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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노력하면 다 될까요? 그렇게 믿고 싶어요! (정지혜)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8 10:20
조회
325

정지혜/ 청년 칼럼니스트



두 가지 이야기로부터 시작할까 한다. 하나는 학교 성적이 떴는데, 정말 기대를 많이 했던 과목에서 예상치도 못한 점수를 받았다. 조별 과제도 열심히 참여하고 수업시간에도 의견을 많이 발표하고 시험도 나쁘게 보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내 착각이었던 모양이다. 납득하지 못한 점수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의 신청과 시험에서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혹은 능력을 쌓지 못한 내 부족함을 탓하는 일이었다.

두 번째 이야기는 그렇게 가슴 아픈 성적표를 받고나서의 일이다. 어느 날 수영장에서 60대로 보이는 한 여성분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수영을 배운지 얼마쯤 되었냐는 그 분의 질문에 나는 이제 겨우 두 달째 되었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 분은 멋쩍게 웃으며 “나는 일 년 째에요. 그런데 수영이 잘 안 늘어요.”라고 말했다.

그 분은 수영 보조판을 겨우 떼고 혼자 힘으로 자유형을 연습하는 단계에 있었다. 두 달 째 배우고 있는 나와 격차가 많이 안 났다. 나이 때문에 느리게 배우는 게 아닐까 하겠지만, 그 분보다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도 나보다 빨리 수영을 배우고 잘하신다. 꾸준히 연습하는데도 수영이 쉽지 않다면서 멋쩍게 웃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목과 어깨가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온몸이 얼음이 될 정도로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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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을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는 수중운동교실
사진 출처 - 뉴스1


 

‘만약 내가 수영 연습을 꾸준히 해도 한 달 동안 제자리 상태라면, 과연 일 년을 버틸 수 있을까? 매 번 수영장 물을 먹으면서 연습할 수 있을까?’ 수영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생각했다. 그 분에게 수영은 취미였지만 만약 수영이 취미가 아니라 자신의 생계를 위해 해야 하는 일이었다면 어땠을까. 둘 중 하나였을 것이다. 수영을 관두고, 한동안 돈 없이 힘든 생활을 감수하고 다른 일을 찾아 헤매든지, 아니면 온 종일 수영만 연습하며 답답함 속에 지치다 결국엔 실적이 없다며 해고를 통보받든지 말이다.

굳이 학교 성적과 수영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노력을 배반하는 일은 종종 일어나곤 한다. 취업, 직장생활, 심지어 살림살이를 꾸려나가는 일조차 ‘노력=결과’로 나타나지 않는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거야, 요령이 없고 노력도 더 안 했기 때문에 그런 거겠지.’ 그 말이 맞는 말일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틀린 말일 수도 있다.

노력이란 단어는 희망고문을 준다. 노력만 하면 무엇이든 다 이룰 수 있을 것처럼 다짐을 하게 만든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노력이 결과로 바로 이어지지 않는 순간이 온다. 과제와 시험공부를 위해서 시간을 쪼개고 자정을 넘겨도 기대를 저버린 성적을 받는 사람이 있고, 수영을 일 년 째 배워도 자유형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고, 자기소개서를 100개쯤 넣어도 합격통보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또한 같은 사무실에서 비슷한 업무를 하는데 비정규직인 사람이 있고 “같이 노력하자!”고 외쳤으나 끝끝내 거리와 철탑까지 내몰린 노동자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노력을 한 만큼 대가는 반드시 돌아온다고 믿고 싶기 때문에 취업준비를 하고 자기계발서를 읽는다. 그러나 현실은 희망고문보다 더 냉혹하고 편파적이다. 개인의 노력은 장려하나 연대의 노력은 꺼린다. 경쟁과 권력에서 밀려나고 소외된 사람들을 보며 ‘그건 온전히 너의 책임이니 노력하여 알아서 일어나’라고 말한다. 그 상황에서 누군가는 노력을 통해 빠져나오겠지만, 누군가는 노력 여부와 상관없이 또다시 제자리에 남겨질 테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나도 될 수 있고 모두가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결과가 성공적인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해야한다. 내가 수영장에서 만난 여성처럼, 누구든 그리 뛰어나지 않지만 자신에게 소중한 무엇에 대해 웃으며 이야기 할 수 있는 사회, 능력과 결과도 중요하지만 사람과의 연대를 위해 더 노력할 수 있는 사회를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