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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중구청의 남다른 화초사랑 (김지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8 10:34
조회
311

김지영/ 청년 칼럼니스트


최창식 중구청장은 꽃을 참 좋아하나보다. 꽃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각별한지 4월 4일, 덕수궁 대한문 앞 도로 한복판에 경찰 180여 명과 중구청 직원들을 동원하여 화단을 만들었을 정도다. 40톤 흙을 부어 만든 커다란 화단 안에는 나팔꽃, 민들레, 팬지꽃 등 형형색색의 꽃들로 가득하다. 중구청은 이 화단이 도로 위 장애인용 보도블록도 덮어버리고 시민들의 통행도 방해하지만 아무래도 좋은가보다. 중구청이 격하게 아끼는 이 화단 곁에는 언제나 경찰 수십 명이 꽃들의 수문장 역할을 하고 있다. 졸지에 꽃도 심고 화단지킴이 역할도 맡게 된 경찰들의 모습은 어색하기 짝이 없다.

반면 화단 한 켠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한 사람들이 24개의 영정피켓을 화단에 꽂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분들 등에는 '공장으로 돌아가자'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아마도 해고된 노동자들인가 보다. 이들이 한 발짝이라도 화단에 발을 내딛으면 수십 명의 경찰들과 '살고싶은 안전특별구 중구'라는 파란조끼를 입은 중구청 직원들이 달려와 득달같이 끌어낸다. 대학생이나 회사원같은 평범한 시민들이 도울라치면 그들도 같이 밀쳐댄다. 중구청은 소중한 꽃들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이 한 편의 코미디 영화같은 일들은 4월 4일 새벽 6시에 중구청이 대한문 앞 쌍용차 분향소를 기습철거하면서 시작됐다. 경찰과 중구청 직원까지 대략 280여 명이 분향소 철거에 투입됐고, 안에서 잠을 자고 있던 쌍용차 노동자들은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한 채 끌려나왔다. 노동자들은 그렇게 분향소 집기류와 시민과 예술가들이 마음을 모아 만든 집회용품들이 철거되는 것을 바라봐야만 했다. 뒤늦게 노동자들과 시민들은 중구청의 강경진압에 항의하며 화단에 세워진 펜스들를 뜯어내려고 했지만 경찰들은 불법이라고 외치며 노동자뿐만 아니라 시민들까지 40여 명을 연행했다. 분향소를 재설치하기 위해 화단 안에 들어간 대학생들도 전경방패로 마구 밀쳐댔다. 덕분에 나도 전경방패에 맞아 발목을 삐끗하고 멍이 들었다. 수백 명이나 되는 경찰들과 중구청 직원들이 밤을 새워가며 화단을 열심히 지키는 걸 보고 간밤의 중구 치안행정이 걱정될 정도였다.

쌍용차 농성장 기습철거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쌍용차 농성장 철거. 서울 중구청이 지난 4월 4일 새벽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농성 중이던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천막을 기습 철거한 가운데 대한문 앞에 농성장에서 나온 집기류 등이 쌓여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쌍용차 노동자들과 시민들이 항의하는 집회를 열자 남대문 경찰서 최성영 경비과장은 확성기에 대고 계속해서 소리쳤다. 정당한 사유없이 도로 또는 국유재산에 시설물이나 장애물을 설치하는 것은 불법행위라고. 이렇게 모여 집회를 여는 것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하 집시법) 위반으로 법적제재를 가하겠다고. 그렇지만 작년 11월 8일, 서울행정대법원은 ‘쌍용차 분향소’가 직접적 위협이 명백하게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결을 내렸다. 게다가 분향소는 세울만한 합당한 이유가 있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2009년 5월 22일 사측의 일방적인 해고와 공권력의 강경진압을 필두로 많은 고통을 당해왔다. 이러한 부당한 처사에 항거하기 위해 세운 분향소는 헌법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 보장하는 적법한 권리이다.

또한 중구청이 대한문 앞 한복판에 세운 화단은 과연 합법일까? 문화재청에 따르면 중구청이 화단을 조성하기 전에 문화재청의 사전허가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화단이야말로 문화재보호법과 집시법을 위반한 불법 장애물인 것이다. 하지만 화초사랑에 눈이 먼 중구청은 이러한 사실들을 몰랐나 보다.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이런 식의 불법을 저질러가며 화초로 노동자들을 진압하고 몰아냈기 때문이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누가 그랬던 것 같은데… … 중구청장은 청개구리인가 보다.

다행히도 꽃보다 사람이 더 귀한 줄 아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중구청을 향해 항의하고 쌍용차 노동자들을 돕고 있다. 매일 밤 대한문 앞에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진행하는 미사가 열리거나 시민들의 릴레이 1인시위가 이어진다. 골든브릿지 증권 노동자나 진주의료원 폐업으로 인한 피해자분들도 함께 와서 힘을 보태기도 한다. 이 모든 사람들은 ‘쌍용차 분향소’가 단순히 쌍용차 노동자들만의 공간이 아니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분향소는 그동안 해고된 노동자들이나 장애인 같은 사회적 약자들이 계속해서 연대했던 곳이고 평범한 시민들도 헌화하거나 분향하며 같이 마음을 나눈 특별한 장소다. 최창식 중구청장은 부디 이러한 사실들을 깨달았으면 한다. 화단이 정 만들고 싶으면 본인 집 앞에 만들면 된다. 그리고 대신 분향소에 한번이라도 찾아와서 함께 산다는 것이 어떤 건지 배우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으면 한다. 그러면 이 단순한 사실 하나를 깨닫게 될 것이다.

"사람은 꽃보다 아름답다."

김지영씨는 위안부, 쌍용차 노동자 등의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는 청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