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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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몸까지 들여다보겠다는 호들갑(경향신문 100709)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4 10:59
조회
265

국토해양부가 각계의 반대와 우려에도 불구하고, 인천국제공항 등 4개 공항에 알몸투시기를 배치했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개최를 앞두고 테러 위협에 대비해야 한단다. 그렇다고 시민의 알몸까지 들여다봐야 하는지, 시민의 수치심과 모멸감은 괜찮은 건지, 인체에 미치는 부작용은 없는지, 스캔받은 알몸 사진의 외부 유출 가능성이나 해킹 가능성은 어떻게 할 건지에 대해선 언급조차 없다. 그저 테러의 위험만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 


위험이 존재하고,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해서, 그게 꼭 알몸투시기여야 하는 건 아니다. 국토해양부는 알몸투시기가 세라믹 재질의 무기나 분말폭발물을 신체의 은밀한 곳에 숨겨 들여올 때 적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유리나 도자기 따위 재질의 무기로 테러를 성공시키긴 힘들다. 기폭제나 휘발유 없는 분말폭발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여태껏 그런 테러는 전 세계 어디서도 없었다. 하지만 국토해양부는 알몸투시기를 도입했다. 테러 방지를 위한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는 것처럼 밀어붙였다. 


하지만 알몸투시기의 효과는 국토해양부의 설명과 달리 형편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독일의 한 텔레비전 방송이 실험을 통해서 확인한 것처럼, 알몸투시기는 알몸만 들여다볼 뿐, 위험한 물건을 적발하지는 못했다. 휴대용 칼과 휴대폰은 적발해냈지만, 몸 곳곳에 숨긴 기폭제는 찾아내지 못했던 거다. 지금도 인천국제공항 등 주요 공항에는 엑스선 투시기, 금속탐지기, 심지어 액체폭발물 탐지기까지 배치되어 있다. 몸수색과 짐 뒤지는 것도 빠트리지 않는다. 기껏해야 휴대용 칼과 휴대폰을 적발하기 위한 거라면, 알몸투시기보다 훨씬 성능 좋은 엑스선 투시기, 금속탐지기 그리고 몸수색이나 짐 뒤지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테러를 앞세우긴 하지만, 정부가 말하는 테러 위협이 공상과학영화에나 등장할 법한, 실제에선 사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고, 그 위험을 막겠다고 들여온 알몸투시기는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국토해양부는 왜 이런 쓸데없는 일을 하는 걸까? 왜 비싼 외화를 낭비해가며, 시민의 알몸까지 들여다보려는 걸까? 왜 불필요한 소모를 하고, 호들갑을 떠는 걸까. G20 정상회의는 벌써부터 레임덕이 시작되고, 갖가지 국정난맥상에 시달리는 이명박 정부로서는 뭔가를 보여줄 수 있는 호기로 여겨지는 것 같다. 대통령의 치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중요한 행사를 치르는데, 국토해양부도 빠질 수 없다는 아주 단순한 생각이 이런 사태를 만든 것 같다. 


강남구는 코엑스 주변의 전봇대 2000여개를 뽑고, 문화재청은 광화문 복원공사를 5개월이나 앞당겼다. 서울시는 수백개의 공중전화 부스와 보도블록을 바꾸고 노점상을 철거하고 있다. 법무부는 이주노동자를 단속하고, 경찰은 담배꽁초 무단 투기 등 기초질서 사범 단속에 인력을 투입하고 있다. 국회는 군대까지 동원할 수 있도록 ‘G20 정상회의 성공 개최를 위한 경호안전과 테러방지 특별법’을 제정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G20 올인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국민을 다그치는 전두환 정권과 꼭 닮았다. 


그러니 국토해양부도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을 느꼈을 게다. 그것 말고 알몸투시기 설치 이유를 달리 설명할 길이 아무것도 없다. 아참, 경부고속철도 2구간(대구~부산) 개통을 한달 앞당긴 것도 국토해양부의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