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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키보드를 잡은 이유는? (한은석)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8 10:57
조회
336

한은석/ 청년 칼럼니스트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 정보기관이 정권을 위해서 정치 현안에 개입했다.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심각한 범죄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그 방법이 겨우 인터넷에서 악플이나 다는 것이었다는 사실은 황당하다 못해 처량하기까지 하다. 그래도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는 꽤 그럴 듯한 일을 하던 곳이 아니었던가? 굵직한 여론조작부터 북한에 돈을 주고 안보위협을 조장한다거나, 주요 인사들을 도청한다든가 말이다. 그런 무시무시한 기관 조직원들이 골방에 틀어박혀 악플이나 달고 있다니, 도대체 왜 이런 찌질한 방법을 선택한 것일까?

사실 댓글을 여론조작의 방법으로 선택한 것은 국정원이 처음은 아니다.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너무나 당연해서 신경 쓰지 않았던 사실은, 새누리당이 한나라당 시절부터 돈을 주고 사람을 고용해서 조직적으로 여론 조성을 위한 댓글 작업을 해왔다는 사실이다.

2003년 당시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는 인터넷 여론전에 활용하기 위해 사이버 전사 천여 명을 양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람들의 반응은 조롱과 냉소였다. 꼰대들이라 인터넷 문화를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노력은 계속되었다. 2007년 대선 때는 주요 인터넷 사이트마다 전담팀을 두어서 여론조성 작업을 했고, 110여 개 팀 명단이 유출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작년 대선에서는 십자군 알바단처럼 아예 댓글 작업을 ‘아웃소싱’했다.

이런 여권의 끈질긴 노력이 정말로 성과를 거두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자극적인 말은 열성 지지자들을 결집시킬지 몰라도, 부동층에겐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국정원 요원들이 다는 악플에 환호하던 사람들은 ‘일베’로 대표되는 극우파들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혐오감만 느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여권은 이런 삽질을 10년 넘게 해오고 있는 걸까? 인터넷에서의 열광적인 지지를 통해서 대통령에 당선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질투와 열등감 때문에? 인터넷 문화에 대해서 거의 이해하지 못하는 중장년층의 한계 때문에?

원인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여권이 지난 10년간의 공작을 통해서 달성하고자 했던 목표는 분명하다. 여권이 큰 대중적 지지를 받고 있다고 믿게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물론 자신들 스스로도 말이다. 자신들이 지지를 받고 있다는 만족감이 필요했기 때문에 더 많은 말이 사람들의 눈에 띄어야 했고, 결국에는 국정원까지 끌어다가 댓글 작업을 벌였다.

프랑스의 정치철학자 에티엔느 발리바르는 고전 철학자 스피노자를 통해, 이런 현상을 대중에 대한 정치인의 공포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대중은 정치인에게 강력한 힘과 정당성을 줄 수 있지만, 반대로 빼앗을 수도 있다. 정치인은 대중을 통해 무엇이든 될 수 있지만, 대중이 일순간 돌아선다면 그 무엇도 될 수 없다.

이런 현상은 신분제 사회에서는 없던 일이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과거에는 신분제 질서와 종교적 절차가 강했고 대중이 아니라 백성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유권을 가진 시민들이 등장한 근대 사회에서는 이런 통제가 약화됐다. 대중이 탄생한 것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대중의 속성 때문에 정치인들은 대중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언제 대중이 돌아설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공포에 휩싸인 정치인들은 지지자를 확보하기 위해서 무리수를 두게 된다. 이런 무리수로 인해서 체제의 안정성이 흔들리거나, 적나라한 폭력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 결과, 공동체는 내적으로 붕괴된다. 스피노자는 신학정치론과 정치학논고에서 공동체들은 대부분 체제 내적인 이유 때문에 붕괴한다고 본다.

이런 해석처럼 현재 한국 사회가 내파될 위험에 처해 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하지만 국정원이 선거에 개입하고, 북방한계선 관련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유출하고, 또 악의적으로 조작한 것이 여권이 가지고 있는 대중들에 대한 공포 때문이라는 것은 알 수 있다. 지지자들을 모으기 위해서, 대중들의 분노를 피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예전부터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계속 그럴 확률이 높다.

진짜 문제는 이들 이슈가 어떤 식으로든 종결된 다음이다. 국정원의 선거 개입에 국민들은 이미 크게 실망했다. 국면 전환을 위한 정상회담 대화록 유출은 무능한 민주당을 상대로는 성공했는지는 모르지만, 국민들을 상대로는 실패했다. 지지자들이 모이기는커녕, 더 많은 대중들이 반대 입장에 들어서고 있다. 분노한 대중들을 상대로 또 어떤 무리수를 둘지 큰 우려가 되는 상황이다.

스피노자는 대중에 대한 공포를 완전히 극복하는 방법은 없다고 말한다. 대중들을 모두 지지자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파시즘과 전체주의 시대조차도 대중의 지지를 완벽하게 끌어내진 못했고, 그나마 대부분 오래 가지 못했다. 더 강한 정치적 도박의 효과는 잠깐뿐이다. 가능한 것은 대중들을 지지자로 완전히 묶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공포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방법 밖에 없다.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 어느 야구감독의 말이다. 정치에서도 모든 것은 결국 원래 자리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그 동안의 댓글 공작에도 불구하고 일베는 여전히 조롱의 대상이며, 촛불은 계속 늘어만 가고 있다. 이제 더 이상 무리수를 두지 말고 키보드 앞에서 내려가야 할 때다. 내려가야만 다시 올라올 수 있다. 국가 전체가 더 내려가지 않게 하려면 말이다.

 

국정원 개혁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국정원 개혁에 관한 토론회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한은석씨는 사회 내 불평등에 관심이 있는 경제학과 학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