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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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일 위원장이라면 (전교조 기관지 <교육희망>, 08.12.09)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4 10:31
조회
215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의 당선은 정파에 기댄 것이다. 위원장 선거가 정파구도라고 비난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도 잘 안다. 변명하지 않겠다. 정파가 밀어줘 위원장이 되었지만 이제는 과감하게 정파에서 벗어나겠다. 나를 밀어준 동지들도 내 뜻을 이해해 줄 거다. 이해 못해도 어쩔 수 없다. 앞으로는 정파 사람들을 따로 만나지도 않고, 정파의 생각과 요구에 묶이지도 않을 거다. 나는 이제 전교조 위원장이다. 위원장의 품격에 맞게 생각하고 뛰겠다. 
 
선생은 아이들을 위해 존재한다. 누가 좋은 선생인지를 판단하는 건 대통령이나 교육청이 아니라 아이들의 몫이다. 아이들에게 평가받겠다는 자세로 튼튼한 전교조를 만들겠다. 
 
일단 내부 전열부터 가다듬어야겠다. 본부 집행부 구성부터 다시 하겠다. 훌륭한 분이 있으면 삼고초려를 해서라도 모시겠다. 누가 적임자인지 공개추천을 받고, 만약 능력이 엇비슷하면 다른 정파에 속한 분을 한분이라도 더 모시겠다. 각종 회의도 대폭 줄이고 꼭 필요한 회의만 진행하겠다. 듣지 않고 말만 하는 관성적인 회의는 없애지만, 그렇다고 언로를 막지는 않을 거다. 언제나 누구나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소통의 공간은 확실히 열어두겠다. 
 
조합원 선생님들에게 희망과 자존감의 기를 불어넣어 드리겠다. 각종 교육활동을 활성화하는 일이 내게는 가장 중요한 숙제가 될 것이다. 우리 모두는 가르치는 선생이 아닌가. 공부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지나침이 없을 거다. 교육원을 신설하겠다. 인력, 예산을 집중 투입해 언제나 양질의 교육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하겠다. 교원연수의 품질도 대폭 높이겠다. 좋은 강사가 있으면 위원장이 직접 나서 섭외를 하겠다. 비조합원 선생님들이 '전교조 교육원'의 풍부한 교육활동 때문에라도 전교조에 가입하고 싶게 만들겠다. 거액의 학비를 내고 대학원에 다닐 필요가 없게 하겠다. 
 
'참교육연구소'도 활성화시키겠다. 당장 박사급 연구자 몇 분을 상근으로 모시겠다. 그분들이 맘 놓고 연구에만 매진할 수 있게 하겠다. 실력을 착실히 쌓아나가겠다. 정책이나 연구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겠다. 최소한 한 달에 두세 번씩 각종 교육현안에 대한 토론회가 열릴 수 있도록 연구활동을 독려하겠다. 게으른 관료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정책적 실력을 갖추겠다. 변호사 몇 분도 전임으로 모시겠다. 전교조 법률원을 설립해 조합원 선생님들의 각종 법률 현안을 맡고, 교육개혁을 위한 입법화 작업도 진행하겠다. 
 
외부와의 연대도 고민하겠다. 민주노총을 강화해야 하지만, 관성적인 노동운동은 안한다. 원칙있는 연대, 프로그램과 내용이 정확한 운동을 하겠다. 조합원 선생님들을 집회 동원의 대상으로 전락시키지는 않겠다. 싸울 때는 확실히 싸우지만, 아무 때나 싸워서 역량을 소모시키지는 않겠다. 집회나 행사, 기자회견 참석도 꼭 필요한 경우만 하겠다. 약자, 소수자와의 연대는 훨씬 더 강화하겠다. 
 
수구세력의 음해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 임기 끝날 때, 힘들었어도 아이들을 위해 보람은 있었다고 스스로 여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