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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라기’는 불순하다(오항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0-12-16 10:31
조회
576

오항녕/ 인권연대 운영위원


 ‘며느라기’. 웹툰으로 주목을 받았고, 이어 드라마로 방영 중이란다. 드라마는 즐기지 않고 웹툰보다 만화책이 친한 올드보이인 나는 며칠 전에야 이 드라마를 접했다. 이 드라마, 아주 불순하다. 그런 장면이 한두 군데가 아니지만 두 장면에 집중해보자.


장면① 제사를 앞두고 벌이는 신혼부부의 티키타카


남편 : “조금 일찍 가서 어머니 음식 하는 거 도와드려야하지 않을까?”
아내 : “그래, 한번 해보지 뭐!”
남편 : “아참 ○○이네 돌잔치 있었지! 먼저 가 있어. 내가 돌잔치 들렀다 가서 도와줄게.”
아내 : “…… 돕는다구? 나를?”
남편 : “웅. 왜?”
아내 : “나는 느네 할아버지 얼굴도 본 적 없거든. 내가 너를 돕는 거라고 생각되지 않니?”
남편 : “어, 음, 그런가……”


 ‘도와줄게’. 나도 아내에게 했던 말이다. 내가 장손이라 제사가 많은 우리집에서 아내는 직장을 다니면서 얼굴도 보지 못한 조부, 조모, 증조부, 증조모의 제사를 준비했다. 그리고 나는 ‘도왔다.’ 박하선 씨가 배역을 맡고 있는 민사선의 말은 지당해서 사실 토를 달 말이 없다. 할 말이 없을 때 말을 하지 않는 남편 구영이의 태도가 좋아 보였다. 희망이 있다. 이 친구, 살아남아 사랑받을 거 같다.


장면② 추석 전날 큰아들 내외가 왔다. 마루에는 시아버지와 시작은아버지, 두 아버님을 위한 술상이 놓여 있고.


시어머니 : “오느라 수고했다. 구일이는 이거 마시고 좀 들어가서 쉬어라.”
남편 : “괜찮아요. 번갈아 운전해서.”
( A ) : “편한 옷 가져왔니? 갈아입고 일 시작하자. 준비는 다 해놨어.”
( B ) : “네?”
시누이 : “다녀오겠습니다.”
시아버지 : “너는 오늘 같은 날 엄마나 새언니 도와주지 않고 어딜 그렇게 나가!”
시어머니 : “시집가면 질리게 할 텐데 그냥 둬요!”
( C ) : “작은오빠도 나가는데 나만 갖고 그래.”시어머니 : “너무 늦지 마라.”
시동생과 시누이 : “다녀오겠습니다.”
며느리 : “잠깐만요! 그러니까 정리해보면, 구일 씨는 피곤하니까 들어가서 자고, 아버님이랑 작은아버님은 술 드시구, 구영 씨랑 미영 씨는 데이트하러 나가구, 차례 음식은 어머니 혼자 준비하시고. 다들 너무했다!”
시어머니 : “난 괜찮다!”
며느리 : “저는 며느리니까 당연히 어머니랑 음식을 만들 거라고 생각하시는 거, 맞죠?”
며느리 : (남편 구일이를 보면서) “어때? 내 예상이 맞았지?”
며느리 : “어머니,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고생하세요.”


 장면②에는 퀴즈가 있다. 어렵지도 않다. 괄호에 들어갈 화자(話者)는 누구인가? 정답은 이 글 끝에 있다.
 이 장면 역시 데자뷰가 없을 수 없다. 우리집의 추석 준비 세팅은 저 정도는 아니었다. 아내도 남편을 비교적 잘 간택했고, 아이들도 나를 닮지 않아서 배려심이 있는 편이라 협력도가 높았다. 나는 술상을 차려놓더라도 전은 부치면서 한 잔하는 쪽이었다. 사람이 최소한의 눈치는 있어야 한다.


 드라마의 설정을 감안하더라도 저렇게 기개 있는 며느리는 리얼리티가 좀 떨어진다. 근데 이 부부도 미리 이 주제에 대해 대화를 나눈 걸 보면 희망이 있다. 이 남편 역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사진 출처 - 카카오tv


 세상은 변한다. 변하기 때문에 차이가 생긴다. 거기서 생기는 갈등은 그래서 자연스러운 것이다. 역사학도의 관점에서 제사, 추석이나 설날의 차례, 시가와 본가(친정)을 놓고 벌어지는 갈등을 이해하는 몇 가지 가설과 그에 따른 실천이 있다.


 먼저 제사. 예전에 친척들은 모두 동네 근처에 살고 내일 아침에 출근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자시(子時 밤12시)에 지냈고, 옆집 상철이 엄마, 완구 엄마가 도와주니까 제사상도 수월하게 차릴 수 있었다.


 2020년을 사는 나는 인천이 집이고 직장이 전주이며 선산은 충남 성환에 있다. 날짜가 맞지 않으면 제수를 준비하는 아내를 ‘도와줄’ 수도 없다. 그래서 성묘와 집제사를 형편에 맞게 운용한다. 술은 화이트 와인이나 사께 등 맛있는 술을 쓴다. 내가 좋아하는 술이다. 조상님도 좋아하실 거라 믿는다. 음식은 제철 과일을 중심으로 차린다. 동태전과 호박전 그리고 삼색나물(시금치, 숙주나물, 고사리)은 아내가 힘들지 않다며 계속 유지하는데, 큰아이가 그걸로 비빔밥 만들어먹기를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는 아예 작은아버지, 고모들과 교통 편한 음식점에서 기일이 들어 있는 주말에 점심을 같이 하며 추모 예배를 보는 방법을 택하였다. 다들 좋아하신다. 맛있는 것도 먹고 얼굴도 보니까. 아이들에게도 내가 죽은 뒤 제사 지내지 말고 너희들끼리 밥을 먹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라고 했다. 후손들 힘들게 하는 건 조상님 귀신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또한 제사라고 부르든, 예배라고 부르든, 예불이라고 부르든 그 뜻은 하나이다.


 음식 준비 같은 집안일에 대한 전래 방식의 분업은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다. 오랫동안 전쟁과 농사에 근력이 필요해서 집안 안팎의 노동으로 분업이 이루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전쟁이나 직업이나 근력 위주로 작동하지 않는다. 그래서 군대든 일반 회사든 여성이 얼마든지 남성에 뒤지지 않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사회 전반이 그럴진대 집안일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이건 교양이나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경제 변화의 결과이다. 이제 집안 안팎에서 노동을 분담하지 않으면 남편으로 간택되기 힘든 세상이 된 것이다. 착각하면 안 된다. 자연선택이 저 푸른 자연에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순정품은 자동차 부품 광고에나 있는 것이지 인간 세상에 순정품은 없다. 서로 다른 삶의 양식과 관점이 섞여서 굴러가는 게 인간 세상이다. 불순한 게 정상이다. 아니 불순하게 보이면 정상이다. 앞서 소개한 ‘며느라기’ 장면②는 시가-체제를 거부하는 불순한 며느라기의 행동을 중심으로 포착했지만, 기실 이미 모두 불편함을 느끼고 있던 체제였다. 하여 그 불순함은 불편함을 넘어설 계기를 담고 있다. 이런 불순함은 받아들이는 게 몸에 좋다.


 정답 : A-시어머니, B-며느리, C-시누이


오항녕 위원은 현재 전주대에 재직 중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