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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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구금시설을 점검하라 (내일신문 07.02.13)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3 16:44
조회
226

마침내 일이 터졌다. 여수 출입국관리소 외국인보호소. 꿈을 찾아 한국을 찾아온 외국인들이 죽고 다쳤다. 끔찍한 아수라장이 따로 없다. 이번에도 사건을 따라가 보니, 어쩔 수 없는 그래서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재해가 아니라 조금만 신경을 썼어도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재해였다. 흔히 말하는 것처럼 천재가 아니라 인재였다. 


법무부 사람들이 붙인 이름부터가 참 얄궂다. 어떻게 봐도 본질은 구금시설인데 이름은 ‘보호소’라 부른다. 제 발로 들어온 사람 하나 없고 모두 잡혀온 사람들뿐이며 누구도 보호받기를 원하지 않는데도 그렇다. 보호소의 목적은 단순히 퇴거가 필요한 사람들의 임시 숙소이지만 명목일 뿐이고 실질은 그저 구금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니 쇠창살이 필요하고 수갑이 필요했던 것이다.


독일에서는 이주노동자를 손님노동자라고 부른다. 자기들이 필요해서 불러들인 손님이라는 얘기다. 우리는 손님을 범죄자 취급하며 일상적으로 가두고 있다. 보호소에 있는 외국인들은 범죄자도 아니다. 불법체류 단속은 행정처분이다. 그래서 형사법이 정한 인신보호를 위한 안전장치들이 대부분 풀려있다. 영장 없이 압수 수색 체포를 할 수 없지만 법무부는 행정처분이라며 법원의 통제도 받지 않고 있다. 행정적 편의를 위해 적법절차를 무시하면서도 실제로는 구금을 하고 있는 이상한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번 사고로 희생된 사람 중에는 단순히 신고한 업종과 다른 업종에 종사했다는 이유로 잡혀 온 사람도 있다.



적법절차 무시 구금 다반사


사실 이런 식의 참사는 예정된 것이었다. 바보가 아니라면 구금시설에서의 화재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뻔히 알 수 있는 일이다. 일분일초가 급한 화재현장에서 직원들이 제 몸 하나 빠져나오기도 급한데 몇 겹의 잠금장치를 뚫고 적지 않은 경우 수갑까지 풀어주면서 수용자들을 피신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스스로 몸을 피할 수 없는 갇힌 사람들은 꼼짝없이 희생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교도소든 보호소든 구금시설에서의 화재대책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철저해야 한다. 자체적으로 화재를 진압할 수 있도록 소화기, 스프링클러 등을 갖춰 놓아야 하는 것은 물론 직원들도 화재시 행동요령을 반복된 훈련을 통해 숙달해야 한다. 시설 보완이 필요한 것도 물론이다.


지난해 9월 과천 송전탑 사고로 서울구치소의 외곽초소가 불타고 구치소 전 시설이 정전된 적이 있다. 천만다행으로 바로 앞 초소에서 멈추고 구치소까지 화가 미치지 않았지만 이건 중요한 신호였다. ‘만약 구치소까지 화마가 덮쳤더라면’ 하는 생각을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어야 한다. 구치소든 보호소든 한결같이 법무부가 관장하는 시설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법무부 장관은 그대로이다. 불과 몇 달 전 가슴을 쓸어내렸을 사람들이 기본적인 방책도 세우지 않고 이런 일을 당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경종은 서울구치소에서만 울렸던 것도 아니었다. 같은 여수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도 2005년 4월 방화를 기도했던 사건도 있었다. 공무원들이 즐겨 쓰는 말처럼 만전을 기해야 했지만 곳곳에서 경종이 울리는데도 변한 것은 없었다.



가장 큰 책임은 주무장관


이번 사태에 대한 가장 큰 책임은 누가 뭐래도 주무 장관에게 있다. 단순히 지휘 감독의 책임 곧 잘못은 없는데 저 말단의 부하를 잘못 둔 탓에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거듭된 신호에도 불구하고 대책을 세우지 않고 외국인들의 희생을 부른 장관으로서의 기본적 책무를 저버린 분명한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지휘 감독의 책임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서 무고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면 책임자에 대한 추궁은 필요하다.


사고 수습과 함께 재발방지대책도 세워야 한다. 그렇지만 그 대책이란 것이 미련하게 보호소만의 대책이어서는 안 된다. 전국의 구금시설, 소년원, 대용감방을 비롯한 경찰서 유치장, 정신병원 등 사람을 가두는 모든 곳에서의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건 사후약방문이 아니라 안타까운 죽음의 교훈을 되살리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최소한의 책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