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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호] ‘브로크백마운틴’을 보고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29 11:14
조회
245

위대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아내와 나는 연애시절부터 이런 저런 영화보기를 좋아했다. 아내가 좋아하는 영화는 주로 조용하고, 내용이 풍부하고, 감미롭고, 때론 감정의 역류를 억제할 수 없는 것들이고, 내가 좋아하는 영화는 주로 때리고, 부수고, 웃기는 것들이다. 하지만 같이 영화를 본다. 아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내가 좋아하는 경우는 있지만, 아직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아내가 좋아하는 경우는 드물다. 나의 감성이 허리우드 영화에 잠식된 결과겠다.


 어제 밤 아내와 ‘브로크백마운틴’이라는 영화를 보게 됐다. 아내는 친절하게 내게 말한다. “이 영화가 각종 영화제를 휩쓸고 있데.” 아내의 설명은 여기까지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부류를 알고 있는 아내는 내가 영화를 보며 지루해하거나 중간에 영화보기를 그만둘까봐 사전포석을 한 셈이다. 끝까지 보라고.


 아니나 다를까. 지루하다. 대자연의 풍부한 영상, 한 컷을 잡기도 어려울 아름다운 화면 이것만으로 나의 관심을 끌기에는 부족했다. 그리고 두 사내가 나온다. 두 사내가 같이 양치기 아르바이트를 한다. 양치기 청년들. “늑대가 나타났어요.”라고 거짓말을 하기에는 조금 나이가 든 두 사내. 도입부를 보며 나는 “저 많은 양들을 어떻게 다 관리한데. 늑대가 나타나 한 마리 물고 가도 모르겠구먼.”이라고 말한다. broke.jpg


 영화가 조금 지났다. 한 사내가 식량을 가지고 오다 곰을 만나고, 놀란 말에서 떨어지고, 짐 싣고 오던 노새 2마리를 잃어버리고, 노새를 찾으러 뛰어가고, 밤이 되어서야 얼굴은 피투성이가 되어 노새와 함께 캠프로 돌아온다. 나머지 한 사내가 피 흘리고 있는 사내에게 얼굴을 닦으라고 수건을 준다. 말없던 한 사내가 조금 말이 많아졌다. 술을 같이 마신다. 둘에게 양은 이미 관심 밖이고 술 마시고 놀다 그만 캠프에서 나동그라진다. 한 사내는 텐트 안에서, 한 사내는 불 옆에서 나동그라졌다.


 그런데 영화가 이상하게 흐른다. 나는 잘 그려 놓은 서부극정도로만 상상하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는데 난데없는 이야기가 눈앞에 시작되고 있다. 거친 사내 둘이 텐트 안에서 서로의 욕구를 드러내고, 웃통을 벗고 풀밭에서 뒹군다. 그리고 양들의 방목이 끝나자 아르바이트로 시작했던 양치기도 끝나고 둘은 헤어진다. 더 거칠어 보이던 사내가 다른 사내를 보내고 나서 헛구역질을 하는 것 같았다. 아니 울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활을 떠난 화살처럼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엔딩...



 답답했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부류의 영화를 보고나면 항상 남는 느낌이다. 무엇인지 정리되지 않는 느낌. ‘우리의 히어로가 지구를 구하는 걸로 끝내면 더 이상 잔상도 없고, 깔끔하고, 얼마나 좋아.’라는 푸념도 한다. 그러나 아내에게 들리지 않게...


 인간의 사랑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통된 관심사다. 다만 단서가 붙는다. 남자와 여자의 사랑일 것. 어떤 방식으로 사랑을 그려도, 예컨대 그것이 그림이건, 소설이건, 영화이건 일단 비판과 비난을 받을지언정 금기시하지는 않는다. 남자와 여자의 사랑인 한.


 최근 개봉되었던 한국 영화 중에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이란 영화가 있었다. 여기에는 7가지의 사랑 얘기가 있다. 그런데 유독 관객들이 웃음을 참지 못했던 사랑 얘기가 하나 있다. 극중 천호진이 분한 조 사장의 사랑 얘기가 그것이다. 왜? 이성이 아닌 동성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weeks.jpg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의 한 장면


 

 동성애. 동성애의 역사는 어쩌면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계속되어 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성애만큼이나 자연스러운 것일 수 있다는 얘기다. 인간을 제외한 동물 중 종족번식을 위한 목적 외의 목적으로 사랑행위를 하는 동물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인간의 사랑행위가 동물의 사랑행위와 그 목적에서부터 다른 마당에, 자신의 사랑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동물과 비교하며 자연의 섭리 운운하는 것은 비정상이고 몰상식이다. 이미 인간은 동물과 자신을 구별하기 위해 스스로 존엄한 존재임을 표방하고 있지 않은가. 그 존엄한 존재가 자신의 존재 형식을 스스로 규정하고자 한다. 그것도 자신이 가진 자연스런 감정에 따라. 무엇이 문제인가.


 사랑하는 두 사내의 만남을 4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가로 막고 있던 장벽은 무엇일까. 가족에게 거짓말을 해야만 비로소 만남의 기쁨을 얻을 수 있게 한 장벽은 무엇일까. 14시간이나 되는 거리를 두고서만 사랑을 가능하도록 한 장벽은 무엇일까. 기껏해야 1년에 한번 아니면 2년에 한번 만날 수밖에 없도록 하는 장벽은 무엇일까. 가족과 헤어져야만 얻을 수 있는 사랑이도록 만드는 장벽은 무엇일까. 이렇게 만나지만 두 사내의 눈에 눈물이 고이도록 만드는 장벽은 무엇일까. 그리하여 죽음으로 서로를 갈라놓는 장벽은 무엇일까.


 만년설 뒤덮인 와이오밍 주의 수려한 자연 경관 보다 아름다운 두 사내의 사랑. 이런 두 사내의 사랑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묻고 싶다. 과연 당신은 두 사내가 알고 있는 사랑을 해본 적은 있느냐고.


위대영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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