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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적 사실’은 거짓이다(오인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0-08-26 16:45
조회
224

오인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미국역사학회 회장을 역임한 린 헌트(Lynn Huntrer) UCLA 교수는 역사에 대해 거짓말을 늘어놓은 자들의 대표적 사례로서 홀로코스트 부정(否定)을 예시한다. 그녀의 주장에 의하면, 유럽의 극우 성향의 정치인들과 일부 문인들은 찰나의 유명세를 얻기 위해 나치 독일이 1933년에서 1945년 사이에 약 600만 명의 유대인을 계획적으로 학살한 역사적 사실을 부정한다. 부정의 양태도 다양하다. 희생자의 수가 600만에 훨씬 못 미친다거나 히틀러와 나치가 대량학살에 대한 공식적인 계획을 세운 적이 없다는 주장에서부터 가스실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주장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형태의 부정이 제기되었다.


 거짓을 주장하는 자들은 살상에 가담한 사람들의 신상과 규모, 가해자들이 동원했던 수단과 방법을 참혹할 정도로 자세히 밝혀낸 역사적 사실을 부인한다. 희생자에 대한 목격자의 진술, 강제수용소를 탈출한 사람들의 증언도 타당하지 않다고 잡아뗀다. 홀로코스트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를 놓고 역사학자들이 이견을 보일 수도 있고, 실제로 이견이 존재하기도 한다. 그러나 진지한 역사학자나 독자라면 살상이 계획적이고 대규모로 자행되었다는 ‘사실’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지는 않는다.


 거짓 주장이 제기될 때마다 수많은 기록에 근거한 반박이 제기되고 독일 정부와 민간에서도 과거의 악행을 인정하는 모범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홀로코스트 부정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유럽 전역과 세계 다른 지역까지 퍼져 나가고 있다. 린 헌트의 주장에 의하면, 홀로코스트를 얼마나 엉터리로 부인하든, 근거가 부실하든 상관없이, 거짓주장의 효과는 분명하게 발생한다. 2013년 말부터 2014년 초에 국제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중동과 북아프리카에 거주하는 응답자 가운데 홀로코스트 관련 역사 서술이 정확하다고 생각한다는 비율은 5분의 1에 불과했다.

 거짓말로 세계의 주목을 받은 유명한 사례를 말하면서 이 분의 일화를 빼놓기는 어렵다. 2012년 시점에서 부동산 개발업자였던 도널드 트럼프는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트럼프는 오바마가 미국에서 출생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불법적으로 대통령에 선출되었다고 넌지시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하와이 출생 사실을 입증하는 출생증명서를 제시하자 이번에는 증명서가 위조됐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놀랍게도(!) 출생증명서를 위조문서라고 간주할 만한 증거가 전혀 없었는데도 위조 운운했다. 그랬던 트럼프가 2016년 대선 기간 중에는 자신의 입장을 철회하고 오바마의 미국 출생 사실을 인정했다. 그는 자신이 허위주장을 조장했음을 시인하면서 역시 놀랍게도 자신이 분란을 매듭짓는 공을 세웠다고 떠벌렸다. (이상의 내용은 린 헌트, <무엇이 역사인가>(박홍경 옮김, 프롬북스)의 1부에서 따온 것임을 밝힙니다.)

 거짓말과 관련된 트럼프 대통령의 일화는 이뿐만이 아니다. 트럼프 정부는 ‘대안적 사실’이라는 말까지 만들어내서 억지 주장을 가리려고 했다. 2017년, 온라인상에서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온 사람들의 수가 전임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 때 참가한 사람들의 수보다 적었다며 ‘인기 없는 대통령’이라는 비아냥이 퍼져나갔다. 그러자 백악관 대변인은 “우리 데이터로 따져 봤을 때” 단지 오바마 취임식 당시보다 더 많은 사람이 온 것이 아니라 사상 최대의 인파가 운집했다는 브리핑을 했다. 하지만 이런 뻔뻔한 허세는 두 취임식을 찍은 항공사진 비교나 지하철 이용객 비교와 같은 객관적이고 명확한 증거를 통해 반박되면서 트럼프 정부에 대한 비판은 더 거세졌다. ‘대안적 사실’이라는 신조어는 이런 와중에 나왔다. 백악관 선임고문이었던 캘리언 콘웨이는 NBC의 <밋 더 프레스>와의 인터뷰에서 백악관 대변인 발언을 옹호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s)을 제시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니까, ‘대안적 사실’은 객관적이고 명백한 사실을 눙치고 자신들의 편향적 생각을 사실이라고 강변하는 억지 주장, 즉 거짓말인 셈이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러시아의 푸틴 정부도 트럼프 정부 못지않게 자기들이 믿고 싶은 ‘대안적 사실’을 강변하는 데 능숙하다. 일례로 2014년 2월 말, 군 계급장을 달지 않은 러시아 특수부대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크림반도의 핵심 시설을 점령했다. 하지만 러시아 정부는 물론이고 푸틴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서 그들이 러시아군이라는 사실을 반복해서 부인했다. 그들은 자발적인 ‘자위 집단’이며 심지어 현지 상점에서 러시아제로 보이는 군사 장비를 구입했을 거라고 주장했다. 푸틴과 그의 측근들조차 자신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음에도, 러시아 민족주의자들은 신성한 러시아 민족의 보존이라는 정당한 대의를 위한 살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까지 주장했다. 그들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별개의 민족이라는 주장이야말로 푸틴이 러시아 민족의 재통합이라는 신성한 사명을 수행한다면서 했던 그 어떤 발언보다도 훨씬 악질적인 거짓말이라고 비난했다.


 명백한 사실을 모호하게 만들고, 자신들의 편향된 생각을 사실인 양 꾸며서 여론을 호도하려는 ‘대안적 사실’이 천지 사방에 넘쳐난다. ‘지금 여기’에도 그렇다. 목사라는 전광훈씨는 집회에 나오면 걸린 병도 낫는다고 혹세무민하면서 사랑제일교회와 광화문 집회를 통해 결과적으로 온 국민에게 바이러스 테러를 가했다. 국민의 생명과 생계에 심각한 위협을 안겨주고도 자기 교회가 바이러스를 퍼붓는 테러를 당했다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코로나는 신앙의 문제도 아니고, 좌우 이념 문제도 아니다. 그것은 방역=과학의 문제이며 절대 가치인 생명과 직결된 문제다. 그럼에도 정쟁의 대상으로 악용하려는 일부 간악한 무리가 ‘코로나 정치’라는 대안적 사실을 퍼뜨리고 있다. 그런 대안적 사실은 없다. 거짓에도 힘이 있다는 사실을 무시할 순 없지만, 실재하지도 않는 대안적 사실은 사악한 거짓일 뿐이다. 이건 사실이다.


오인영 위원은 현재 고려대 역사연구소에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