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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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건 오래 참기 힘들어!" (프레시안 100730)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4 11:03
조회
348


"불편한 건 오래 참기 힘들어!"


[프레시안 books] 김두식의 <불편해도 괜찮아>


기사입력 2010-07-30 오후 5:55:10







좋은 책이다. 너무 좋은 종이가 좀 걸렸을 뿐이다. 다른 곳에 발표한 칼럼을 모아서 낸 무성의한 책도 아니다. 영화, 드라마를 통해 인권 이야기를 술술 풀어내는 실력도 보통은 아니다.

정직하게 자기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진솔함도 좋았다. '지랄 총량의 법칙'에 충실한 딸과 갈등하지만,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를 보면서 "부모라는 '직업'에 필요한 것은 자녀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이지, 기대나 닦달이 아니라는 사실"(24쪽)을 깨닫는 과정을 솔직히 토로하는 것은 아무에게나 쉬운 일이 아니다. 서문에서는 자기 이야기를 책에 쓰는 걸 허락해준 딸에게 사랑을 전한다고 했다. 아직 중학생인 딸 이야기를 책에 쓰는 게 허락받을 일이라고 생각한 부모가 얼마나 있을까? 몸에 밴 배려와 따뜻함이다.

<불편해도 괜찮아>(김두식 지음, 창비 펴냄)는 동시 상영에 300원이나 500원쯤 했을 재개봉관부터 시작한 그의 영화 여행이 맺은 하나의 결실일 거다. 최소한 81편의 영화, 드라마를 통해서 청소년, 성소수자, 여성, 장애인, 노동자,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 소수 인종을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때론 직접 대면하기도 하고, 때론 영화나 드라마 속의 인물로도 만나지만, 저자가 이들을 만나는 방식은 한결같다. 따뜻한 시선, 겸손한 자세, 온유함과 배려의 마음이다. 몸에 밴 배려와 따뜻함은 공짜로 얻어진 것은 아니다. 불편해도 괜찮다며 끊임없이 이성으로 생각하고, 이웃을 사랑하려는 노력이 반복돼야 한다. 몸에 배려면 의식적으로 관성과 기계적인 반응을 넘어서려고 노력해야 한다.



적지 않은 영화와 드라마를 보았다는 것도 놀랍다. 내게도 재개봉관을 섭렵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그처럼 꼼꼼하진 못했다. 조류, 포유류, 과일 시리즈(237쪽)처럼 체계적인 분류를 하지도 못한다. 내용이나 등장인물, 제목마저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게 없다. 다만 무척 많이 봤다는 것만 남아 있을 뿐이다.


특히 부럽고 신기했던 것은 드라마다. 언제 드라마를 다 챙겨보았는지 의아했고, 놀라웠다. 영화야 기껏해야 2시간이면 되지만 드라마는 다르다. <내 이름은 김삼순>은 16부작, <아이리스>는 20부작이다. 내 수준에선 제목마저 낯선 드라마를 보고, 분석까지 했다. 그것도 인권의 눈으로. 트위터도 열심이고, 매일 일기를 쓰고, 주변 사람과 잘 논다면서, 몇 권의 저서에 연구 생활과 강의, 신앙생활과 가사 노동까지 다 한다면서 드라마까지 챙겨본다는 건 정말 놀랍다. 높은 성취다.


칭찬은 이쯤하고, 아쉬운 점을 짚어보자. 필자는 온통 주류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다. 비록 서울대 앞에서 절망스러운 '끔찍한 기억'(36쪽)을 갖고 있지만, 명문 대학을 졸업했고, 사법 시험 합격, 검사 임용, 미국 유학, 변호사, 대학 교수에 이르기까지 한결 같이 보통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삶을 실제로 살고 있다. 어쩌면 그래서 그의 시선이 좀 더 독특하게 여겨지는 것도 사실이다. 1명의 뛰어난 인재가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지만, 막상 그 뛰어난 인재가 10만 명을 먹여 살리기 위해 골몰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로지 제 잇속만 차리는 엘리트란 사람들이 10만 명의 보통 사람을 위해서 한다는 소리라곤 기껏해야 아나운서가 되려면 '모든 걸 다 던져야 한다'는 희롱뿐이다. 그래서 좀 더 겸손하게, 불편한 것도 참으려고 애쓰는 그의 모습은 남다르다. 좋아 보인다.


하지만 성공한 주류인 탓인지, 그가 소수자를 보는 방식은 좀 거슬린다. 저자의 눈에 들어 온 소수자, 약자들은 저자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지닌 사람들로 비춰진다. 불편해도 괜찮다지만, 결국은 저자와는 다른 어떤 사람들이고, 또 불편한 사람들처럼 여겨진다. 비록 친자식이어도 청소년이 그렇고, 성소수자나 여성, 장애인 또한 마찬가지다. 자신도 노동자면서 노동자를 보는 시선도 그렇다. 병역 거부자나, 인종 때문에 차별받는 숱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타자화의 우려를 말하면서도, 스스로 소수자를 타자화시키는 것 같은 모습이 반복되고 있다. 마치 <사랑의 리퀘스트>에 나온 사람들을 보는 것 같은 거리감과 불편함이 함께 하고 있다.


이 책에서 언급되는 사람들은 남들과 조금 다른 하나의 특징이 도드라져 소수자의 지위를 갖게 되었지만, 따지고 보면 모든 사람들은 어떤 면에서든 도드라진 특성을 갖고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너나없이 소수자의 지위를 갖고 있을 수밖에 없다. 저자에 따르면 소수자들에게는 뭔가 불편하게 하는 게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참자는 건데, 이런 메시지는 불편하다. 인권이 뭔가를 꾹 참아야 하는 불편한 것일 뿐이라는 생각에는 쉽게 동의할 수 없다.


"그동안 너희들이 많이 힘들었구나!" 식의 접근은 저자의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비롯된 이타적 태도, 그리고 몸에 밴 배려 때문일 수도 있다. 그게 성소수자이든, 노동자이든 그는 소수자에 대해 쓸 수 있는 최선에 가까이 가 있다. 어쩌면 그래서 그의 주류적 시선의 아쉬움은 더욱 진하게 남는다.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한 존재이기 위해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그런 이유로 살아가는 것도 아니다. 누구나 자기 행복을 위해 저마다의 이유로 살고 있다. 그래서 소수자에게 느끼는 주류의 불편함은 주류적 방식의 인식일 뿐이고, 그들 방식의 재구성일 뿐이다.


불편한데도 꾹 참는 것 말고, 좀 더 자연스러운 관계와 좀 더 편한 소통을 할 수는 없을까?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그냥 그들의 좀 다른 특성에 최소한의 관심조차 갖지 않고 '쿨'하게 사는 방법은 없을까? 인권을 흔히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권리"쯤으로 정의한다. 사람답게, 행복하게 살기 위해 필요한 인권이, 무겁고 아프기만 한 십자가처럼 여겨지는 건 곤란하다. 인권이 십자가라면 그건 비장한 지사형 운동가나 큰 깨달음을 얻는 지식인들의 전유물이 될 게다. 그게 아니라, 진정으로 사람을 위한 가치이고, 동시에 수단이라면, 그 무거워 보이는 이미지부터 거둬내는 게 좋을 것이다.


인권을 아주 쉽게 정리한다면 결국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내가 보장받기를 원하는 그 권리들을 다른 사람들도 보장받도록 하는 것이 민주 시민이 가져야 할 올바른 덕목입니다. (88쪽)


내가 남에게 하나의 특성이 도드라져 보여, 다른 어떤 특성은 다 제쳐두고 오로지 그것만으로 하나의 정체성으로 판단되길 원하지 않는다면, 나도 남을 그렇게 판단하면 안 된다. 강의 중에 했던 어쩌면 별 것 아닌 이야기에도 민감하게 반응(92쪽)하고, 잘 모르는 것에 대해 늘 조심스러운 태도(95쪽)를 지니고 있으며, 진지한 성찰(108쪽)을 하는 저자라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시각일 게다.


더 가까이 그들에게 다가가라는 게 아니다. 애써 그들을 외면하라는 것도 아니다. 특별한 주목 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 봐 달라는 거다. 적지 않는 경우, 아예 그들을 쳐다보지 않고 무관심한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거다. 물론 그게 외면이 아니라면 말이다. 영화 <300>이 페르시아 사람들을 '적 이미지'로 타자화한다고 지적하면서도, 정작 저자가 소수자들을 불편해도 함께 가야 할 사람으로 타자화하고 있는 것 같다. 만약 인권 감수성을 '불편함'이란 단어 말고 '의식'이나, '생각'(생각 없음과 반대되는 개념으로서의) 등으로 고쳐 썼다면, 소수자를 타자화한다는 의심에서는 훨씬 더 자유로울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형사법 교수답게 저자는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를 변용해 '의심스러울 때는 약자의 이익으로'라며 기억할 만한 원칙(183쪽)을 제시하고 있다. 맞지만, 이것만으로는 좀 부족하다. 인권의 실현은 의심스러울 때만 아니라, 언제나 약자의 이익을 우선함으로써 가능해진다. 승복하기 어려운 선거 패배를 당한 멕시코 좌파의 선거 구호는 "모든 이를 위해 가난한 이(약자)를 먼저!"였다.


지금까지의 문제제기는 그야말로 문제제기를 위한 문제제기일 가능성이 크다. 그는 높은 안목을 지녔다. 인권운동가의 입장에서도 흠잡을 만한 구석이 별로 없었다. 솜씨가 좋았다. 무한도전식의 경쟁 체제와 제도 교육의 성공 사례로 꼽힐 만한 범생이가 이룬 성취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의 독서, 그의 영화 관람, 그리고 그의 인식과 글쓰기는 훌륭했다.


김두식 교수의 <불편하지만 괜찮아>는 메시지가 분명하되, 잘 읽히는 책, 충실한 자료에 근거해 쓴 책, 읽고 나서는 누군가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 분명하다. 오랜만에 좋은 책을 만났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