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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공부하자고?? (서상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8-01-10 16:40
조회
222
- ‘평화’에 대한 감수성 높여야

서상덕/ 인권연대 운영위원


 처음 대하는 광경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우와! 평화롭다”라는 탄성을 질러본 경험이 있는지….


 특히나 이런 감동은 먼 이국땅에서 만난 낯선 풍경 앞에서 배가되는 것 같다. 감동은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이질적인 체험, 혹은 기대나 상상을 뛰어넘는 상황에서 커진다.


 그렇다면 어떤 경우에 감동이 ‘평화’라는 말로 치환되는 것일까.
개인적인 경험에 비춰 보면, 그 대상이 자연이든 인간 공동체든 처음 마주하는 광경 속으로 뛰어들어 그 풍경의 일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일 때 ‘평화’가 온 몸에 들어차 소름 돋는 감동으로 나타나는 게 아닐까 한다.


 그런 면에서 평화는 낯선 아름다움인 동시에 쉽게 얻을 수 없는 것임을 떠올릴 수 있다. 얻기가 매우 어려워 어떤 이는 ‘평화’를 꿈이나, 과거의 신화, 유토피아(Utopia)라고까지 말한다.


 이처럼 평화는 쉽게 얻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저절로 우리에게 다가오지도 않는다. 가깝게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만 봐도 알 수 있다. 그 어느 때보다 평화에 대한 염원이 간절한 상황이다.


 하지만 우리 자신을 돌아보자. 평화를 맞아오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우리가 말하는 ‘평화’란 도대체 무엇인가. 평화를 말하지만, 평화의 실체조차 모르는 건 아닌가.


 모든 종교에서 가르치는 이상향은 결국 크고 작은 차이는 있지만 바로 그 풍경 속에 ‘나’가 포함된 ‘평화’ 그 자체인 세상에 다름 아니다.


 가톨릭교회에서는 평화를 진리에 의해 세워지고, 정의에 의해 성립되고, 사랑으로 완성되고, 자유에 의해 실현된 질서라고 말한다. 한 마디로 참 평화는 정의의 결실이라고 본다. 평화와 정의는 동전의 양면인 것이다.


 이러한 종교적 관점에서 보면 한반도에서 평화를 찾아보기 힘든 것은 정의가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 출처 - 가톨릭신문



 그렇다면 인류가 이루고자 하는 평화는 어떠한 모습일까.
많은 이들이 평화를 단순히 ‘전쟁 없는 상태’로 이해하는 것 같다. 그러나 평화는 적대세력 간의 균형 유지나, 전제적 지배의 결과로 이뤄지는 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앞서 밝힌 대로 인간사회 유지에 필요한 질서, 정의를 갈망하는 인간들이 실현해야 할 질서의 현실화가 바로 평화인 것이다.


 인류가 추구하는 정의, 정의의 발현인 공동선(共同善)이 담보하고자 하는 내용은 시대의 흐름을 따라 끊임없이 변할 수밖에 없는 속성을 지닌다. 이에 따라 평화 또한 그 구체적 내용은 시대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평화는 어떠한 계기로 인해 단번에 영구히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언제나 꾸준히 건설해 나가야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이유로 평화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 평화의 실체, 그 안에 담긴 내용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는 그것을 이뤄낼 수도, 추구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마태 5,9)


 평화는 모든 인류가 함께 누려야 할 신의 선물이다. 따라서 누구도 독점할 수 없는 것이다. 세상의 평화를 외치며 평화를 독점하고자 하는 미국이 이러한 평화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 평화로운 방법으로 일궈나가는 평화가 아니고는 평화라는 이름을 달 수 없다.


 새해! 평화를 공부해보자.


 평화에 대한 감수성을 높여 나갈 때 참 평화로 난 새로운 길이 열리는 체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길에서 벅찬 감동을 느끼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서상덕 위원은 현재 가톨릭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