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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육을 강화하면 일베충이 사라질까? (최수범)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8 10:30
조회
349

최수범/ 청년 칼럼니스트



제주 4.3 사건을 다룬 영화 <지슬>은 선댄스 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평단의 호평을 받고 흥행을 이어가고 있지만, 네이버 영화 페이지에서는 평점 테러를 당하고 있다. 일간베스트(일베) 이용자들이 <지슬>에 최하점인 평점 1점을 매기고, ‘제주 4.3 사건이 폭동’이라는 댓글을 지속적으로 달고 있다. 일베는 보수성향의 젊은 남성들이 주 이용자인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다. <지슬>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일베충 (일베 이용자를 벌레에 비유하여 욕하는 단어)과 성전을 선포하고, 평점 10점을 주면서 맞서고 있다.

탱크를 조종하며 대결하는 게임, <월드 오브 탱크>에서는 일베 이용자들이 단체로 소동을 일으켰다. ‘전두환만세’ 같은 아이디를 사용하며 5.18민주화 운동이 폭동이라고 채팅창을 도배했다. 필자는 소싯적 프로게이머를 지망하던 실력을 발휘하여, 그들을 게임 속에서 농업화(일베인을 혼내주는 은어)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계속 분란을 일으켰다. 5.18 관련 시민단체는 악성 댓글을 단 일베인들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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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포털사이트 <지슬> 영화 평점란에 쏟아진 1점 폭탄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5.18 민주화 운동과 제주 4.3 사건이 국가폭력으로 생긴 우리의 어두운 역사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일베 이용자들로부터 ‘변땅크’라 불리는 <미디어 워치> 변희재 대표와 조갑제 옹으로 칭송받는 조갑제 전 <월간조선> 편집장도 5.18 민주화 운동은 북한의 공작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여러 번 말했다. 하지만 일베인들은 5.18 민주화 운동이 폭동이라는 ‘팩트’가 있다며, 끊임없이 관련 자료를 퍼다 나른다.

<한국일보>는 지난 1월 15일 ‘철없는 역사 인식’이라는 부제를 달고, 일베인의 역사인식에 관한 기사를 실었다. 일베인의 역사인식은 근ㆍ현대사 교육이 대폭 축소된 부작용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인터넷 기사 아래에는 일베인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반응이 베스트 댓글로 올라와 있다. “<한국일보>야 말로 철없는 역사인식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는 5.18 사태를 재심을 청구해 정의를 되찾아야 한다.”

역사 교육을 강화하면 일베인의 그릇된 역사인식이 사라질까? 이는 교육 만능주의적 사고다. 그런 논리대로라면, 범죄를 줄이기 위해 도덕 교육을 늘려야 한다. 창의적 재량활동 과목 시수를 늘리면, 현 정부에서 중점을 두고 있는 ‘창조인재’가 쏟아져 나올 것이다. 필자의 학창시절 12년 경험으로 비춰보면, 창의적 재량활동시간에 가장 많이 하는 것은 ‘액션영화보기’다. 창의적인 학교폭력이 나올 수는 있겠다.

필자는 얼마 전 보수 성향을 지닌 유명 20대 논객의 블로그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는 “5.18 민주화 운동은 민주화에 이바지했다.” “하지만 유럽의 68혁명은 재평가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데 반해, 5.18은 그렇지 않다. 이는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5.18과 68혁명을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5.18은 시민들이 군부독재와 국가폭력에 저항한 사건이다. 반면 68혁명은 이념과 정치적 지향성을 품은 운동이다. 둘을 동일선상에 놓는 것은 온당치 않다.

하지만 필자는 이 지점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프랑스의 68혁명은 프랑스 사회를 바꿨다. 대학은 평준화 됐고, 혁명 이후 최저임금은 35% 상승했으며, 근로시간이 단축되었다. 68혁명의 최전선에는 대학생이 있었다.

반면 한국의 6월 항쟁은 무엇을 바꾸었는가. 대학은 서열화 되어있고, 최저임금은 5천원이 채 되지 않으며, OECD 국가 중 최장 노동시간을 자랑한다. 6월 항쟁의 최전선에도 대학생이 있었다.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민주당 우상호 의원은 얼마 전 486 모임인 ‘진보행동’의 해체를 선언했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6월 민주화항쟁이 정권교체로 이어진 건 아니었다. ‘대통령 전두환’을 ‘대통령 노태우’로 바꿔 놓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민주화 운동을 하고 30년이 지났지만 세상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자성적 언사다. 그는 이를 반성한다고 말했다.

필자는 민주화 운동을 ‘물신화’하는 행태가 젊은 세대의 반감을 낳았다고 생각한다. 486 세대들은 젊은 세대들에게 “우리 덕분에 너희가 혜택을 보고 산다.”라고 말한다. 민주화 세력은 자신들과 다른 정치적 지형에 선 사람들을 증오의 언어로 조롱하며, 정치적 이익을 챙겼다.

하지만 젊은 세대들은 이에 공감하지 못한다. 대학만 나오면 취업할 수 있었던 486 세대와 달리 비정규직 1000만 시대에 안정적인 일자리는 줄어들었고, 사회 안전망이 부실해 살기는 더 팍팍해졌다. 486 세대는 민주화를 사유화하면서, 자신들과 기성세대를 분리시켰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는 생활에 밀착되지 않았고, 기성세대는 민주화에 의구심을 품는다.

이러한 현실 속에 ‘젊음=진보’의 등식은 깨진다. 몇몇 젊은이들은 바뀔 기미가 없는 사회를 바꾸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스스로 보수주의자가 되는 길을 선택한다. 살아남기 위해서 독기를 내뿜는다. 힘든 현실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사회에 불평하지 않는다. 이렇게 하면 자존감을 지킬 수 있다.

그들 앞에서 사회에 불만을 표시하고, 보수정권에 반대하는 사람은 좌익좀비로 규정된다. 민주화의 찬사는 조롱의 대상이 된다. 일베에서 민주화라는 단어가 반대 혹은 조롱의 의미로 쓰이는 이유다.

일베인이 탈윤리적으로 보수화 되는 것에 대해 성찰 할 필요가 있다. 일베인의 행태는 진보세력이 사회적 부조리를 해결하지 못한 것에 근본적 원인이 있다. ‘일베인’을 ‘일베충’이라 부르며 ‘우리’와 다른 일부 ‘철없는 사람’으로 보는 것은 안일한 생각이다. 쉬운 해석을 거부할 때,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