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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호]《회원 인터뷰》순창 농협장댁 큰아들 양승영 회원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31 13:08
조회
225

서상덕/ 인권연대 운영위원


 그는 한 달에 한 번 으레 부모님이 계신 전라북도 순창을 찾는다. 임금님께 진상했다던 ‘순창 고추장’으로 유명한 바로 그곳이 그가 나고 자란 고향이다. 양승영 회원을 알아가는 일은 여기서 시작하면 거의 어김이 없을 듯하다. 가는 길이 좋아진 지금도 서울에서 족히 서너 시간 걸릴 거리를 기쁘게(!) 찾는 그에게서 언뜻 무슨 고집 같은 게 비치기도 한다. 나중에야 깨닫게 된 것이지만 그것은 고추장만큼이나 얼얼한 사람에 대한 속 깊은 애정 때문이라 해도 좋을 듯하다.


 그와의 인연은 첫 만남을 시작으로 연거푸 술자리에서였다. 필자 또한 술을 좋아하는 편이니 술을 기회로 한 만남은 어쩌면 자연스럽기도 한 것이지만, 술자리에서의 태가 만만찮은 강적을 만났다는 느낌을 들게 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20년 가까운 주력(酒歷)에 술이 무섭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 필자로서는 술자리를 통해 사람을 들여다보는 못된(?) 습관을 즐기기도 하는 편이다.


 한 번은 그가 술자리에서 대뜸 “노해 형님이 낸 시집 제목 보고 깜짝 놀랐어요. <사람만이 희망이다> 늘 제가 되뇌던 말이었거든요.”라는 말을 꺼내 듣는 사람을 당혹스럽게 하기도 했다. 그의 말에 무수한 생각이 머릿속에서 빙빙 떠돌기 시작했다. ‘우리가 아는 선에서 노해라면 박노해! 형이라 부를 정도면…. 그럼 무슨 사이지….’


 알고 보니 1958년생인 박노해 시인과는 한 살 터울이어서 그의 어감에 담긴 ‘대단한’ 뭔가를 단박에 찾기 힘들었지만 이내 그가 살가운 형제마냥 불러댄 ‘노해형’과의 관계를 풀어갈 수 있었다. 인권연대 소식지에 나란히 이름을 올린 ‘양봉만’ 회원이 그의 막내동생이라는 게 열쇳말이었다. 바로 박노해 시인이 연루된, 지금은 기억도 어슴푸레한 사노맹 사건으로 박 시인과 비슷한 시기에 옥고를 치른 막내가 질긴 인연의 끈이었던 셈이다.


 5년 전 회원이 된 사연도 그의 됨됨의 단면을 들여다보게 한다. 당시 인권연대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던 김희수 변호사의 권유로 두말없이 회원이 됐다는 것. 김 위원과는 중학교시절부터 둘도 없는 친구처럼 지내온 사이였다지만 그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한 것 같았다. 그래서 떠오르는 느낌에 따라 “사회에 눈을 뜨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냐”는 물음을 던져보았다. 그제서야 머릿속에 희미하나마 밑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정미소를 운영하는 ‘순창 농협장댁 도련님’이라는 그의 뿌리가 드러나자 실마리가 잡히는 듯했지만 이내 고개가 갸우뚱거려졌다. 그의 출발은 소위 말하는 ‘있는집 자손’ 아닌가. 사회에 눈을 뜰 수 있는 계기를 찾기 쉽지 않은 지점이다.


 “동리에서 가장 큰 집이었죠. 그렇지만 아버지도 할머니도 거지가 찾아오면 한 번도 내치는 일 없으셨지요. 오히려 듬뿍듬뿍 고봉밥을 담아 마루로 청해 겸상을 하실 정도셨지요.”


 동리에서 한 대밖에 없던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다닐 때 꼴 베러 다니느라 정신이 없는 동네 친구들이나 여덟 명이나 되던 머슴들의 모습은 어린 가슴에도 깊이 각인되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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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필자


 농협장댁 도련님은 그저 남들처럼 무난하게 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세상은 그가 상상치 못했던 모습으로 그를 불러냈다. 1991년 3월 사랑스런 막내가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나 보던 어마어마한 공안사건으로 잡혀 들어가고 그해 4월 강경대 열사가 시위 도중 경찰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맞아 사망하자 공안통치 종식을 위한 민중의 저항이 본격화되면서 거리는 87년 6월 항쟁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 그는 언제부터인가 그 거리의 한 가운데서 박노해 시인과 강경대 열사의 어머니와 어깨를 겯고 서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막내 동생 옥바라지를 해오던 중 IMF사태가 겹치면서 가세가 급격히 기울어 난생 처음 사글세방이란 데를 찾아들어가기도 했다. 개인사업을 해오다 회사에 적을 두고 일을 하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부터였다. 스스로 ‘워커홀릭(일중독증)’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일에 매달렸다. 거의 매일 도시락을 싸다니다시피 했다. 어떨 때는 밥 먹으러 나갈 시간도 없어 늘 두세 개의 도시락이 그의 가방에 들어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타고난 품성이 그래서일까, 그 와중에도 조금이라도 손 안에 생기면 주머니에 남아나질 않았다. 동사무소를 직접 찾아가거나 지인들을 통해 조손·결손가정 등 손길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소개받아 조금씩이라도 도움으로써 어려운 이웃들과 멀어져본 적이 없었다. 그것도 그냥 재정적 지원만 하는 게 아니라 한데 어울려 놀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나눌 정도로 살갑게 대한다. 지금도 도시락을 싸다닌다는 그는 그저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를 돌아보며 욕심을 부리지 않고 살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의 이런 마음씀씀이가 통했음인지, 국내 유수 생명보험회사에서 여·수신 종합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전국 곳곳으로 ‘원정 출장’을 다니느라 토·일요일도 없다. ‘주5일 근무제’는 그의 사전에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다.


 그는 종교가 없다. 그런데도 가슴 한켠이 무거워질 때면 교회고 절이고 찾는다.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행동할 수 있도록 이끌어 달라”고 기도하기 위해서란다.


 평화스런 시골에 조그만 땅을 마련해 손수 농사를 지으며 찾아오는 친구들을 맞아 밤새 막걸리를 들이킬 수 있는 삶을 꿈꾼다는 그. 역시 필자와는 마음이 통하는 데가 있다는 생각에 미소가 떠올려졌다.


 술김에서였겠지만 그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말,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단어가 ‘배려’라고 무려 세 차례나 강조했다. 그 자신 달랑 토큰 두 개 들고 회사를 다닐 때도 그 놈의 ‘배려’라는 말이 가슴에 차올라 누군가에게 남은 토큰 한 개 쥐어주고선 몇 시간을 걸어 돌아오곤 했단다.


 몇 번 만나다 보니 그의 장점이자 단점 하나를 발견하게 됐다. 친구 자랑이 유난하다는 것이다. 스스로 말하길 친구복이 많단다. 정말 그런지 모른다. 늘 친구들을 거울삼아 자신의 모자람을 깨친다니, 그 또한 복임에 틀림없다.


 “부끄럽구만요.” 그는 대화 말미에 꼭 이런 말을 덧붙인다. 마음뿐이고 양심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게 늘 가슴에 남는다는 뜻이다.


 낼모레면 오십 줄에 들어서는 나이임에도 스스럼없이 자신의 모자람을 털어놓을 줄 아는 양 회원, 그는 이런 자신의 인간적인 모습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 복된 존재가 되고 있음을 아는지 모르겠다.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내가 가는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그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왜인지 이런 노랫말이 자신도 모르게 읊조려졌다.


서상덕 위원은 현재 가톨릭신문사에 재직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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