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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FID, 내 인권을 위협하다 - 전종휘/ 한겨레21 기자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1 16:16
조회
278
전종휘/ 한겨레21 기자
이 아무개 경위는 지난해 2500원을 주고 서울시 교통카드를 샀다. 신용카드와 겸용인 교통카드를 잘 쓰던 경찰관이 굳이 별도의 교통카드를 산 이유는 이렇다. “내 행적이 고스란히 기록된다는 게 께름칙하다”는 것이다. 교통카드는 그 카드의 주인이 몇월 몇일 몇시 몇분 몇초에 어디서 지하철을 타고 어디서 다시 버스로 갈아탄 뒤 몇분 몇초에 어느 정류장에서 내렸는지가 고스란히 기록된다. 그냥 교통카드는 카드의 주인이 누구인지 개인식별이 되지 않지만, 신용카드는 가입자의 신원이 뚜렷하다. 즉, 교통카드가 삽입된 그 신용카드는 하루 중 나의 이동경로를 오랜 시간에 걸쳐 고스란히 기록하고 있는 셈이다. 누군가 나를 음해하기 위해, 혹은 범죄에 엮어 넣기 위해 악용할 수도 있는 내 개인정보가 남아있는 건 불안하지 않느냐는 게 이 경위의 설명이다. 교통카드와 신용카드를 별도로 갖고 다니면 지갑이 조금 더 두터워지지만, 그 정도쯤이야…. 시민의 지갑 속에 한두 개 정도는 들어 있을 교통카드에는 RFID칩이 심어져 있다.

내가 아는 박광철(가명)씨는 한국도로공사 직원이다. 그런데 그는 하이패스를 쓰지 않는다. 톨게이트에서 남들은 길게 줄지어 선 채 티켓을 손에 쥐고 기다리는 동안 하이패스 이용자는 그냥 전용선을 질주해도 된다. 그렇게 편리한 하이패스를 박 씨가 쓰지 않는 이유 또한 단순하다. “께름칙하다”는 것이다. 하이패스도 이용자의 이동경로에 대한 명확한 흔적을 갖고 있다. 도로공사 직원이라서 하이패스를 쓰지 않으면 안에서 눈치가 보일 수도 있겠으나 그래도 그는 하이패스를 쓴다는 게 마뜩치 않다. 톨게이트에서 기다려야 하는 불편함은 감수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이 하이패스에도 RFID칩이 심어져 있다.

RFID(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 이른바 무선인식 기술은 우리 생활의 많은 부분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예전의 마그네틱 선을 이용한 접촉식에 비해 편리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버스 탈 때처럼 가방 안에 넣은 채로 인식기에 갖다 대도 인식하는 투과성이 있고,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달리는 차량 안의 정보를 읽어내는 이동인식 능력 등에서 뛰어나다. 산업계에서 보는 활용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반면, 그것이 실제에 적용되는 과정에서는 많은 개인정보 침해 우려가 제기된다. 새 기술의 편리성이 커지는 만큼 위험성도 그 만큼 커지기 마련이다. 이 경위와 박 씨의 경우도 구체적인 피해를 입은 건 아니지만, 그런 일이 생길 일말의 가능성 자체가 마음의 불안을 키우게 된다. 정보인권의 핵심은 자신과 관련한 정보를 자신이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미국에서는 지난 2003년 패션 브랜드인 베네통이 유통 과정상 편리한 관리를 위해 모든 제품에 이 RFID칩을 심기로 했다가 소비자단체의 거센 저항에 밀려 계획을 취소한 바 있다. 만약 베네통의 계획이 실현이 되고 다른 의류업체 등도 이를 따라했다고 생각해보자. 번화한 거리에 RFID 인식기를 갖다놓고 지나다니는 사람이 입은 팬티와 브래지어, 셔츠, 바지, 점퍼, 신발이 어느 회사 제품이고, 언제 어디서 만들어져 팔렸는지를 알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일이 정말 가능할지에 대한 퍼센티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누군가 그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제로라고 하는 사실을 명확히 증명할 수 있겠는가? 이후로도 미국에서는 이와 비슷한 시도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청바지 업체로 유명한 리바이스가 자사의 시슬리 제품에 RFID칩을 심는 방안을 추진하기도 했고, 다른 업체들도 계속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 8월 뉴욕의 맨하탄에서는 패션업계가 RFID칩을 제품에 심는 문제와 관련한 모임을 열자 이에 항의하는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한국 기업들에서는 아직 이런 목소리가 나오지 않고 있으니, 미국은 한국의 미래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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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정보가 전자칩 형태로 내장되어 있는 전자여권
사진 출처 - 노컷뉴스


RFID칩은 이제 한국의 여권에도 삽입이 된다. 이로 인한 개인정보 노출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정보인권 단체들이 직접 시연회까지 열었으나 외교부는 꿈쩍도 않고 있다. 국가의 최고 정보기관이라는 국가정보원(옛 국가안전기획부)이 휴대전화 감청 장비를 몰래 쓰다가 들통 난 국가가 바로 한국이다. 이제 국가가 공인한 개인 식별장치에도 이 RFID칩을 심으려고 한다. 향후 예상되는 문제점에 대한 우려를 불식할 확실한 대안도 없는 상태에서 말이다.

이미 우리는 건물과 거리에 깔린 수많은 CCTV, 인터넷 접속 로그 기록 그리고 신용카드 결제 등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는 우리의 행적을 남기고 살고 있다. 경찰은 연간 수백만 명에 이르는 피의자, 참고인 등의 정보를 ‘심스’라는 망을 통해 축적하고 있다. 그의 종교와 혈액형, 주소, 주량까지 모두 말이다. 물론 경찰이 그런 행정을 하는 명확한 법적 근거는 없다. 그런 상황에서 검찰은 형사사법망을 통합작업을 통해 경찰이 심스를 통해 갖고 있는 정보는 물론 관련된 이들의 검찰 수사 기록과 사법부의 재판 기록마저 아우르는 거대한 ‘국민 정보 결집체’를 만들려고 한다.

‘빅브라더’ 세상은 다가오고 있지 않다. 이미 우리는 그 세상에 살고 있다. 어느 정도 심화하느냐의 문제만 남아 있을 뿐이다. 내 개인정보를 통제하고 살기엔 이 사회의 기술은 너무 진보했다. 하지만 그 기술의 진보에 걸맞은 윤리와 프라이버시에 대한 고민은 따라가고 있지 못하다. 각 개인이 “내 삶의 세세한 흔적과 관련한 정보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통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기술이 발전하고 그것이 산업에서 경쟁력을 가지면서 기업과 국가가 자본과 재정을 확충해나가는 것도 결국 우리 모두의 이익에 귀결될 수도 있다. 하지만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과, 국가의 목표를 위해 개인을 희생하는 게 당연하다는 가치관을 갖고 있는 국가를 어떻게 믿을 수 있나. 대한민국의 현대 역사는, 그런 측면에서 기업과 국가에 신뢰를 보내기 어렵게끔 한다. 국민이 행복하지 않은 국가란 존재할 필요가 없다.

경찰도 불안해하고, 공사의 직원도 불안해하는 RFID가 이미 우리의 생활을 지배하고 있다. 구체화하고 개별화되지 않은 수많은 권력들이 나를 감시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세상이 무섭다. 이쯤 되면 `반문명 전선'을 형성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