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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호] 산낙지를 위하여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31 17:49
조회
338

이광조/ CBS PD


     신촌 뒷골목에서 술을 먹더라도
     이제는 참기름에 무친 산낙지는 먹지 말자
     낡은 플라스틱 접시 위에서
     산낙지의 잘려진 발들이 꿈틀대는 동안
     바다는 얼마나 서러웠겠니
    우리가 산낙지의 다리 하나를 입에 넣어
    우물우물거리며 씹어 먹는 동안
     바다는 또 얼마나 많은
    절벽 아래로 뛰어 내렸겠니
    산낙지의 죽음에도 품위가 필요하다
    산낙지는 죽어가면서도 바다를 그리워한다
    온몸이 토막토막난 채로
    산낙지가 있는 힘을 다해 꿈틀대는 것은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바다의 어머니를 보려는 것이다


    - 정호승, ‘산낙지를 위하여’


 내가 좋아하는 한 시인은 맛있는 산낙지를 먹다 말고 이런 시를 썼다. 시인의 감수성이라고는 없는데다 먹보인 나로선 상상도 못할 발상이다. 하지만 시인의 시를 보며 나 또한 가슴 속에서 불끈 솟아오르는 무엇이 있었으니, 그것은 내가 좋아하는 낙지며 대합, 홍합, 새조개, 키조개 등의 각종 조개와 싱싱한 물고기들을 도대체 누가 무슨 권리로 사지로 몰아넣고 있는가에 대한 분노였다.


 참으로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발상 같기도 하지만 내가 나름대로 정의감을 갖고 분노할 수 있는 건 그들의 생존 자체를 파괴해버리는 것보다는 그들이 잘 살 수 있는 환경을 지켜주면서 먹는 게 낫다는 생각 때문이다.


 뜬금없이 웬 낙지 얘기냐? 태안 앞바다를 기름으로 뒤덮어버린 원유유출 사건에 열을 받았기 때문이다. 뭇 생명의 존엄성을 생각하는 시인의 마음은 아니지만 기름을 온몸에 뒤집어 쓴 채 죽어가는 철새와 물고기들을 보면 코끝이 찡하다. 말 못하는 짐승들이지만 얼마나 고통스럽고 황당했겠는가. 더구나 사고를 내고도 한 달 가까이 사과 한마디 안하고 버틴 사람들을 보면 입에서 욕이 절로 난다.


 이런 판국에 한편에선 대통령 직 인수위원회가 새만금에 18홀 골프장을 최대 30개까지 짓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세계 최대란다. 물론 새만금에는 골프장만 짓는 것이 아니다. 대규모 항만과 산업단지, 공항, 물류기지 등을 만든단다. 애초에 부족한 농지를 만들기 위해 여의도 면적의 100배에 이르는 거대한 간척지를 만든다고 하더니 이제 농지는 안중에도 없다. 처음부터 ‘농지를 만든다는 건 거짓말 아니냐’며 그렇게 따졌지만 식량부족, 통일시대 운운하며 농지가 필요하다고 우겼던, 아니 새빨간 거짓말을 했던 사람들은 찔리는 구석도 없는 것처럼 당당하기만 하다.


 그 갯벌이 당신들 것인가? 갯벌 근처에 사는 주민들의 것인가? 전북도민들만의 것인가?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갯벌의 혜택을 많이 누리는 거야 시비를 걸 일이 아니지만 그 갯벌은 전북도민만의 것도 아니고 갯벌 근처에 사는 주민들만의 것도 아니다. 더더구나 그 갯벌이 책임이라고는 지지 않는 정치인들의 것은 아니지 않는가?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든 갯벌의 풍광과 그 속에서 자연이 베푸는 혜택을 누릴 권리가 있고 지구를 한 바퀴씩 돌며 잠깐씩 그곳에 들르는 철새들도 갯벌에서 굶주린 배를 채우며 휴식을 취할 권리가 있건만 누가 무슨 권리로 모든 생명이 함께 누려야할 갯벌을 망가뜨리고 팔아먹는단 말인가.


080123web02.jpg


태안반도 곳곳에는 폐사된 해산물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흥분했다. 낙후된 지역에는 개발이 필요하고 그에 따라 갯벌도 어느 정도는 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계 어느 곳에서도 우리나라처럼 이렇게 무식하게 공공의 자산을 함부로 망가뜨리는 사례는 듣지 못했다. 원유사고로 인한 생태계 파괴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갯벌이라는 생태계의 보고가 아예 그 존재 자체가 사라진다는 건 더 심각한 문제가 아닌가. 세계 5대 갯벌 생태계로 꼽혔던 우리나라의 갯벌은 지난 1985년에 비해 이미 면적 자체가 25퍼센트나 줄어들었고 갯벌의 오염과 파괴 정도도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 동서남해안 발전 특별법으로 인해 국토의 29퍼센트에 이르는 연안지역에 개발위험에 놓였다고 하니 가까운 미래에 우리는 갯벌을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기름범벅이 된 태안 연안과 충남의 해안선은 이미 오래전부터 각종 간척사업과 물막이 공사로 갯벌의 존재 자체가 심각한 위협을 받던 곳이다. 여기에 기름 오염까지 덮쳤으니 그 수 많은 생명들의 원성을 누가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조개구이며 홍합국물을 즐기는 사람들이여, 당신들이 먹고 있는 조개와 홍합의 상당수가 이미 중국과 북한에서 수입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전북 부안의 채석강에서 우리가 중국산 백합조개를 사먹어야겠는가.


 미안한 마음으로 산낙지를 먹건 그냥 즐거운 마음으로 먹건 낙지들이 살 수 있게 그 터전만은 지켜줘야 하지 않겠는가. 산낙지와 조개들을 생각하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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