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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 이은규/ 전 천주교청주교구정의평화위원회 사무국장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1 15:39
조회
413

이은규/ 전 천주교청주교구정의평화위원회 사무국장



이른 아침. 집이 시끄럽다. 어머니의 목소리에 잔뜩 화가 실려 있다. ‘이크 진돌이다.’

진돌이가 어머니의 심사를 매우 불편하게 했던 것이다. 사실 어머니는 처음부터 진돌이를 키우는 것에 대해 반대하셨다. 어머니는 당신의 일거리가 늘어나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강아지 밥은 그렇다 치고 그 수선떠는 것을 누가 다 뒤치다꺼리 할 거냐며 볼멘소리를 내셨었다. 마당이 좁고 그것도 대부분 블록으로 덮여있어 흙이라고는 구석에 작은 화단뿐이라 진도견을 키우기에 적당치 않다는 말씀도 곁들이셨다. 어머니가 한구석에 마련해 놓은 화초밭에는 수선화며 넝쿨장미며 허브 등 풀들이 자리 잡은 터였다. 그럼에도 어머니에게 사정을 말씀드리고 우리가 잘 키워 보겠다고 나름 설득을 해서 강아지를 데리고 왔다. 그랬다 우리가 잘 키워보겠다 약속했었다.

한 달 전에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질주하고 있는 큰아이 민주, 둘째 현하와 함께 여행을 했다. 녀석들의 마음을 봄바람으로 다독이며 전남 고흥에 있는 미술관에 다녀오는 길. 함께 동행 했던 후배가 진돗개 새끼를 분양할 테니 길러보라고 권했다. 내가 미처 생각도 해보기전에 현하는 “아빠 우리가 길러요.” 어머니와 아내의 까칠한 대응이 예견되었으며 나의 천부적 게으름은 강아지를 돌볼 여유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썩 내키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어른들보다 아이들에게 약하다. “음... 그러자 그런데 약속해야 돼. 우리가 할머니, 엄마 손 빌리지 않고 잘 키워보자.” “네 아빠 고마워요.” 하며 볼에다 뽀뽀를 한다. 봄바람에 새하얗게 터진 매화꽃을 닮은 녀석을 보니 걱정은 눈 녹듯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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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진돌이 모습
사진 출처 - 필자


집에 돌아와 어머니와 아내에게 여행후일담을 들려주는 자리. 엄마들은 자식들의 환한 귀향에 기분이 좋아 보였다. “현하가 강아지를 길러보고 싶다 하는데...” 순간 엄마들은 머뭇한다. 함께 봄 마중 했던 방금 전의 분위기는 가라앉고 어머니는 예의 논리정연한 말로 반대를 하셨다. “우리가 엄마 손 안 가게 잘할게요.” 우리들은 설득과 억지를 적절히 버무리며 엄마들을 진정시켰다. 엄마들도 아이들에게 약하다. 강아지는 그렇게 우리 집에 왔다.

당시 생후 4주차에 접어든 녀석은 걷는 것도 불안해 보였다. 뒤뚱 뒤뚱 걷다 제풀에 푹 주저앉곤 했다. 나와 아이들은 이름을 붙이고 밥을 사고 목줄을 사고 라면박스를 보금자리로 마련하고 허둥지둥. 정작 낡은 이불에다 안락한 보금자리를 마련한 것은 아이들의 할머니였다. 잠시 목줄로 매어놓았지만 마음 짠하다며 마당에 풀어놓으라고 했던 것도 어머니였다. 시시때때로 녀석의 뒷바라지를 하는 것도 어머니였다. 물론 아이들, 우리들은 최선을 다했다. 우리들은 강아지가 늘 강아지로 남아있을 줄 알았다. 아이들의 철없음이란...

이제 생후 두 달이 된 녀석은 계단을 자유자재로 오르락내리락 거리며 활개를 치고 있다. 짖지 않아 조용하지만 보이는 데로 물어대고 허물어뜨린다. 대소변을 가리는 것은 용하지만 반드시 화단에다 실례를 한다. 어머니의 봄 화단에 강아지는 무뢰한이었다.

봄비가 내린 후, 마침내 오늘 아침 일이 터졌다. 화단이 어지러이 뭉개져 있었고 곳곳에 녀석의 분비물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어머니의 화는 당연했다.

화단을 정리하시며 “이 좋은 아침에 저 녀석으로 인해 내 마음이 분란하다. 그러니 저 놈을 다른 곳에 데려가든 주든 해라. 더는 못 보겠다.” 봄날 아침 마음에 금이 가셨다. 애처롭게 등이 굽은 수선화가 할 말을 없게 만들고 있다. 기어드는 목소리로 “저 녀석이 사람도 아니고 그럴 수도 있는 거지요 뭐...” 차라리 말이나 하지 말 것을. “애비가 데리고 왔으니 애비가 알아서 해” 순간 강아지 비린내가 진동하는 마당이 조용하다. “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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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화단의 수선화
사진 출처 - 필자


출근하는 아내가 강아지를 흘깃 보며 한마디 거든다. “참 너도 고생이다.”

어떡한다... 어머니를 설득하기엔 눈앞의 현실이 참담하다. 현하의 얼굴이 스쳐지나가는 허둥대는 마음자리. 공연히 강아지 눈을 보고 으르렁 거려보아도 뾰족한 방도가 떠오르지를 않는다. 저 녀석과 대화를 할 수 있다면 좋겠는데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래 단순하게 생각하자.’ 어머니의 화가 잦아들기를 기다리고 저녁에는 다섯 아이들과 머리를 맞대고 이 사태에 대한 회의를 갖자 마음먹는다. 그동안 수선화를 위로하며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해보자. 그래 그러자 어머니와 아이들에게 맡기고 기다려 보자. 결국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바라보기만 하고 있다. ‘에구 이 철없는 인사야...’

강아지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