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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외국인이니까 (박보경)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8 11:53
조회
505

박보경/ 청년 칼럼니스트



작년 여름, 동남아 배낭여행을 갔다. 혼자, 계획도 없이 떠난 첫 배낭여행. 예상처럼 많이 서툴렀다. 그중 최악의 사건은 베트남으로 넘어가는 국경 통과였다. 시세보다 싼 값에 라오스에서 베트남으로 가는 침대버스를 예약했다. 예약이 마감될 무렵 운 좋게 예약해서 기쁜 마음으로 버스에 올랐는데, 세상에나! 그 큰 버스 안에 외국인이라고는 나 혼자였다. 게다가 늦게 예약하는 바람에 맨 뒷자리를 5명이서 함께 누워가야 했다. 상상해보라. 20대 초반 여자 혼자 낯선 외국인 아저씨들 사이에 끼어 24시간을 누워가는 모습을!

베트남 사람들은 생각보다 거칠었다. 낯선 외국인 여자를 대놓고 쳐다보며 자기들끼리 낄낄거리며 짓궂은 장난을 치고, 버스기사 아저씨의 은근한 성희롱은 나를 더 당황스럽게 했다. 하지만 당황스러운 건 여기서부터가 시작이었다.

첫 번째 사건, 장거리 이동이라 식사를 휴게소에서 해결해야 했다. 버스비에 식비가 포함돼있었기 때문에 다들 맛있게 공짜 점심을 먹는데, 나는 돈을 내라는 것 아닌가! 외국인이니까 그렇단다. 더러워서 굶었다.

두 번째 사건, 라오스 국경을 나가는데 3달러를 달라고 했다. 국경을 나가는데 왜 돈을 내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간 나는 안 내겠다고 버텼다. 국경에서 뒷거래를 주선하는 베트남 아저씨는 나에게 “넌 라오스에서 못 나갈 거야!” 라고 욕을 하며 소리를 뻑뻑 질렀다.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3달러를 냈다.

그리고 세 번째 사건, 라오스 국경을 나와 베트남 국경을 통과하는 길. 또 1달러를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안 주고 버텨봤자 손해라는 걸 한 번 경험한 나는 순순히 1달러를 냈다. 라오스에서 베트남으로 오는 24시간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어이없는 외국인 차별에 지칠 대로 지친 나는 당장 베트남을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베트남 안에서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 천사였다. 국경을 통과하고 더러운 인상으로 앉아있던 나에게 웃으며 다가온 27살 베트남 청년. 그는 2012년 1년 동안 부산에서 일을 하고 왔다. 오랜만에 한국인을 만나 너무 반갑다며 투박한 손으로 내게 음료수를 건넸다. 지금은 한국에서 번 돈으로 가족들과 잘 살고 있다고 했다. 그 후로도 많은 사람을 만났다. 한국 연예인 이름을 줄줄 말하며 나에게 “사랑해요”를 계속 외친 귀여운 고등학생들. 길거리를 방황하며 돌아다니는 나를 위해 관광 가이드를 자처해준 여대생들. 이들의 배려로 베트남에 대한 악감정이 다소 줄어들었다.

그날 저녁, 숙소에 누워 SNS를 구경하던 내게 보이는 한 장의 사진. 김해시에 걸린 플래카드 사진이었다.

‘범죄형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알린다. 법이 솜방망이이라면, 쇠방망이를 직접 보여줄게. 앞으로 너희도 밤길 조심해라. 진심이다. 방글라데시. 문맹률 세계1위 세계최고 빈민국이라서 따로 번역은 안한다. 한글 아는 놈이 읽고 전파해라. 범죄자 외노자들아. 다른 나라 동료까지 떨게 하고 싶지 않으면, 김해시민 건들지 마라. 너희도 이제 표적이다.’

15년 동안 내가 살고 있는 곳, 경남 김해시에 걸린 플래카드다. 김해에 사는 외국인은 2013년 말 기준 1만 9,800여 명. 전국에서 두 번째다. 김해의 번화가로 불렸던 동상동에서 지금은 한국 사람을 만나기가 더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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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차별철폐와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공동행동 회원들이
"이주노동자 퇴직금 출국 후 수령제도 철회!-2014 이주노동자 메이데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출처 - 뉴스1



멋모르던 어릴 적, 아직 외국인 노동자가 지금만큼 많지는 않던 시절, 친구들과 함께 그들을 ‘알라깔라’라고 부르며 시시덕거리면서도, 행여 눈이라도 마주칠 적에는 놀라서 도망가기도 했다. 같이 버스라도 타는 날엔 낯선 이국의 냄새 때문에 대놓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가 외국인을 대하는 모습은 15년 전 초등학생이던 나와 다를 게 없다. 시간이 흘러도 개선되지 않는 의식은 물론이거니와 외국인 노동자의 근로문제, 주거문제, 그리고 최근엔 이주노동자들의 퇴직금 문제로 시끄러웠다. 한국에서도 제때 받지 못하는 퇴직금을 본국으로 돌아간 뒤에야 받을 수 있게 법이 바뀌었다고 한다. 이런 사건들을 접할 때면 우리보다 가난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다른 계급으로 취급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여행 도중 만났던 베트남 사람들이 주르륵 스쳐 지나간다. 나를 화나게 한 사람들, 또 나를 행복하게 해준 사람들. 내가 외국인이니까 당해야 했던 일들, 또 외국인이라서 받았던 배려들. 그렇게 억울했던 횡포는 어릴 적 외국인 노동자를 가난한 나라의 국민이라고 놀리고 차별했던 벌을 이제 와서 받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나에게 음료수를 건네준 그 청년은 한국인에게서 받은 따뜻한 배려가 있었을까? 한국이 좋다 말했던 풋풋한 학생들이 훗날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온다면 행복을 느끼고 돌아갈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없다.

박보경씨는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들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는 청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