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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가 신이 났다(이지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0-03-11 18:06
조회
503

이지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보슬레~이인 노노사운드 이별 새드 부산 스테~셔어언 너도 굿바이 나도 굿바이 티어스 기적이 빵빵” 이별의 부산 정거장이 국-콩(글리쉬)혼합 버전으로 신나게 울려 퍼진다. 선술집이 즐비한 어느 골목쯤 되겠다. 젓가락 장단이 경쾌허니 아싸아싸 추임새가 절로 나온다. 한바탕 왁자지껄한 박수소리가 들리고 이내 잠잠하다. “아줌마 요기 고갈비 하나 더”를 외치는걸 보면 막걸리가 더 고픈 시간인 모양이다. 꽤나 거나한 목소리가 또 울린다 “연분홍 치이마아가 봄 빠람에에~ 휘나알 리드으~라 꽃이 피며언 같이 웃고 꽃이 지면 따라 울던~” 이번엔 아예 합창이다. 노래가 끝나면 으레껏 누군가 술잔을 탁자에 “탁”하고 내려놓는 이가 있다 “아~ 씨* 이렇게 또 봄날이 가는 거여” 취한 탄식을 내뱉으면 또 누군가는 “억” 하고 받아 친다. “그렇다 아이가. 뭔 노래를 이따위로 만들어가 사람 속을 이래 뒤집노 말이다”. 음주 가무야 말로 인생 유랑자의 최고 덕목이라고 우겨대는 시 좀 쓰는 이의 넋두리가 뒤따른다. 노래 <봄날은 간다>는 우리나라 시인들이 사랑하는 노래 1위라는 설문조사 소식을 흘려들은 적은 있다. 그 따위 시인들이라니. 배알도 없는 것들.


 트로트의 원조는 엔까다. 演歌의 일본 말이다. 서양의 폭스트로트(fox trot)리듬을 개화기 일본에서 사랑노래로 변화시켰고 일제 강점기 반도에 들여왔다. 1920년대 이후 소위 대중가요라 할 만한 것들은 죄다 엔까였다. 사람들은 그 리듬을 일본식 발음으로는 도롯도. 조선말 식으로는 뽕짝이라 불렀다. 뽕짝은 “황성옛터를” 휘돌며 그리운 고향을 읊기도 하고 “눈물 젖은 두만강”을 건너며 인생의 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해방이후 적어도 60년대까지 뽕짝의 전성시대는 유효하다.


 서민들의 애환과 설움을 가장 근접거리에서 표현한 장르라는 평을 하지만 서민들의 눈물이 울분이 되고 분노가 되어 이 구질구질한 세상 한번 바꿔보자는 식의 노래는 한곡도 없었다. 그런 선동 가요는 오히려 일제시대의 군국 가요로 한국전쟁 이후에는 반공 가요, 군가로 더 많이 제작 되었다. 잠깐만 생각해 봐도 <혈서지원>, <결사대의 안해>. <목단강 편지> 따위의 일제 찬양 가요나 <전선야곡>, <전우야 잘자라>, <가거라 삼팔선> 같은 노래들이다. 근대 대중 예술의 초석이자 근간으로, 대한민국 대중 음악사의 뿌리로 칭송 받는 박시춘의 작품이다. 1급 친일 인사인 그는 다시 1급 반공인사가 되어 최고의 대접을 받았다 1982년엔 대중음악인 최초로 금관 문화훈장도 받았다. 시인들이 너도 나도 주정거리 삼아 읊어댄다는 <봄날은 간다>도 박시춘 작곡이다.


 미야코부시는 일본 엔까의 장음계이다. 도, 레, 미, 솔, 라로 구성된다. 잘 모르시겠걸랑 당신이 아시는 뽕짝 중에서 살랑살랑 가볍고 신나는 노래를 생각하면 된다. 그게 미야코부시다.


 요나누키는 일본 엔까의 단음계이다. 라, 시, 도, 미, 파로 구성된다. 역시 잘 모르시겠걸랑 뽕짝 중에 가슴을 후벼 파는 애절함이 있는 노래 생각하면 된다. 그게 요나누키다. 그래도 잘 모르시겠걸랑 아직도 추앙받는 대통령 박정희 작사, 작곡의 노래를 생각하면 확실하다. 새벽종을 울렸다고 매일같이 틀어댔던 새마을 노래는 전형적인 미야코부시 음계이다. “백두산의 푸른 정기 이 땅을 수호하고 한라산의 높은 기상 이 땅을 지켜왔네”로 시작하는 <나의 조국>은 전형적인 요나누키 음계이다.


 이미자, 하춘화 선생, 남진, 나훈아 선생 이후 전두환 시절 쇼 2000 같은 프로그램의 퇴폐적인 춤사위와 영11같은 젊은이들의 허슬. 대학가요제 등에 밀린 트로트는 대부분 tv를 떠나 밤무대로 자리를 옮겼었다. 가요무대를 비롯해 그나마 몇 개 없었던 트로트 방송은 몇몇의 트로트 스타들이 명맥을 유지하는 수준이었다. 그런 위상이 안타까웠는지는 모르지만 방송은 트로트장르를 “전통가요”라는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1980년대 말의 이야기다.



사진 출처 - YTN


트로트가 신이 났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 그리 울었던가 싶게 요즘은 그야말로 트로트 대세다. 하루 종일 트로트만 틀어대는 케이블채널이 몇 개며 공중파나 종편 모두 트로트 아니면 노래가 없다는 듯 비스무레한 프로그램들로 도배를 하니 그게 몇 개나 되는지 헤아리기도 힘들다. 눈만 뜨면 트로트고 귀만 열면 트로트다. 가히 트로트 열풍이라 할만하다. 최애하는 개그맨 유재석씨도 류산슬이 되어 트로트 열풍에 직접 칼을 뽑고 나서는 장수가 되어있을 정도다. 그런 류의 프로그램에서 그 옛날 뽕짝의 전사들은 “전통가요”의 수호자가 되었다. 서민들의 설운 삶을 대변하는 존재가 되어 전설, 레전드라 불리우기도하고 국민 음악가가 되기도 한다. 이 열풍을 주도한 곳은 친일과 반공의 최대 수혜자인 조선일보다.


 tv조선 “뽕 따러 가세”의 진행자 송가인 씨는 최초의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 “미스 트롯”의 우승자다. 어머니는 씻김굿의 전수자시고 본인 또한 대학에서 판소리를 전공했다. 그가 지켜냈던 판소리는 조선 후기 신재효라는 걸출한 소리꾼에 의해 꽃을 피웠다가 일제의 민족 문화 말살 정책에 의해 숨죽였다. 그러나 박정희 시대의 인간문화재라는 박제화된 시스템 속에서도 꿈틀거림을 잃지 않았던 민중 문화의 보고(寶庫)다. 한국음악(흔히 국악이라 부르는)을 가장 쇠퇴시켰던 일제 강점기 내선일체(内鮮一体)의 시기에 주된 문화적인 무기가 엔까였다. 그 시대 엔까(演歌)라는 칼에 맞아 치명상을 입은 한국음악(국악)은 지금도 병중이다. 엔까가 트로트의 근간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없지만 그 칼은 명기(名器)가 되어 지금도 우리들 가슴을 헤집어 놓고 있다.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벛꽃 잎이”를 흥얼거리면서 환장할 만큼 아름다운 꽃길을 걷다가도 왜 하필 사꾸라 인가를 물어보는 게 나의 버릇이다. 하고 많은 작자들 중에 왜 하필 친일파의 선두주자가 만든 노래를 “애국가”라는 이름으로 불러야 하는가를 묻는 게 나의 상식이다. 그러나 신나는 트로트를 아무데서나 틀어놓는 노인에게 “왜 하필 트로트입니까”를 묻는다면 돌아올 대답은 뻔하다 “내가 좋다는데 당신이 무슨 상관이오?”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만 찾아서 들으며 눈물 흘쩍거리는 이에게 “왜 하필 트로트 입니까”를 묻는다면 다시 돌아올 대답은 뻔하다 “애절하잖아요. 대중의 정서를 이렇게 잘 파고드는 노래가 또 있을까요? 당신도 트로트에 도전해 보세요. 요즘 대세잖아요. 혹시 아나요, 노래 하나 뜰지?”.


 내가 뽕짝은 어렸을 때부터 곧잘 했다는 얘기는 하지 않기로 한다.
 그런 반응을 보이는 이들에게 나의 의견을 내 보이는 것은 부질없는 일일 터이다. 역시 돌아오는 대답은 뻔 할 것이기에.
 “요즘 세상에 그런 얘기하면 욕먹어요. 무슨 고래적 스토리를 지금에 와서 쯧쯧. 그리고 당신은 좀 과격한 경향이 있어.”


이지상 위원은 현재 가수겸 작곡가로 활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