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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호] 한국사회와 가난 ④ - 가난한 이들의 의료문제 (상) 도시의 그림자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29 10:23
조회
265

서상덕/ 인권연대 운영위원


 시간은 멈춰 있었다. 서울시 성동구 옥수동. 대학로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연극 ‘옥수동에 서면 압구정동이 보인다’의 제목처럼 밤이면 휘황찬란한 압구정동이 내려다보이는 곳, 그래서 더욱 가난을 떠올리기 힘든 곳.


 99:1의 청약경쟁률을 거쳐 1999년 4월, 20층짜리 삼성아파트 11개동에 1,444세대가 입주한 옥수동 달동네 옥수 9구역은 이제 옛 모습을 떠올리기조차 힘든 곳이 돼버렸다. 그러나 현 시세로 5억이 넘는 32평 아파트 단지들을 뒤로 하고 조금만 더 돌아 올라가면 금세 시간이 멈춰버린 딴 세상과 만난다.


 두 뼘 남짓 되는 창문을 열면 좁은 골목을 사이로 건넛집 창문 안이 들여다보이는 골목길을 따라 서너 걸음만 떼면 등에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아시아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히는, 서울 속에서 떠나는 시간 여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서울의 달’, 그래도 TV에서는 희망이 비쳤는데


 1994년 한석규와 최민식, 백윤식과 김용건, 김원희, 채시라 등 숱한 스타들을 배출하면서 부동의 시청률 1위를 달렸던 MBC 드라마 ‘서울의 달’의 배경이 됐던 옥수동 달동네. 돈 때문에 무작정 ‘기회의 땅’ 서울로 올라온 이들이 방 한 칸에서 날마다 새로운 꿈을 꾸었던 강북의 대표적 달동네였던 옥수동은 여전히 가난한 이들이 꿈의 한 자락을 잡고 발버둥치고 있는 삶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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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지리도 가난하고 배운 것 없는 사기꾼 제비 김홍식(한석규)과 순박한 시골청년 박춘섭(최민식)의 삶을 그린 ‘서울의 달’에서 주인공은 부도덕한 신분상승의 망상으로 끝내 인생의 파멸을 맞는다. 하지만 2006년 옥수동 달동네는 그런 주인공 같은 삶조차 남아있을 지 의구심을 품게 한다. 그래도 TV 연속극에서는 곤고한 삶 속에서도 희망이 비치고 재미가 흘렀는데 오늘의 달동네 옥수동에서는 예전보다 더 깊어진 절망과 아픔이 읽히기 때문이다.


 의료사각지대 메우는 가정간호


 가정간호사 이영희 씨(50)가 모는 소형 경차가 아슬아슬하게 골목길을 헤치고 지나가자 이씨를 먼저 발견한 마을사람들이 담벼락에 붙어 서서 손을 흔들어댄다. 마치 문명인을 처음 대하는 오지의 토착민들이 아무 사심 없이 먼데로부터 오는 손님을 맞는 듯한 주민들의 모습은 이채롭기까지 하다.


 길이 어디서 시작되고 어디서 끝날지도 짐작키 어려운 옥수동 달동네에서 주차장을 찾기는 일찌감치 포기해야 할 일이다. 따로 주차장이 없는 골목 한 켠의 청과상을 찾아들어가 사정을 얘기하자 주인이 직접 나와 가게 앞에 주차를 하도록 도와준다. 지난 2002년 천주교 옥수동 성당에 생긴 가정 간호팀을 맡은 후로 하루에도 몇 번씩 골목을 누비고 다닌 덕을 보는 셈이다.


 간호사 이씨가 방문한 곳은 사고로 부부가 모두 팔다리를 잃은 유남준(63) 이정례(61) 씨 집. 대낮인데도 컴컴한 집은 이 간호사가 들어서자 그제서야 불을 밝힌다. 사고 정도가 심한 부인 이씨는 침대에서 고개만 들어 근근이 아는 체를 한다. 부인 병수발에다 정신지체가 있는 아들 끼니까지 챙겨야 하는 유씨는 자신도 한쪽 다리가 없음에도 자기의 불편함은 생각조차 하기 어렵다. 이 간호사가 일주일에 한두 번씩 찾아올 때서야 자신의 불편한 부위를 내민다. 이 간호사는 부부의 혈압과 맥박 등 기본적인 건강 상태 체크는 물론 소소한 생활 얘기에 민원(?)까지 듣는 해결사다. 유씨가 이 간호사의 방문을 더없이 반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질병도 방치하는 가난


 이 간호사가 다시 차를 몰기 시작했다. 좁고 꼬불꼬불한데다 경사조차 만만치 않아 걷기조차 힘든 길을 피해가야 하다보니 조금 먼 길을 돌아가야 한다. 그러지 않고 일일이 걸어서는 많은 환자들의 집을 다 방문하기 힘들뿐 아니라 걷다가 지쳐버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가게 주인이 뛰어나와 가게 앞에 주차한 이 간호사의 차 키를 능숙하게 받아든다.


 “옥수동에서 운전 잘하면 세상 어디 갖다놔도 베스트 드라이버일거예요.” 웃음을 문 이 간호사가 찾아들어간 곳은 단칸방에서 홀로 사는 홍종주(72) 할아버지 집. 다리가 불편한 할아버지는 오늘은 오른쪽 팔에 통증을 호소했다. 집 안에 화장실이 없어 경사진 골목 아랫길에 있는 공동화장실을 써야 하기 때문에 화장실을 오갈 때마다 오른팔에 의지하다시피 해 자연히 생긴 병이다. 얼마 전에는 화장실에 가다 넘어져 한참을 혼자 앓아야 했다. 그때 이 간호사가 없었으면 어떻게 됐을지 아찔할 뿐이다.


 비가 올 때면 거짓말처럼 어느 틈으로인가 비가 새 들어오던 할아버지의 집은 얼마 전 말끔하게 새 단장을 했다. 본격적인 여름이 오기 전에 집을 손봐야 한다는 이 간호사의 주선으로 성당 봉사자들이 나와 낡은 곳을 뜯어 고치고 도배까지 새로 해준 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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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 할아버지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는 새 이 간호사를 찾는 급한 전화가 왔다. 욕창을 심하게 앓는 할아버지가 있어 한시가 급하다는 것이다.


 “욕창을 앓는 분들은 혼자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몸 상태도 좋지 않고 돌볼 가족도 마땅치 않아 오래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서둘러 왕진 가방을 챙겨들고 찾은 집에서는 현관 입구에서부터 범상치 않은(?) 냄새가 흘러나왔다. 몇 가지 냄새가 뒤섞인 듯한 공기는 집에 심한 환자가 있음을 대변해주는 듯했다. 예상대로 할아버지는 엉덩이와 등, 옆구리, 팔 등에 살이 썩어 들어가는 심한 욕창을 안고 있었다.


 “대개는 어쩔 줄 몰라 손을 못 쓰다가 심할 정도로 진행된 후에서야 연락을 해오는 경우가 많아요. 도움을 청할 줄도, 도움을 구할 방법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환자의 상태를 살피는 이 간호사의 얼굴에서는 짙은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 가난과 의료는 다음달에도 이어집니다.


관련기사
ⅰ) 가난, 그 끝자리의 삶
ⅰ) 구룡마을을 통해 본 한국사회의 가난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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