없고, 좌파 정권이 들어서도 그들만의 유행일 뿐, 정작 민중의 삶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한국이 그런대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것은 전적으로 교육의 힘 때문이다. 교육은 체제에 순응하는 국민을 양산하는 한편, 각성된 개인도 함께 만들어냈다. 고병헌의 지적처럼 한국의 모든 대안교육 운동가들도 공교육의 산물이고, 체제를 거부하는 급진적인 운동가들도 공교육의 결실이다. 한국에서 교육, 특히 공교육이 담당했던 역할은 컸다. 읽고 쓰게 된 것도, 생각하는 것도 모두 교육의 역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교육의 사명이 그저 인적자원 개발뿐인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짙어지기 시작했다. 기업에서 쓰기 좋은 사람을 만드는 것이 교육의 목표라고들 했다. 김대중 정부가 물꼬를 트고 노무현 정부가 충실히 따랐던 시장만능·승자독식의 교육정책은 이명박 정부 들어 만개하고 있다. ‘규제’라는 말에 무슨 알러지가 있는지 규제를 개혁한다며 교육을 본격적으로 망가뜨리고 있다. 우열반 편성, 0교시, 심야 보충수업, 사설학원의 학교 진출 등 공교육 포기 방침이 노골화되고 있다. 정부가 앞장 서 학생들을 입시지옥이라는 무한경쟁으로 내몰고 있다. 각별한 보호를 받아야 할 어린이, 청소년들이 집단적으로 인권피해자가 되어 버렸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거꾸로 매달아 놓아도 국방부 시계가 가는 것처럼 이제 58개월만 꾹 참고 버티면 되나. 노무현 정부를 견디며 생긴 내성이 있으니 못 견딜 것도 없다. 사실 선생님들 입장에서는 그렇게 해도 큰 손해는 없다. 사는 보람은 줄어들겠지만, 고용이 불안한 것도 급여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학생들은 전혀 다르다. 5년이란 시간은 자라나는 어린이, 청소년에게는 참으로 긴 세월이다. 인생이 수십 번 바뀔 정도로 길고도 긴 세월이다.


최근 전교조가 아이들을 지키겠다며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잇단 기자회견에 이어 위원장 단식까지 시작했다. 교육 자체를 망가뜨리려는 이명박 정권에 대한 저항이 시작되고 있다. 제 정신 멀쩡한 사람 중에 싸움이 좋은 사람은 없다. 어쩔 수 없어 싸우는 것은 그야말로 고육지책이다. 제 몸 상할 줄 뻔히 알면서도 싸우는 것은 어쩌면 지금 시대 선생님들께 주어진 하나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이 교육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적어도 말은 다 그렇게 한다. 말이 아니라, 온몸으로 교육의 중요성을 일깨울 사람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선생님들밖에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