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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호] 군경협 김정숙 회장 “전 지금 도진이가 내준 숙제를 하고 있어요”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31 14:21
조회
275

이재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1998년 4월 12일.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새벽부터 비가 많이 왔다. 5시 50분, 평소보다 일찍 눈을 떴다.
비오는 창밖을 바라보며 군에 간 아들을 생각했다.
‘훈련을 하고 있다는데 비가 와서 고생을 하겠구나’
그런데 새벽부터 전화벨이 울렸다. 5시 55분이었다.
수화기 너머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박도진 중위네죠?”


“네 누구신대요?” 네 번이나 물었지만 답이 없었다.


다만 다시 연락을 주겠다며 상대방은 전화를 끊었다.
불길한 마음에 아들에게 삐삐를 쳤다.


‘부대에서 널 찾는 모양이다. 빨리 연락해봐라...’


잠시 후 다시 전화가 왔다.


“박도진 중위가 자살했습니다”


앞이 깜깜해졌다. 어머니는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부랴 부라 달려간 50사단 123연대 장교 숙소.
아들은 자는 듯 누워 있었다.
하지만 온 몸은 발가벗겨져 있었다.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도진이는 ROTC 35기였다.
졸업동기 부회장을 했고 장기 군복무를 지원할 만큼 군에 대한 애착이 큰 애였다.
그런 도진이가 자살을 하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더 이해하지 못할 것은 부대의 설명이었다.
자기색정사라는 것이다. 성적 흥분을 높이기 위해 비닐봉투를 뒤집어 쓴 채 자위행위를 하다가 질식해 숨졌다는 것이다.
의문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자위행위를 했다면 주위에 흔적이 있어야 할텐데 주위는 너무 깨끗했다.


“아이 아버지가 애를 씻겼냐고 물어봤어요. 그런데 부대사람들은 안 씻겼다고 그래요. 그러면서 망자가 부패되니 빨리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는 거에요. 가족들이 현장을 제대로 볼 시간도 주지 않고 사체를 통합병원으로 옮겼어요”


머리에 썼다는 비닐봉투는 너무 커서 도저히 질식한다는 것이 가능해보이지도 않았다.
현장을 찍은 사진은 발가벗은 사진과 추리닝 옷을 입은 사진 두 종류가 있었다.
사체를 씻기지도 않았고 현장을 그대로 보존했다는데 어찌 이런 두 종류의 사진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망자가 혼자 옷을 입었다 벗었다 했단 말인가?


“부검은 안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부검을 안하면 자살을 인정하겠느냐고 해서 그럴 수 없다며 부검을 했어요. 그런대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죠. 자기색정사라는 거예요.”


부대에선 도진이가 너무 모범적으로 군 생활을 잘했다며 순직처리를 해주겠으니 바로 화장을 하자고 했다. 사망원인도 그렇고 하니 돌아가서 조용히 있어주면 순직처리해서 국립묘지에 안장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한달을 기다렸지만 부대에선 연락이 오지 않았다. 전화를 해서 물어보니 국방부 심의에서 기각돼 순직처릴 할 수 없다는 답변이었다. 부대를 찾아가서 항의하고 소동도 벌였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이때부터 김정숙 회장의 싸움은 시작됐다.


“국방부 앞에서 사인을 밝히라고 요구도 했어요. 그런데 헌병대에서 한 잘못된 초동수사 결과가 절대 안 뒤짚히더라구요. 국방부에서 진정해서 다시 수사해도 똑 같은 결론만 나오는거에요. 우리가 ‘억지를 쓴다’는 거죠“


99년부터는 다른 유가족들과 함께 거리로 나섰다. 처음엔 7명이 함께 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군가협이다. 김정숙씨는 군가협 회장을 맡았고 2004년부터는 군가협에서 분리된 군경의문사진상규명유가족협의회(군경협)의 회장을 맡고 있다.


명동성당에서도 국회 앞에서도 국방부 앞에서 농성도 했다. 몇 달 간의 농성 끝에 2005년 군의문사진상규명특별법이 제정되고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활동에 들어갔다. 하지만 김정숙 회장은 군 의문사위는 국방부를 또 하나 옮겨놓은 것 밖에 안 된다고 말한다.


“대통령 군의문사위가 활동해도 진상규명이 쉽지는 않습니다. 헌병대가 미리 짜맞춰놓은 초동수사에 얽메어 한발짝도 못나가고 있어요. 직원들이 조사경험도 없어요. 가족들에게 자료협조요청도 안해요. 초동수사만 가지고 하는거에요. 이런 상황에서 우리 유가족들이 살고 있는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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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경의문사진상규명유가족협의회
김정숙 회장


군의문사위원회에선 6백여 건의 진정사건을 접수 했고 그간 언론에 보도됐듯 몇 건은 구타나 가혹행위에 의해 사망했다고 진상을 규명하기도 했다. 김 회장의 아들 박도진 중위 사건도 지난해 6월 조사개시 결정이 내려졌지만 지금까지 조사진행 과정이나 경과에 대해선 아무런 연락도 없다.


"의문사위에 접수된 604건 가운데 15년 이내 사건 가운데 진상규명된 것은 거의 없습니다. 공소시효가 남아있기 때문이죠. 의문사위의 조사는 거의 양심선언에 의해 밝혀지고 있는데 15년 이내의 사건은 양심선언을 해도 법적인 처벌을 면할 수 가 없어요. 의문사위는 그저 선처를 요구할 수만 있죠. 그러니 양심선언하는 사람이 나올 수 없는 거에요."


가족들이 어렵게 부대 동료과 관계자들의 진술을 확보해도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애초 부모에게는 진실을 털어놓았다 하더라도 위원회 조사에선 진술을 번복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설사 가족들이 진술서를 문서로 받았다 하더라도 법적 효력은 인정되지 않는다. 김 회장은 군 의문사위가 조사과정에서 가족들의 의견이나 조언을 수사에 좀 더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의 요청은 참고인 조사할 때, 가족들이 참관해서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에요. 참고인이 진술을 번복할 때 진정인인 가족의 입장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김 회장도 다른 유가족들도 군의문사위원회가 모든 사건의 진상을 다 밝힐 것이라고 기대하진 않는다. 다만 사건의 발생원인에 대해 보다 자세하게 조사를 해서 원인규명이라도 희망적으로 해주면 만족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유가족들의 답답한 심정을 좀 대변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의문사위가 정부나 대통령에게 이런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조사를 해보니 가족들의 말이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이미 은폐가 되어 있어서 조사는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이들의 명예를 회복시켜 줄 수 있도록 국가에서 역할을 해줘야 합니다.’라고 위원회가 부모대신에 이렇게 애기해줄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요즘 군경협이 힘을 쏟고 있는 것은 진상규명과 함께 군 의문사자들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작업이다. 가장 힘든 것은 민주화 운동과정이 아니라 90년대 이후 군에서 사망한 사건에 대한 여론의 무관심이다. 사실 김정숙 회장도 아들 도진이의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여느 사람과 다르지 않았다.


“난 일개 주부였어요. 아들이 간 후로부터 길바닥에 나선거지...
아들이 죽기 한 달전에 김훈 중위 사건이 있었어요. 그때만 해도 ‘아니 삼성장군 아들이 왜 자살했지? 별일이야 했거든요. 왜 죽을려면 집에서 죽지 왜 군에서 죽지. 그 힘든 훈련 받구.. 미쳤어?라고 생각했는데 한달 있다 도진이가 사고 난 거에요.
모든 국민들이 다 그렇게 생각할 거에요. 나도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아들 사건 조사해보면서... 이렇게 바뀐 거지...”


국회의원들조차 군 의문사라고 하면 7-80년대를 생각하고 그건 과거사위원회에서 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는 실정이다.


“어느 국회의원은 여론이 무섭다고 하더라구요. 민주화 운동했던 의문사는 여론이 수긍하지만 그 이후의 의문사에 대해선 여론이 좋지 않다는 거에요. 그런데 이것은 군이 애초에 ‘자살’이라고 못 박아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런 억울한 심정은 다른 유가족도 마찬가지이다.


“최근 인혁당 사건에 대해 민주화된 사법부는 그 판결을 뒤집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정치적 사건도 아니고 국방의무를 충실히 수행하다가 누명을 쓴 거에요. 아들을 두 번 죽이는 거에요”


민주화된 이후에도 군내 사망사고는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과거가 아닌 현재 바로 지금의 문제이다. 자식이 죽었는데 부모까지 죄인 취급받는 현실도 여전하다. 김 회장은 이런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선 군 자살자 관련 법안개정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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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경의문사진상규명유가족협의회 사무실에서 만난 회원들


현재 국회에는 한나라당 공성진 의원의 국가유공자법 일부 개정안과 대통합민주신당 장영달 의원의 ‘국립묘지관계법 개정안’이 발의돼있다. 공성진의원은 법안은 ‘자살이라 할지라도 업무와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거나 구타 등 가혹행위로 인한 것이라 판단될 경우엔 국가유공자의 범위에 포함한다’는 것이고 장영달 의원의 법안은 ‘구타 가혹횅위 스트레스로 인한 사망사건도 국립묘지에 안장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김 회장은 이 법안이 지금 단계에선 유가족들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는 현실적인 안이라고 생각한다.


“군에 크게 실책이 안되고 많은 가족들의 억울함을 풀어 줄수 있는 안이라고 생각해요. 비록 사인은 못 밝혀도 명예회복을 시켜줄 수 있는 것이죠. 한을 풀지는 못하고 상처와 아픔은 갖고 가지만 자손의 명예는 회복시켜 줄 수 있는 법안입니다. 군이란 조직은 있어야 한다고 봐요. 군이 다치지 않고 문제를 풀 수 있는 법안이 나와야 합니다.”


이 법안이 올 11월 정기국회에 상정될 예정이다. 대선을 앞둔 시점이라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법안 통과를 위해 앞장 설 계획이다.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다.


"예전에 명동에서 15일 농성할 때 허리가 질질 끓어도 했어...
그 때 기자가 이렇게 묻더라구. ‘군이란 거대한 조직과 싸우는 건 바위에 계란 치기인데 이길거라 생각하냐고’.
그래서 ‘계란도 계속 치다보면 바위도 깨진다. 내 생명 다할 때까지 칠거다.
나 같은 가슴 아픈 일이 두 번 다시 생기지 않아야 한다‘고 대답 했어요"


그리고 이 법안이 통과되면 군경협 회장자리에선 물러나고 싶다는 얘기도 조심스럽게 꺼냈다.


"한 10년 동안 이 자리에 섰던 것 같아. 아들이 있었을때는 이런 회장 자리는 좋지... 도진이 ROTC할때는 내가 학부모회장도 했었거든. 그런건 명예롭지. 아들이 똑똑하고 잘났으니까... 그런데 이거는 좋은 게 아니잖아. 남들 앞에서 애기할려면 가슴메어지는 얘기 다시해야 하고... 이제는 평 임원으로 해야 하지 않나 싶어."


김정숙 회장은 지난 10년 걸어온 이 길이 언제 끝날지는 모른다. 다만 하루 빨리 그 날이 왔으면 하는 바람으로 묵묵히 길을 걷고 있다.


“아들이 숙제를 내줬어.
왜냐 하면 도진이가 평소에 ‘엄마 군이 개혁이 되야 돼... 군이 썩었어...’라는 말을 자주했거든.


그 때는 ‘도진아. 너 혼자 한다고 개혁되는 게 아냐. 아무리 화나도 참아라. 같이 더불어 가야 한다.라고 말 해줬거든.
근데 그렇게 도진이가 나한테 숙제를 낸 거지...


“군을 개혁시키라고”


이재상 위원은 현재 CBS방송국 PD로 재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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