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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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관은 낮잠 자고 대통령은 경찰서 가고 (주간<시사인> 08.04.26)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4 09:51
조회
251

쓰나미가 지나간 느낌이다. 안양의 두 어린이는 끔찍한 희생을 당했고, 일산의 어린이는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무차별 구타를 당하고 끌려갈 뻔 했다. 언론은 흔히 이런 범죄자들을 소아기호증 환자라 한다. 실무에서 보면 대부분은 쉽게 제압할 수 있어 어린이를 범행대상으로 고른 ‘놈’들이다. ‘권력형 범죄’라고나 할까. 힘센 사람이 힘이 약한 사람에게 행하는 패악은 모두 권력의 행사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우리의 양심은 이런 범죄에 대해 분노를 느낀다.


 분노하는 시민들 앞에 다양한 대책들이 쏟아졌다. 성범죄자 신상공개, 성범죄자의 유전자 정보 데이터베이스화, 전자팔찌 착용, 방범용 CC-TV 카메라 설치, 휴대전화 위성 GPS 장착 등이다. 이런 대책이 나오면 당장 안전해질 것 같다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때만 되면 나오는 뻔한 대책인데도 그렇다. 분노와 공포에 몸서리칠 때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CCTV만 해도 그렇다. 서울 강남구에 CCTV 카메라는 많지만, 강남경찰서나 수서경찰서의 범인검거율은 CCTV 카메라 한대도 없는 중랑경찰서에 비해 10퍼센트 포인트 이상 낮다. 범죄예방에도 특별한 효과가 없다. 굳이 효과가 있다면 저렇게 많은 CCTV 카메라를 달았으니 우리 동네는 안전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을 주는 정도다. 일산 사건의 경우에도 CCTV 녹화물이 있었지만 경찰은 사건 발생 직후 며칠 동안 이 녹화물을 확보하지 않았다. 휴대전화에 GPS를 설치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범인이 휴대전화에 장착된 GPS를 통해 자기 동선을 친절하게 알려줄 리 없다. 유괴범은 가장 먼저 아이의 휴대전화를 빼앗는 일부터 할 것이다. 결국 GPS 장착은 단순한 실종사건일 경우에만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경찰에 대한 시민 통제가 필요
대책 아닌 대책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우리 아이의 안전은 오로지 부모의 몫이 되고 말았다. 아이를 학교에 바래다주는 일부터 코흘리개의 목에 휴대전화를 걸어 주는 일까지, 돈과 시간을 들여 부모는 자식을 지킨다. 국가를 믿지 못하는 시민이 스스로 '자기 것'을 지키는 상황이 되었다. 21세기 국가에 '자경단(주민 스스로 만든 경비 단체)'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까닭이다.


 이처럼 자경단을 만들어내는 건 민생 치안은 뒷전이고 '시국치안'에만 골몰하는 경찰의 19세기식 행태 때문이다. 특히 '공공질서'를 강조하는 이명박 정부 들어서 더욱 그렇다. 주택가 골목길에 순찰차를 대놓고 잠을 자는 경찰관을 본 게 한 두 번이 아니다. 이상한 일이다. 근무시간인데, 주민들이 뻔히 앞에서 그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잠을 청한다. 시민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높은 분만 쳐다보는 경찰의 시스템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일산 사건도 대통령의 꾸중 한마디로 쉽게 해결되었다. 대통령이 날마다 일선 경찰서를 방문해 호된 꾸중을 반복하면 치안 대책이 세워질까.


 어린이, 여성, 어르신 등 힘없는 사람에게 안전한 사회가 정말 안전한 사회이다. 그들은 나의 아내와 딸, 그리고 어머니이기도 하다. 실효성 없는 대책으로 변죽만 울릴 일이 아니라 경찰이 시민을 위한 활동에 몰두하도록 하기 위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당장 자치경찰제 시행, 경찰에 대한 독립적 감시기구 창설 등으로 경찰에 대한 시민의 통제만 강화해도 골목길 치안은 어느 정도 안정될 수 있다. 물론 일산에서 범죄에 희생될 뻔했던 어린이를 구한 것이 이웃집 주민이었던 것처럼 우리 동네 공동체를 복원하는 일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