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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호]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세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29 10:19
조회
360

서정민갑(휴머니스트)


 얼마 전 영어학원에서 함께 공부하는 젊은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 깜짝 놀란 일이 있다. 강의를 기다리던 중이었는데 앞 시간의 수강생 누군가가 전자사전을 놓고 가버린 거다. 당연히 선생님께 주인을 찾아달라고 했는데 그 친구가 불쑥 자기 같으면 그냥 갖겠다고 한 것이다. 웃고 말았지만 사실 전혀 농담같이 들리지 않았다. 시쳇말로 요즘엔 지갑을 잃어버리면 다시 찾기가 힘들다고들 하지 않는가. 아마 다들 한두 번씩은 경험한 일일수도 있겠지만 택시에 핸드폰을 놓고 내린 뒤에 다시 찾으려면 최소한 3만원은 기사 분에게 드려야 한다. 가벼운 선행이 돈으로 보상되거나 돈 때문에 양심을 버리는 일이 당연시 되는 세상이 된 것이다.


 날마다 버스를 타고 다니는데 버스만 타면 수시로 불쾌해진다. 차들은 차선도 없고 버스전용차로도 없이 수시로 끼어들고 또 쉴 새 없이 경적을 울려댄다. 어떻게든 자기만 빨리 가면 된다는 거다. 신호가 바뀌는 찰나를 못 기다려 녹색불인데도 차들은 휙휙 지나가고 사람들 역시 횡단보도가 아닌 곳에서도 무시로 길을 건넌다. 버스가 오면 줄을 서서 질서 있게 타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고 어떻게든 먼저 타려고 기를 쓴다. 노인 분들에게 자리를 비켜드리는 사람들도 적지만 자리를 비켜드려도 고맙다고 말하는 이도 많지 않다. 게다가 뺑소니 사고 목격자를 찾는 플래카드는 왜 이리 많은지.


 지난 지자체 선거운동을 할때 느낀 것인데 민주노동당의 대표적인 공약이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이다. 그런데 이미 예전에 좋은 반응을 보였던 공약을 다시 말하는데도 사람들의 반응이 예전 같지 않았다. 뭐랄까? 입성이 좀 반듯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 이야기에 시큰둥한 눈치였다. 우리가 말하는 부자는 상위 5%의 사람들로 동네 시장 입구 같은 곳에서는 절대로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었음에도 어떤 사람들은 흡사 민주노동당이 자신의 부를 억지로 빼앗아갈 것처럼 의심하는 것 같았다. 자립형 사립고의 등록금이 기천만원이 넘는다 해도 그것을 반대하기보다는 자기 자식만은 어떻게든 보내겠다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남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자기만은 잘 살아보겠다는 심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최소한 좋은 일은 하지 못할망정 나쁜 일은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법에 걸리지 않는다면 기꺼이 나쁜 일을 해서라도 부자가 되겠다고들 한다. 존경하는 사람의 1순위로 이건희가 꼽히더니 자신도 부자가 되면 미련 없이 한국을 떠나 동남아시아에서 황제처럼 살겠다고들 한다. 이 나라야 어떻게 되든 말든 남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나 혼자만이라도 살아남으면 된다는 거다. 우리 사회의 공공선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가는 동아줄에 매달려 신분상승이라는 꿈을 꾸는 수많은 사람들, 그들은 남을 짓밟고 올라서라도, 자신의 발목을 잡은 이들의 손을 무참히 자르는 한이 있더라도 자기만은 반드시 위로 올라가겠다 한다. 이제는 아이 돌잔치에서도 착하게 살라거나,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 되라기보다는 돈 많이 벌라고 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아져버렸다.


 독립운동에 삶을 바친 이들이 가장 좋은 대접을 받는 세상이었다면, 민주화운동에 청춘을 불사른 이들이 존경받는 세상이었다면, 온갖 불법으로 재산을 쌓은 이들이 엄중한 법의 심판을 받는 세상이었다면, 재벌과 부패 정치인들의 죄악이 언론을 통해 낱낱이 공개되고 폭로되는 세상이었다면, 전태일의 삶이 교과서에 실려 가르쳐지는 세상이었다면, 국가가 국민들의 최소한의 삶을 책임지는 세상이었다면 과연 그렇게 되었을까? 염치는 고사하고 사람이 사람을 기꺼이 잡아먹는 세상이다. 성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결코 혁명의 꿈을 버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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