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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다시 돌아온다. 곧(이지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9-12-04 13:37
조회
1295

이지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벚꽃이 필 것이다. 물론 지금 당장은 아니다. 방송은 물론 모든 언론은 벚꽃의 개화일지를 상세히 보도할 것이고 그 친절한 안내에 따라 전국의 도로란 도로, 산이란 산은 벚꽃 천지가 될 것이다. 진해군항제에 쌍계사 벚꽃 길은 인산인해의 시작에 불과할 것이며 조선신궁이 있던 남산이나 심지어 대한민국 정치 1번지라는 윤중로도 벚꽃 터널의 황홀함에 비틀거리는 인파로 가득할 것이다. 라디오나 tv는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둘이 걸으라”고 분초를 다투어 읊어댈 것이고 몇몇은 일본의 아베가 그랬던 것처럼 어떻게든 축제를 만들어 사람들의 넋을 홀릴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만든 벚꽃축제가 200개가 넘어(행정구역상 시, 군의 개수가 161개이니 각 지자체당 1개 이상) 차고 넘치지만 또 만들 것이다. “사쿠라”가 도대체 뭐가 좋다고 저 난리들인가 투덜거리는 사람들이 간혹 있을지도 모르나 이 여린 빛깔의 향연을 즐기지 못하는 것이 더 큰 죄라는 연인들의 깔깔거림 속에 묻힐 것이다. 조선의 꽃이나 일본의 꽃이나 다 같으니 꽃에게 무슨 이념이 있겠는가를 따지는 이도 있겠고 심지어는 벚꽃은 이 땅에서 난 토종인데 무슨 무식한 소리냐며 핏대를 올리는 이도 있을 것이다. 박중양이나 윤치호 일가가 한반도 근대화에 앞장선 개화파라고 치켜세우는 사람도 봤고 심지어 박정희가 독립운동도 했다더라고 우기는 사람도 봤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과도 한 사회를 살아간다. 그러니 벚꽃에 관한 해석은 서로 상반되는 이해관계의 몫으로 묻어두고 벚꽃 축제는 영원하다.



 일본 메이지 유신 시절에 만든 교육칙어(教育勅語 교이쿠초쿠고)를 그대로 본뜬 국민교육 헌장을 달달 외웠다거나 친일파 박정희가 2차 대전 A급 전범 기시 노부스케에게 대한민국 1급 훈장(수교훈장 광화대장)을 수여했다거나 1980년대 이전 육군 참모총장 대부분이 일본군 출신이었다거나 하는 철지난 친일청산 미흡론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고백컨대 일본 자위대가 서울의 한복판에서 창설 50주년 기념행사를 열었을 때(2004.6.18. 신라호텔) 축하하러 간 한국의 국회의원이 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그 중에 재선에 재선을 거쳐 중진 정치인이 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허탈하다. 친일 인맥도가 돌아다니고 누구누구는 친일 거두의 일가라는 말이 낭설이 아님에도 끝끝내 선거에서 살아나 사선, 오선을 하고 수구야당의 깃발을 드는 모습에선 아예 귀를 닫고 만다. 그들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일가의 반민족적 과오를 시대를 앞서간 탁견으로 받아들이는 백성들이 그들의 지역구에선 절반이 넘는다는 이야기 아닌가 말이다. 그러니 더 이상 “겐세이” 놓지 말라고 “야지”를 퍼붓는 국회의 모습은 낯설지도 않다.


 844,729:7,031 전체 보훈대상자 대비 독립 유공자의 숫자(국가보훈처 2018년 통계) 를 보면 더욱 참담하다. 유관순 선생이나 김구 선생 같은 분들이 일제와 싸워 세운 나라라는 국가 정체성이 고작 0.8%만 인정을 받는 국가기관의 통계 속에서 반공의 깃발은 더욱 드세 지고 그들의 근간이 친일이라는 공식은 더욱 선명해진다. 우리는 이미 황국신민(國民)이란 말을 대치불가의 용어로 사용하고 있고 친일파 윤치호의 작품이라는 의심을 받는 작사와 일제 만주국을 찬양한 작곡가의 음악을 애국가로 부르고 있다. 그리고 바꿀 생각은 전혀 없다. 욱일기의 모태가 된 일본인들이 사랑하는 꽃(경희대 강효백 교수의 주장)이라는 무궁화를 국화로 추앙하는 것은 물론, 어떤 의미인 줄도 모른 채 친일 음악인의 친일가요 ‘희망의 나라로’에 환호한다.


 사라진 줄 알았지만 여전히 서울대 음악대학 앞에는 현제명의 동상이 버젓하고 중앙대에는 임영신, 연세대 백낙준, 추계대의 황신덕, 고려대의 김성수, 이화여대 김활란 등 좋다는 대학의 교육철학을 설파하는 친일 거두들의 동상은 찬란하다. 식민지 수탈의 아버지, 경부철도 주식회사의 주역 시부사와 에이치(渋沢栄一)는 이미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로 탈바꿈하여 한국에서 추앙 받은 지가 꽤 되고 반일 종족주의라는 책은 소리 없이 올해의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그나마 NO아베를 외치며 들불처럼 번진 일본제품 불매운동은 애들도 안하는 정신병 같은 장난 혹은 북한만 이롭게 한다는 신문사설로 화려한 조명을 받는다. 이러한 방식으로 의미가 세탁된 친일은 이미 우리 사회에 내재되어 비중을 늘려간다.


 그리고 현 정부의 지소미아 효력정지 해제. 국회의장의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배상 문제에 대한 새로운 해법(1+1+a). 외교, 정치적 함의는 있을 수 있겠으나 내 할아버지가 울분을 토했던(외증조부는 1907년 의병에 가담했고 옥고를 치룬 몇 안되는 독립 유공자이다) 민족적 · 자주 독립적 함의는 전혀 없다.


 하여 그들은 다시 온다. 일본 A급 전범 사사가와 료이치의 돈을 받은 연세대학의 아시아 연구기금처럼, 소리 없이 온다. 도요타 재단 지원금을 받은 학자들의 반민족적 연구로 온다. 세련된 디자인의 욱일기로 오기도 하고 화려한 올림픽의 관객석에서 휘날리는 욱일기로도 온다. 당연히 미국을 등에 업고 온다. 한일 위안부 합의라는 가당치 않은 사건으로도. 지소미아 지속이라는, 주한미군 방위비 6조원 인상이라는 압박으로도 온다. 주한미국 대사의 호출에 득달같이 달려가는 국회의원 나리들의 발걸음으로도, 성조기와 이스라엘기도 모자라 일장기까지 흔들어대는 광화문 노인네들의 외침으로도 온다.


 현재의 정부를 구한말 오갈 데 없던 고종의 무능에 비유하는 일부 정치인의 야유로도 오고, 나와는 상관없다는 듯 소확행을 목표로 삼는 청년들의 무관심으로도 온다.


 내년 4월 벚꽃난장이 펼쳐질 대한민국에서 고작 표 하나 달랑 들고 투표장으로 향해야 하는 나의 민주주의가 두려운 이유다.


이지상 위원은 현재 가수겸 작곡가로 활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