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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호] 고교 평준화 세대의 변명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31 17:37
조회
253

도재형/ 인권연대 운영위원


 1980년대 중반 나는 지방 도시의 한 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1학년 여름방학 내내 전국체전 식전 행사 준비를 위하여 학교 근처 운동장에서 마스 게임 연습을 하였다. 2학기에도 10월 전국체전 때까지 오전 수업을 마친 후에는 그 연습을 해야 했다. 2학년 때부터 정상적인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고, 3학년 때에는 여느 학교와 마찬가지로 방과 후 10시 30분까지 야간자습을 했다. 그것이 내가 대학 입시를 위하여 한 준비의 대부분이었다. 그 무렵에는 정부의 지침에 따라 모든 과외가 금지되어 있었다. 언론은 학생들의 ‘학원에서의 학습권’을 신경 쓰지 않았다. 학부모들도 단지 학교가 학생들을 오래 붙잡고 공부를 시켜 주기를 원했다.


 내가 살던 도시의 모든 고등학생들은 고교 평준화 정책에 따라 중학교 3학년 때 치른 연합고사 성적 하나로 인문계 고교의 진학 여부가 결정되었다. 고등학교 입학을 위해 특별히 공부한 기억은 없다. 그 때도 과외는 할 수 없었다. 인문계 고교 진학이 결정된 이후 학생 자신이 학교를 선택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당시 나는 동네 근처에 고등학교가 있었음에도, 버스로 20분 이상 걸리던 곳에 있던, 설립된 지 10년이 채 안된 고등학교에 배정되었다. 나는 별 불만 없이 그 고등학교를 다녔고, 부모님 역시 그 것 때문에 나의 장래를 걱정하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마찬가지였다. 그 무렵에도 과학 고등학교란 것이 있었다. 그 곳은 과학기술대학교와 같은 특성화된 대학에 진학하기를 희망하는 학생들이 입학하였다. 실제 그 학생들의 대부분은 대학에서 이공계통의 전공을 선택하였다.


 내가 대학에 입학할 무렵, 합격 여부는 내신 등급, 학력고사 성적, 논술시험 등의 성적으로 결정되었다. 현재 제도와의 차이점은 논술시험 점수 편차가 매우 낮았다는 것, 학력고사의 과목 수가 많고 문제 유형이 비교적 단순했다는 정도였다. 내 기억으로는 논술시험의 점수 편차는 1, 2점이었다. 문제 역시 기초적인 작문 실력을 보는 정도였다. 따라서 대학들은 내신 등급과 학력고사 성적만으로 학생들을 선발해야 했다. 당시에도 서울의 어떤 지역의 학생들이 공부를 잘 한다는 얘기는 있었다. 그러나 대학이나 언론이 학교 간 학력 편차나 대학의 학생 선택권을 크게 문제 삼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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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교평준화 시행계획이 발표된 1973년 3월 1일자 한국일보 신문


 1980년대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나처럼 평준화 지역의 고등학교를 나와 단답식의 학력고사를 치른 후 대학교에 입학하였다. 독재 정권이라는 어두운 환경 때문에 공부에 집중할 수는 없었음에도, 학생들은 자기 돈으로 인문사회학 책들을 사서 읽고, 당시 막 판매되기 시작한 퍼스널 컴퓨터를 익히고 공부하였다. 대학원에 진학하였던 학생들은 생활비를 벌며 자신의 공부를 해야 했었다.


 그렇게 공부했던 평준화 세대들은 한국의 민주화를 이루는데 많은 기여를 하였다. 지금 당연한 것처럼 얘기되는 대통령 직선제, 지방자치제 등과 같은 기초적인 민주주의 제도, 과거사 청산 등은 그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불가능하였다. 그들이 없었더라도 지금 수준의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이 역사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일 것이다.


1998년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 많은 사람들은 한국 경제가 다시 회복하기는 어렵다고 말하였다. 그 때 평준화 세대들은 부패한 정권을 교체하고, 정보통신기술을 도입하여 새로운 산업을 일으켰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산업 구조가 바뀔 수 있었던 것 역시 평준화 세대의 공이었다. 평준화 세대들이 젊은 시절에 가졌던 희망과 그들이 익힌 기술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일이 가능하였다.


 요즈음 교육 제도와 관련하여 여러 가지 논의를 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고교 평준화 정책과 대학 입시에 관한 것이다. 그 어지러운 논의를 보면서 나는 궁금해지곤 한다. 평준화 정책 및 획일적인 대학 입시 제도가 철저하게 관철되던 1980년대, 대학에 입학하였던 평준화 세대들이 그렇게 실패작이었던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한국의 민주화와 경제 발전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이 이룩한 발전 중 상당수는 그들의 몫이다. 요즈음 거론되는 평준화 정책의 단점이 나타난 이유는 그에 대한 애정과 이해가 부족하였던 관료와 학자, 언론의 책임이 크다. 그들은 평준화 정책의 올바른 운용을 고민하지 않았다. 그리고 대학 입시 제도를 수차례 바꾸고 특수목적고의 편법적 운용을 방임함으로써 평준화 정책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어 놓았다. 이렇듯 정책이 제대로 운용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현재의 문제점이 고교 평준화 제도 때문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


 사실, 나는 교육에 관하여 문외한이다. 따라서 내가 교육 제도에 관하여 어떤 생각을 말한다는 것은 적당하지 않다. 다만 요즈음 교육에 관한 논의를 보면서, 자신의 품질(?)과 인재로서의 적격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평준화 세대로서 나름대로의 변명을 하고 싶었을 따름이다.


도재형 위원은 현재 이화여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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