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우리시대

‘우리시대’는 언론계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멘토가 되어, 작성한 칼럼에 대한 글쓰기 지도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유비추리(類比推理) (이희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0-03-04 09:56
조회
1153

이희수/ 회원 칼럼니스트


 지난 1월 30일, 성전환 수술 뒤 법원에서 성별정정 허가를 받은 A씨가 숙명여자대학교 법학부 2020년 신입생으로 합격하였다. 그 후 학내외에서는 지지와 반대 양측의 의견이 들끓었고, 2월 7일, A씨는 “입학 반대 움직임에 무서운 느낌이 들었다”며 입학을 포기하였다.


 이 과정에서 6개 여자대학의 21개에 달하는 소위 페미니스트 단체가 ‘여자들만의 공간과 기회는 여자의 것이어야 한다.’, ’여대는 남성중심사회에서 차별받고 기회를 박탈당하는 여성들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다’라며 A씨의 입학을 반대하였고, 법원의 성별변경신청 기각 및 관련법 제정을 촉구하였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처음 인터넷 기사를 보았을 때, 스크롤을 올려 다시 읽었다. ‘페미니즘 단체’에서 ‘반대’하다니? 혹시 기사가 잘못되었는지 몇 번이나 더 읽고 다른 정보도 찾아보았지만, 잘못 쓴 것도 잘못 읽은 것도 아니었다.


 페미니즘(여성주의)을 정의하는 다양한 말을 찾아보았다. 여기서 그 많은 정의들을 포괄할 수 있는 문장을 만들기는 어렵겠지만, 성별로 인한 차별과 억압을 없애려는 생각과 움직임이라고 하면 넓게 보아 대다수 정의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태까지의 남성 중심 사회에서는 차별과 불평등을 겪는 쪽이 여성인 경우가 대다수였으므로, 페미니즘은 여성의 인권과 이익을 주장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왔다. 그런데 여기서 ‘여성’은 특정 조건에 부합하는 집단을 가리키는 절대적인 말이 아니라, 상대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말처럼, 또 내가 알고 있던 것처럼 페미니즘의 핵심 가치가 비주류의 입장에서 사회를 바꿔나가는 것이라면 말이다. 다만 세상 사람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했을 때 상대적으로 여성이 불리한 입장에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 부당함에 공감했기 때문에, 흔히 성별로 인한 불이익과 억압을 문제 삼는 경우 여성의 권익 보장을 촉구하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성 중에서도 유색 인종 여성, 장애가 있는 여성, 빈민 여성, 여자 어린이 등 보다 열악한 상황에 처해 더 많은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남성’과 비교했을 때는 ‘여성’이 약자이지만, 한국에서 한국인 여성과 비교하면 일부 외국인 여성은 더 많은 차별을 겪는다. 이 관계는 생물학적 성과 자신의 성 정체성이 일치하는 사람들과, 트렌스젠더 혹은 어떤 성별이라고 규정해야 할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조차 없는 사람들과의 관계에도 빗댈 수 있다.


 숙명여자대학교 학생·소수자 인권위원회의 입장문도 이 같은 근거로, “여자대학의 창립 이념은 … 교육의 장에서 철저히 배제되어 왔던 소수자들에게 교육권을 제공하고자 한 것”이라며 A씨의 입학을 지지하였다. ‘여성’의 의미를 위와 같이 상대적인 것으로 본다면,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단체에서 트랜스젠더 여성의 여대 입학을 이토록 격렬하게 반대한다는 사실은 의아하다. 남성 위주의 불평등한 기존 질서와 구조는 그대로 두고, 심지어 현재의 불평등을 잘 알 뿐 아니라 이에 대해 누구보다 강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 성별만을 여성으로 바꾸는 것이 페미니즘이라면, 이것이 이익집단의 운동과 무엇이 다를까.



사진 출처 - 한겨레


 더구나 일각에서는 A씨의 입학을 막기 위한 인터넷 단체 대화방을 만들면서, A씨를 배제하기 위해 목소리, 얼굴 및 손 전체 사진 등으로 여성임을 인정받은 사람만 입장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주로 여성을 억압하는 성별 고정관념을 타파하는 것이 페미니즘의 중요한 이슈라고 알고 있던 나는, 그들이 ‘여성이라면 응당 지녀야 할 외모’에 대한 고정관념을 갖고 있는 것일까 싶어 더욱 혼란스러웠다.


 소수자로서 겪은 부당한 일을 고쳐야겠다는 생각을, 자신이 속한 집단에 적용하는 데만 그치면 악습은 끊어지지 않는다. 물론 익숙한 것을 수용하고 낯선 것은 배척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집단의 동질성을 해치는 사람에게는 일단 날을 세우고, 더 다르고 더 낯설수록 무슨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까하고 먼저 생각하게 되는 건 나 역시 예외가 아니다. 입학을 반대하는 이들이, 성전환 수술 후 다시 성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경우 등의 사례를 언급하며 염려한다는 이야기에는 섣불리 답을 달기 어렵다. 어떤 면에서는 걱정스럽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이 함께 사는 세상에서는 당연히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다수의 안정을 해칠 수 있다는 잠재적인 우려 때문에, 아직 충분히 자신의 목소리조차 내기 어려운 사람들의 권리를 무시해도 되는 것은 아닐 거다.


 함께 지내기 위해, 지금까지의 안정에 위협을 느끼는 사람들과, 새로 합류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배려가 필요한지, 고쳐야 할 제도는 무엇인지 학교와 학생들이 먼저 묻고 시행하면 어떨까. 성적 차별과 불평등의 문제에 가장 민감하고, 이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에 열려 있는 여성들이 더욱 앞장서서 그를 지지하고 있다는 소식도 더 많이 들렸으면 좋겠다.


 A씨는 2020학년도 숙명여자대학교 신입생이 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과정을 지켜보며 아직 성 소수자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권리가 있다는 사실과, 앞으로 이 상황을 어떻게 바꿔가야 할지에 대해 생각하였다. 머지않은 미래에 그가 젠더 디스포리아를 겪는 사람들, 나아가 삶의 여러 영역에서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에게, 어렵지만 마땅한 권리를 찾기 시작한 선례로 남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희수 : 저는 산책과 하얀색과 배우는 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