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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평 쪽방에 한 달에 17만원, 동자동 쪽방촌 - 장윤미/ 국민대 학생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1 15:26
조회
540

장윤미/ 국민대 학생



으리으리한 서울역을 등지고 높다란 건물사이의 갈라진 골목길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동자동 쪽방촌이 있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건물들에 시선을 멈추고 살짝만 건물 안을 들여다보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내부가 보인다.

겨울인데도 좀 따뜻하구나 싶었는데 역시나 잔혹하고 차가운 겨울이다. 주머니에서 손을 잠시만 빼도 벌겋게 퉁퉁 붓는 날씨에, 친구와 함께 동자동 쪽방을 찾았다. 취재를 하기 위해 쪽방 건물들 앞을 한참이나 서성거렸다.

일단 쪽방 건물에 있는 낡은 슈퍼로 들어가선 따뜻한 베지밀을 두 개 샀다. 소박하지만 지나치지 않게 우리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그렇게 찾은 동자동 쪽방엔 대부분이 독거노인이 있었다.

첫 번째 만난 할아버지는 독거노인에 기초생활수급자셨다. 방으로 들어서니 1평 쪽방에 두 명이 앉기도 힘든 공간이다. 그 작은 공간에 텔레비전이며 이런저런 음식거리들이 있었다.

겨우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데 한기가 느껴진다 싶어 춥진 않으시냐고 물어보니까 전기로 방 금방 데워진다며 괜찮다고 연신 손사래를 저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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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필자


“방세는 한 달에 17만원. 내가 기초수급권자라서 한 달에 40만원이 나오는데 방세내고, 반찬사고 하면 별로 남는 게 없어요. 또 공공근로 같은 것도 나이 많다고 시켜주지도 않고. 일 하고 싶어도 못하니까.”

평소에 집에 있으면 뭐하시냐고 물어봤다.

“아침 10시쯤 되면 전철타고 나가. 나 같은 노인은 전철비가 공짜라서. 전철타고 강남이나 의정부, 인천 같은 데 내려서 한 5,6층짜리 아파트로 가요. 아파트 가서는 경비아저씨한테 힘들어서 나왔다고 얘기 잘하면 가끔 들여보내주거든요. 그러면 아파트 벨 눌러서 힘들다고 좀 도와달라하면 천원, 이천 원씩 주는 사람도 있고. 그렇게 돌아다니면 하루에 칠, 팔천 원은 벌어요. 그렇게 나가서 한 오후 3시쯤 다시 집에 와요.”

이 얘기를 듣는데 목이 콱 메었다.

할아버지는 어릴 적에 전쟁으로 어머니를 잃고 젊었을 땐 동대문시장에서 짐 날라주는 일을 하셨단다. 그런데 너무 가난해서 내 운명이 왜 이런가 싶어서 인천행 지하철을 타고 끝까지 가서 바다에 빠져 죽으려고도 생각했단다.

"젊을 때는 죽을 생각도 많이 했지. 너무 가난하니까. 내 팔자는 왜 이러나하면서. 인천행 지하철타고 끝으로 가면 강이 나와. 거기서 죽으려고 했었는데, 죽지는 못하겠더라고."

험난한 삶의 굴곡을 가진 할아버지는 지금 그러나 아주 긍정적으로 보이신다. 이제 불만도 없단다. 다 내 탓이지 하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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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필자


두 번째 만난 할아버지도 독거노인이셨다. 이혼을 하시고 아들딸도 있는데 찾으려면 찾을 수 있지만 안 그러시겠단다. 당신이 고생도 많이 시켰고 지금 만나서 마음 불편하게 하긴 싫으시단다.

할아버지는 몸이 아프셔서 언제 죽을지 모른다고 하시는데 방 주위를 둘러보니 약봉지들이 흩어져 있었다.

“이제 일도 제대로 못해. 저기 저 약 없으면 바로 죽는 거야.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고 간에 무리가 가면 바로 쓰러져. 고치려면 간 이식을 해야 하는데 수술이 칠천만원이 든다는데, 뭐.”

왜 자식들을 찾진 않는지 궁금했다. 그래도 남은 노년생활 좀 더 행복하게 보내실 수 없는 걸까.

"애들... 찾으려면 찾을 수야 있지. 그런데, 뭐 이렇게 되서 찾으면 뭐해. 짐만 되지. 그냥 이대로 있다가 혼자 가면 그만인 거야. 내가 국민연금 탈 게 있는데 나라에서 그걸 안줘. 내가 그 돈 지들 주식하라고 준 돈도 아닌데, 왜 내 돈을 안주는 건지 모르겠어. 그냥 내 꿈은 그거 빨리 받아서 쉼터에 가는 거야. 거기서 그냥 편안히 죽고 싶어"

첫 번째 만났던 할아버지가 그러셨다. "아가씨들 나 도와주러 온 거야?" 그 말에, 저흰 복지사가 아니라 직접적으로 도와드릴 순 없고 할아버지들 불편하신거 없나 알아보고 기사 쓰려고 해요. 그러니 "에이,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이제 바라는 것도 없어. 그냥 반찬 넉넉히 사게 돈만 조금 더 나왔으면 하지"

괜한 무력감이 생겼다. 이렇게 취재를 다니는 게 자족감만을 위해서가 아닌 건 분명한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는 것이 내가 하는 일에 대한 회의를 불러 일으켰다.

인터뷰를 끝내고 막 일어서려다가 할아버지가 다 낡은 워크맨을 가지고 계시기에 건전지를 갈고 재생시켜 이어폰을 귀에 꽂아 드렸다. 그러니 할아버지는 미소를 감추지 못하시며 노래를 흥얼거리셨다. 그 장면이 아직도 머리에 맴돈다.

왜 가난한 게 억울해서 자살을 하려 했나. 왜 나이든 할아버지가 그 조그만 방에서 움츠려 자야 하나. 방 한 구석에 있던 찬 밥 한 덩이가 자꾸 내 목을 메이게 했다.

우리나라에 수많은 노인들이 자신이 죽은 지도 모를까 걱정돼 추운 날에도 문을 열어놓고 잠든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건 정말 아니다. 대체 누구의 잘못인건지. 생각을 하면 할수록 끊임없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반성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건 정말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