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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은 취업률 앞에서 멈춘다 (최수범)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8 10:22
조회
300

최수범/ 청년 칼럼니스트



2011년 12월 기아 자동차 광주 공장에서 실습을 하던 김민재 군이 과로로 쓰러졌다. 김 군은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 15~18세의 청소년은 노동시간이 하루 8시간, 주당 46시간을 넘어선 안 된다고 법으로 규정되어 있다. 하지만 김 군은 하루 평균 10시간, 격주로 특근 8시간, 주·야간 2교대제로 일을 해야 했다. 경찰은 이외에도 84건의 관련법 위반 사실을 적발했다.

고교생 현장실습의 인권 문제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추가적인 사고를 막기 위한 대책들이 마련됐다. 고용노동부는 사건 후 기아차 실습생 128명의 근로실태를 점검했다.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법을 위반했다며, 기아차에 과태료 3억 원을 물렸다. 교육과학기술부는 “교육청, 학교와 함께 현장실습을 적극 지도하겠다”고 밝혔다. 그 후로 상황은 나아졌을까.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251개 기업 현장실습생 198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38.3%의 학생이 하루 8시간 이상 초과 실습을 경험했다고 했다. 46.2%의 학생은 1주 40시간 초과실습을 했다고 응답했다. 31.9%의 학생이 야간 실습을, 29.2%의 학생이 휴일 실습을 해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모두 법규 위반이다.

적극 지도하겠다는 정부의 약속과 달리 현장실습 합동 점검은 지난해 11월 단 한 차례에 그쳤다. 전교조 실업위원회가 실습학생 10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45.2%의 학생은 교사가 사업장을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현장실습 업무와 전공이 관련이 없다’고 답한 학생도 38.5%나 됐다.

그 사이 고교생들은 계속 위험한 현장에서 실습을 하다 사고를 당했다. 지난해 6월 김 모 군은 부산항 허치슨 터미널에서 현장실습 도중 검수 일을 하다가 다리가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다. 김 군의 학교 선생님은 "올해는 3학년 재학생의 60%를 취업시키도록 지시를 받았다. 서둘러 취업 현장으로 내보내다 보니 의뢰가 들어온 회사의 근로 조건을 일일이 챙기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학교나 교육청에서는 아직도 관련 규정을 제대로 마련하지 않았다. 사고가 나면 개별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지난해 11월, 경기 군포의 실습생 박 모 군은 금형공장에서 현장실습 도중 기계에 손가락이 뭉개졌다. 30여 바늘이나 꿰매야 하는 대형사고였다. 한 달 뒤인 12월에는 저녁 울산항 북방파제 부근에서 석정36호가 전복되면서 현장 실습 중이었던 특성화고 3학년 홍성대 군이 사망했다. 박 군과 홍 군은 모두 초과·야간노동을 했다. 두 학생이 일한 업체는 모두 산재신청을 기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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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특성화고 현장실습 실태 점검을 위해 서울 구로구 한 사업체를 방문해
현장실습 학생들 및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출처 - 뉴시스


 

현장실습은 취업을 앞둔 특성화 고교 3학년 학생이 산업현장에서 일을 하며 전공공부를 하는 제도다. 학교의 교육기자재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1963년부터 실시되었다. 시작부터 교육적인 고려보다는 예산 부족이 동기가 된 것이다. 지금도 현장실습제도는 기업에 값싼 노동력을 공급하는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

필자가 특성화 고교 3학년 때, 참여정부는 노예노동, 인권유린, 학교교육 파행 등을 이유로 현장실습을 전면 폐지했다. 하지만 몇몇 친구들은 규정을 어기고, 현장실습 자리를 구했다. 현장실습을 하는 친구들은 “일이 너무 힘들어서 정직원이 되더라도 일할 자신이 없다”고 하면서도, 현장실습을 하지 않으면 정규직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실습에 나섰다.

교과부는 2008년 학교장 책임 하에 자율적으로 시기를 정할 수 있도록 현장실습의 새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현재 현장실습은 특성화 고교 취업률 향상 정책과 맞물려 대부분의 학교에서 실시되고 있다. 특성화 고교 선생님들도 현장 실습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학교 지원금과 주요 평가를 취업률이 결정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관리 감독과 정보 없이 학생들을 실습 현장으로 내몰고 있다. 취업률이 학생들의 인권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진보진영도 반성해야 한다. 특성화 고교 무상교육과 마이스터 고교 설립 같은 실질적인 개선 정책은 이명박 정부에서 이뤄졌다. 고졸취업이 화두가 된 것도 최근이다. 김상곤 교육감은 무상급식 예산 편성을 위해, 특성화 고교 실습 기자재 예산을 75% 삭감했다. 인문계 고교생들로 따지면 연필을 꺾어버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경기도 지역 특성화 고교 선생님들은 김상곤 교육감에 대한 반감이 상당하다.

작년에 치러진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보수 진영의 문용린 교육감 후보는 특성화 교육과 신설을 약속했다. 반면, 진보 진영의 이수호 교육감 후보는 ‘취업 질 강화’ 같은 원론적인 안만 내놓았다.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은 특성화 고교 학생들을 위한 방과 후 노동교육을 실시하겠다고 했다가 기업과 보수단체의 반발로 무산됐다.

학생들이 착취당하지 않고, 제대로 된 현장실습이 되려면, 일본처럼 방학기간에만 4주 이내로, 직접 생산라인 투입이 아닌 보조로 현장을 체험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전교조가 제안하는 협회 연계형 현장체험학습 제도도 고려할만하다. 우선 업체들이 만든 협회에서 해당 산업에 필요한 능력을 기르는 교육과정을 개설해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다.

제도 개선을 통해서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 현장실습을 폐지하는 강수도 고려해야 한다. 무엇보다 취업률로 특성화 고교를 평가하는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취업의 질, 실습 만족도, 노동법 준수, 같은 질적 평가 도입이 절실하다.

김민재 군은 아직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병상에 누워있다. 김 군의 꿈은 자동차 디자이너다. 자동차 공장에서 일을 하며 돈을 벌고, 나중에 자동차 디자인 전공으로 대학에 진학할 계획이었다. 고교 시절 내 부전공이 자동차 공학이었다. 김 군이 깨어나면, 같이 자동차 모터쇼를 관람하고 싶다. 그땐 “우리 공고 나온 남자잖아!” 라고 너스레를 떨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그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