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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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교육은 선생님들의 몫 (전교조 기관지 <교육희망>, 08.11.02)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4 10:30
조회
197

학생들에게 우리 사회에서 심각한 인권문제가 뭐냐고 물으면, 대체로 비슷한 답을 한다. 텔레비전 예능프로그램이 학교 밖 청소년이나 이주노동자를 다룰 때는 어김없이 학교 밖 청소년과 이주노동자 문제라고 답하고, 노예노동이나 다문화가정 이야기가 나오면 그쪽으로 쏠린다. 
 
우리 사회의 민감한 인권문제에 눈과 귀를 제대로 열어 둔 탓인지도 모르지만, 나 아닌 남의 이야기만 한다는 건 좀 이상하다. 
 
지금 우리 학생들이 처한 현실은 잔혹하기 그지없다. '일제단속', '일제점검'처럼 유신시절에나 어울렸을 법한 단어를 빌려와 수십만 명의 어린이, 청소년들을 한날한시에 똑같은 시험을 치게 하겠다는 발상은 끔찍하다. 학생들은 뿌리 뽑힌 사람들처럼 자꾸만 밀려나고 있다. 공부 또 공부, 그것 말고는 아무런 대안도 선택도 없다. 선배가 후배를 교육시킨다며 구타와 가혹행위를 일삼고, 체벌이란 이름의 폭력도 끊이지 않는다. 
 
그저 학교에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교복을 입어야 하고, 머리카락도 교칙대로여야 한다. 다 아는 답답한 현실,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이 안되는 인권침해가 일상화되어 있다. 
 
왜 스스로 인권피해자인 학생들이 인권문제를 말할 때면 언론에서 본 남의 이야기만 반복하는 걸까. 제 처지가 심각한데도 왜 나의 인권문제는 말하지 않는 걸까.
 
그건 아무래도 인권에 대해 제대로 배우지 못한 탓일 게다. 하긴 인권을 배우는 시간도, 교재도 없고, 가르치는 교사도 없는 현실을 생각하면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가끔 근사한 결정문을 내놓기도 하는 헌법재판소는 사립학교법에 대한 위헌심판 사건에서 헌법이념, 곧 인권의 실현은 교육의 힘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교육의 목적은 소질 계발, 인격 완성, 자립생활 능력 증진을 통해 사람다운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돕는데 있다고 했다. 바로 그렇다. 인권의 진전은 인권교육을 받은 똑똑한 인권당사자들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알아야 요구할 수 있고, 저항할 수도 있다. 그래서 유엔은 인권교육을 받는 것도 중요한 인권이라고 강조한다. 
 
사람은 누구나 존엄하고 가치있는 존재이고, 그래서 사람답게 살 권리가 있다. 그렇지만 그런 권리가 내 것이고, 권리의 보장은 국가의 의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권리를 누리는 것도 어려워진다. 그래서 인권교육은 더욱 촉진되어야 한다. 스스로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깨닫도록 도와주고, 존엄하게 사람답게 살기 위해 인권이 필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인권교육은 선생님들의 몫이다. 
 
그런데 큰일이다. 읽을만한 책 한권 추천하기 민망할 정도로 뭐 하나 제대로 갖춰진 게 없다. 우리 모두 이제야 관심을 갖고 시작한 탓이다. 
 
서울시교육연수원이 지정한 올 상반기 특수분야 직무연수 프로그램 827개 중에서 인권연수는 딱 2개뿐이다. 아직 너무 적지만 그래도 인권단체 등에서 진행하는 인권연수도 몇 개쯤은 생겼다. 
 
이번 겨울방학에는 교사인권연수에 참여하는 선생님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선생님들부터 공부하고 느꼈으면 좋겠다. 학생들은 인권을 공부한 선생님들에게 감염될 준비가 언제나 되어 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