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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노동자입니까? (이현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8 11:17
조회
262

이현정/ 청년 칼럼니스트



<당신은 노동자입니까?>

우리 사회에서 이 질문에 ‘그렇다’고 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아마 많은 사람들이 난색을 표하거나 상당히 불쾌하다고 여길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은 노동자가 건설 노동을 비롯해 여러 가지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勞動은 ‘몸을 움직여 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첫 번째 뜻으로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하여 육체적 노력이나 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가 나온다. 그렇다. 노동에는 정신적 노동도 들어가는 것이다.(주격조사 은과 이의 차이점 구분하시길.)

그럼 노동자라는 낱말에는 어떤 뜻이 들어 있을까? 국어사전의 첫 번째 뜻으로 ‘노동력을 제공하고 얻은 임금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이라고 나온다. 임금을 받고 생활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노동자라고 보아도 될 것 같다. 그렇지만 이른바 ‘월급쟁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이 노동자라는 말을 매우 꺼려하는 것 같다. 오히려 ‘근로자’에 더 익숙한 편이다. 우리 사회는 왜 노동자라는 단어에 이렇게 민감한 것일까?

<노동자는 □다?>

얼마 전 매우 충격적인 기사를 하나 접했다. 평택비정규노동센터에서 중고생 57명을 대상으로 한 노동자는 □다? 라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청소년들의 답변을 보고서는 경악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못 배운 자들, 거지, 중국인, 외국인, 돈 버는 기계, 득이 없다…. 약 90%의 청소년들이 생각하는 노동자는 차별 받는 사회적 약자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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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경향신문



노동자들도 자신을 노동자라고 생각하지 않는 상황에서, 청소년들이 노동의 의미를 올바로 이해하고 있기를 바랐던 것은 너무 큰 기대였을까. 생각해 보면 교과 과정에서 노동을 제대로 배울 기회도 없고, 더더군다나 매일같이 접하는 언론과 여러 매체에서는 노동자들의 부정적인 모습만 담고 있다. 사측의 횡포에 맞서 투쟁하다가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린 노동자들의 모습만 간접적으로 접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언론의 문제만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슬픈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노동자들의 슬픈 현실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1920년대에도 노동 쟁의는 있었고, 광복 후에도, 민주화를 열망하던 시절에도 노동자들은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이어 왔다. 민주화 운동에 힘입어 일어났던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동자들의 처우가 많이 개선되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찾아온 신자유주의는 다시금 노동자들을 옥죄었다. 전체 노동자 중 비정규직이 40%나 차지하는 현실 속에서, 청소년들이 노동자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고도 섬뜩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그들도 노동자다>

전교조가 법외 노조가 되느냐, 마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그리고 그들은 법외 노조가 되는 최악의 상황도 감수하겠다고 한다. 20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상황이다. 표면적으로는 해직 교사의 조합원 자격을 놓고 일어난 일이지만, 속내는 정부가 교사를 노동자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생각에서 벌어진 사건이 아닐까? 여기서 다시 물어본다. 교사는 노동자인가, 아닌가?

교사는 교육자라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특별한 직업으로 여겨진다. 교육하는 행위가 과연 노동일까? 하는 의문을 갖게 하는 것도 바로 이 점 때문일 것이다. 교사는 교육이라는 특수한 행위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임금을 받는다. 처음에 알아보았던 노동자의 뜻과 비교해 보면, 교사는 교육, 수업이라는 노동력을 제공하고, 임금을 받아서 생활하는 사람이다. 다른 비교를 하자면, 교사는 자신의 지식을 전달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고, 학생은 그 서비스를 받는 고객인 것이다. 교사들이 수업을 하는 행위가 노동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기 때문에 임금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만약 교사를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들에게 임금을 주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일까?

미래를 보게 하고, 꿈을 갖게 하는 선생님들의 노동이, 그 노동의 가치가 인정받지 못한다면 교육을 받는 학생들이 미래에 하게 될 노동도,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다시 한 번 이렇게 학생들의 머릿속에 ‘노동자라는 정체성을 내세우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쐐기를 박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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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우리 아버지도, 옆 집 아주머니도, 노동자다>

노동자라는 단어에 민감한 사회. 노동자라는 단어 보다는 근로자라는 단어가 좀 더 적당한 사회. 노동자는 차별 받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회. 청소년들의 꿈이 노동자가 아닌 사회(실제로 그들 대다수의 꿈은 결국 노동자에 속하는 것이 아닐까)…

주변을 둘러보면 노동자는 참 많다. 우리 아버지도 노동자이며, 아르바이트를 하는 내 친구들도, 새벽을 열며 거리를 청소해 주시는 환경미화원 분들도, 회사에 앉아 컴퓨터와 씨름 하고 있는 회사원들도, 추운 날씨에도 밖에서 도로를 보수 중이신 분들도, 모두 노동자다. 자신을 노동자로 생각 않는 것은 소중하고 아름다운 노동의 가치를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사회가 만들어낸 노동자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들이 계속해서 우리를 옭아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노동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은 꽃이다. 우리는 꽃이다. 노동자는 꽃이다.’라고 했던 희망버스가 떠오른다. 그래도 학생들의 대답 중에 노동자는 우리 아빠다, 노동자는 나의 미래라는 것이 있었다. 아직은 노동이라는 꽃의 씨앗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나보다. 노동의 꽃, 노동자를 지켜내는 것은 어떤 적에 맞서기 위함이 아니다. 노동자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는 사회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다시금 묻고 싶다. 자, 당신은 노동자입니까?

이현정씨는 한국 현대사에 관심이 있는 사학과 학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