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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호] 거짓말탐지기는 믿을 만한가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31 17:35
조회
449

정원/ 인권연대 운영위원


 당신이 중대한 범죄의 피의자로 지목되고 있다. 결백을 입증할 뚜렷한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수사기관에서는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받아보라고 권유한다. 어차피 죄를 짓지 않았으면 무슨 걱정이냐고 묻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거짓말탐지기 조사가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이러한 거짓말탐지기 조사는 얼마나 신뢰성이 있는 것일까? 대체로 80~90% 정도의 신뢰도가 있다고 한다. 우리 말의 십중팔구라는 말이 있듯이 거짓말탐지기는 매우 신빙성이 높은 조사방식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저 80~90% 라는 숫자가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의문이 든다. 범죄수사와 관련한 위 통계가 의미가 있으려면 다음 전제들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위 통계는 범죄수사와 관련하여 작성된 것이어야 한다. 형사처벌이 전제되지 않은 일반적인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거짓말과 형사절차에서 이루어지는 거짓말은 도저히 동일하게 평가할 수 없다. 부모님께 거짓말하는 것과 수사기관에 거짓말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긴장되겠는가. 둘째, 대상자가 거짓말을 하는지 여부에 관해 객관적인 증거가 존재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거짓말 탐지기 조사가 맞았는지 틀렸는지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거짓말탐지기 조사가 이루어지는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다. 거짓말탐지기 조사는 범죄를 입증할 수 있는 객관적 증거가 없거나 매우 부족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거짓말탐지기가 적어도 범죄 입증과 관련해 매우 신뢰성이 높다는 통계는 상당한 정도 과장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법원이 거짓말탐지기 조사결과의 증거능력을 부정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입장이라고 하겠다.

문제는 이처럼 신뢰도를 의심하기에 충분한 조사가 우리 나라에서는 상당히 신뢰도가 높은 것을 전제로 특별한 문제의식 없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거짓말탐지기 조사는 진술거부권을 사실상 침해하는 등의 문제가 있으므로 가능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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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관이 거짓말탐지기를 이용해 피의자 진술의 진위 여부를 살피고 있는 모습.
사진 출처 - 노컷뉴스


수사기관은 거짓말탐지기 조사시 대상자의 동의를 받기 때문에 진술거부권 침해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의심받는 피의자가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받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작년 한 해 우리 사회를 떠들석하게 했던 BBK 사건의 김경준이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거부했다는 보도를 보고, 내가 처음 했던 생각은 “김경준이 거짓말이 했구나”였다. 의심을 받는 상황에서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거부하는 것은 더 큰 의심을 낳기 때문에 피의자가 이를 거부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거짓말탐지기 조사는 형사절차의 기본적 원리에도 반한다. 수사를 하더라도 범죄를 입증할 만한 증거를 찾지 못한다면 피의자에 대한 수사절차를 종결해야 한다. 그런데 거짓말탐지기라는 과학적(?) 수단을 동원하여 피의자의 내심까지 파고들어가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도 자신의 속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줄 의무가 없다. 속마음이야 말로 양심의 기초이며, 인격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짓말탐지기 조사는 사람의 속마음을 거짓/진실로 임의로 구분하여 버린다. 이러한 점 때문에 거짓말탐지기 조사는 그 신뢰성 여부를 떠나 적어도 형사절차에서는 실시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프리카 일부지역에서는 범죄혐의를 받고 있는 사람들끼리 새알을 주고 받도록 했다고 한다. 진범이 가장 긴장하고 있을 것이므로 새알을 깨뜨리는 사람이 진범이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보면서 그곳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평소 뭐든지 잘 깨뜨리고 부수는 편이기 때문이다. 거짓말탐지기 조사 역시 새알 주고받기의 진화된 버전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한다.

정 원 위원은 변호사로 활동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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