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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가 무능한 이유(이재성)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2-09-07 16:29
조회
1115

이재성/ 인권연대 운영위원


 윤석열이 좌천되어 대구고검 검사로 있을 때 얘기다. 고검장 주재 회식이 열리면 윤석열이 화제의 70% 이상을 독점했다고 한다. 당시 대구고검장은 윤석열보다 나이가 어리지만 사법시험은 빨리 된 선배였는데, 윤석열은 아랑곳하지 않고 술자리를 장악했다고 한다. 위계가 강한 검찰 문화에선 이례적인 풍경이었을 것이다. 고검장은 신이 나서 떠드는 윤석열을 보며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아, 이 사람은 하나를 알면 열을 말하는 사람이구나.”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깨우친다는 옛말이 아니다. 아는 것의 10배를 떠든다는 말이다. 그러니 당연히 틀린 사실이 많고 억측도 많았을 거라는 얘기 아니겠냐고, 이 말을 전해준 사람은 촌평했다.


달변가 아닌 다변가


 도리도리와 에……응?…… 아니면 말을 잇지 못하는 윤석열은 달변가가 아닌데도 말하는 걸 좋아하는 다변가로서 어느 자리에서든 화제를 독점하고 자신만의 시각으로 세상을 재단하는 습성이 있다. 세상 모든 일을 아는 것처럼 떠드는 이런 부류의 사람은 자기 확신이 강해서 본인 주장이 허위로 드러나도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이 장삼이사라면 가까운 친구들은 피곤하겠지만 사회적으로는 별문제가 없다. ‘일개’ 검사라면 해악이 있겠지만 해악의 크기는 제한적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검찰총장에 이어 대통령이 되었다. 누가 봐도 무식한데 정작 본인은 무식한 줄 모르고 경청할 줄도 모르는 오만한 사람에게 나라에서 가장 큰 권한이 주어졌고, 사회적 해악의 크기도 비례하여 커지고 있다.


 얼마 전 강경보수 성향의 <문화일보>는 대통령이 회의에서 70% 이상의 말을 독점해 참모들의 입을 막고 있다고 비판했다. 윤석열을 “말의 점령자”라고 표현했다. 참모들의 말을 경청하고 합리적인 논쟁을 하더라도 뒤탈 없는 결론을 내기가 어려운 게 국가의 일인데, 정치도 경제도 정책도 잘 모르는 사람이 모든 게 ‘이 손안에 있소이다’라며 나대고 있으니 나라가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다.


 대표적인 예가 취학연령 하향 정책이다.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교육부 장관이 준비도 없이 불쑥 꺼냈다가 여론의 대대적인 역풍을 맞았다. 무식한데 모든 걸 안다고 생각하는 오만한 대통령과 직언 따위는 사전에 없고 알아서 기는 법만 익힌 무능한 참모가 합동 연출한 촌극이다. 대통령이 일대일 면접 보듯이 각 부처 장관으로부터 독대 보고를 받는다고 할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했다. 대통령도 초짜, 장관도 초짜인데 업무보고를 독대로 한다는 건, 엊그제 면허를 딴 초보 조종사 둘이 점보 항공기를 조종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운이 좋아 큰 사고가 나지 않는다고 해도 승객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당장 내리겠다고 난리가 날 것이다. 정부 시스템의 기본 작동 원리를 무시한 아마추어적 통치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잘 보여준 사례가 취학연령 해프닝이다.


윤석열 정부를 관통하는 무의식


 하나의 통과의례에 불과한 듯 보이지만, 나는 이 에피소드가 윤석열 정부의 실패를 관통하는 무의식의 현상(現象)이라고 생각한다. 윤석열 본인의 무지와 오만, 참모들의 아부 근성이 이 정부 사람들 의식의 밑바닥에 심연처럼 웅크리고 있다가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와 그 도저한 시대착오적 마인드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것이다. 프로이트가 말하는 무의식은 유전자 깊이 새겨진 본능의 흐름이어서 스스로 깨닫기 어렵다. 사태의 근본 원인을 알지 못하니 대증 처방에 그칠 수밖에 없고 그 처방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집권 초기 정부로서는 유례가 없는 처참한 지지율에 당황하여 박순애를 경질하고 대통령 비서진을 개편했지만 유사한 해프닝은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100일을 기념하여 대통령실이 공개한 회의 사진과 반지하 주택 수해 참사 현장을 동물원 구경하듯 내려다보는 사진 역시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이 사진들의 공통점은 중심에 대통령이 있다는 것인데, 특히 수해 참사 현장 사진의 경우 참모의 시선이 수해 현장이 아니라 대통령을 향하고 있다. 대통령의 옥음을 생생한 표정과 함께 시청각적으로 이해하려는 참모의 순박한 충심이 느껴진다.



사진 출처 - 대통령실


 대통령실 소파 회의 사진의 경우 애초 콘셉트부터 에러라고 할 수 있다. 사진이 따라 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이는 오바마 백악관 사진의 경우, 탈권위라는 명확한 콘셉트 아래 연출 없이 사진을 찍어 대통령이 주인공이 아닌 경우가 많다. 참모들 속에 파묻혀 있거나 저 멀리서 혼자 전화를 받고 있다. 40대의 젊은 대통령으로서 권위를 내려놓고, 자유분방하게 국정을 운영한다는 집권 철학이 거짓 없이 사진에 드러나 있어서 세계인의 공감과 감동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실의 회의 사진은 대단히 어색하다. 전하고자 하는 콘셉트가 탈권위인지, 업무에 대한 열정인지, 아니면 자신들의 멋진 모습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아마도 이 세 가지를 모두 보여주려고 각자의 포지션에 맞게 역할을 지정한 것으로 보이는데, 결과적으로 연출한 티가 너무 강하게 났다.



사진 출처 - 대통령실


 나는 연출 여부보다도 이 사진들을 고른 참모들의 권위주의적 멘털리티에 주목한다. 이런 사진은 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해 여러 장 찍게 되므로 최종 단계에서 어떤 사진을 선택하느냐에 공개 주체들의 의지가 반영될 수밖에 없다. 내가 보기에 이 사진들은 국민 마음이 아니라 대통령 마음에 드는 사진을 고르겠다고 작정하지 않는 한 고를 수 없는 사진들이다. 이 사진들이 뭔가 이상하게 느껴졌다면 그건 국민의 시점이 아니라 대통령의 시점에서 사진을 골랐기 때문이다. 이 사진들은 윤석열 정부가 국정에 임하는 자세를 폭로한다. 대통령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지 국민을 위해서 일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사정이 이러한데 홍보수석을 바꾼다고 달라지겠는가.


 대통령 사진 공개와 같은 이미지 홍보의 최종 목적은 국민을 설득하는 것이라는 대중선전의 기본조차 망각할 정도로 (윤석열의) 자아도취와 (참모들의) 아부 근성은 이 정부의 무의식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 윤석열 정부의 무능은 본능이 시키는 일이어서 고칠 방법이 없다. 오만과 아첨이 만나 피워낸 무능이라는 곰팡이가 새 정부 출범 반년도 안 되어, 나라 곳곳을 퀴퀴하게 만들고 있다.


검찰에서 갈고닦은 무오류 신화와 유체이탈


 윤석열의 무지와 오만은 오랜 검사 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스며든 질병 같은 것이다. 무슨 말을 해도 모두가 칭송하니 지성을 연마할 필요가 없고, 무슨 잘못을 해도 처벌받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오만에 빠진다. 누구도 우릴 건드릴 수 없고, 제 팔을(동료를) 자를 때도 우리가 필요하면 자른다는 자신감은 검찰을 집단 무오류 신화에 젖게 했다. 박순애는 윤석열의 명령을 이행한 하수인일 뿐인데 박순애를 경질하면서도 사과 한마디 없는 것은 자기가 잘못한 게 없다고 진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검찰의 무오류 신화란 이런 것이다.


 검찰은 구름 위에서 내려다보듯 세상을 보는 유체이탈의 화신이다. 법을 집행하는 자신들은 법 위의 존재라고 생각한다. 윤석열이 부인과 장모의 범죄행위에 관대할 수 있는 이유도 검찰에서 갈고닦은 유체이탈 사고방식 덕분이다. 물론 검사 중에도 괜찮은 사람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윤석열의 경우, 검사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나쁜 수준의 도덕 감정을 보여주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독재정권이라며 어퍼컷을 날리던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 여당을 장악하려 삼권분립을 깡그리 무시하고 제왕처럼 굴면서도 스스로 떳떳하다. 자기는 그래도 되는 사람이니까. 검찰의 유체이탈이란 이런 것이다.


 윤석열이 이런 사람인 줄 마치 몰랐다는 듯이 이제 와서 대통령제의 문제인 것처럼 호도하는 논객들이 있다. 예를 들어 강준만 교수 같은 사람이 그러한데, 분량의 한계상 이만 줄인다. 나중에 기회가 닿으면 따로 정리하겠다.


윤석열은 항우 같은 혼군


 무지하지만 겸손하거나 똑똑하지만 오만한 대통령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무지한데 겸손하면 호가호위 세력이 창궐하여 부패와 협잡이 판칠 개연성이 높아진다. 대통령이 똑똑한데 오만하면 국민을 설득하는 데 실패하여 국정을 그르칠 가능성이 커진다. 그런데 무지와 오만, 두 가지 악덕을 모두 가진 대통령이라니…. 구만리처럼 남은 임기 동안 어떤 희한한 일을 벌일지 나도 모르게 걱정과 한숨이 새어 나온다.


 예로부터 혼군(昏君)과 간신은 한 세트였다. 현군(賢君)과 충신이 한 세트인 것과 같다. 혼군 곁에 충신 없고 현군 곁에 간신 없다. 입속의 혀처럼 구는 간신을 좋아하고 바른말 하는 충신을 멀리해서 혼군이다. 혼군에게 간신을 끊으라고 하는 것은 똥개에게 똥을 끊으라고 하는 것과 같다. 윤석열 본인이 능력 위주로 인사를 한다고 했고, 자기 기준으로는 능력이 있는 인사들만 모셨다는데 말해 무엇하랴. 참모를 바꾼다 해도 그 밥에 그 나물이다. 혼군에게 국정 쇄신을 촉구하는 것처럼 무망한 일은 세상에 없다.


 윤석열 본인이 손바닥에 왕(王)자를 쓸 정도로 왕이 되길 원했으므로 이런 비유도 가능할 것이다. 한나라 유방과 초나라 항우 가운데 비슷한 유형을 찾으라면 윤석열은 항우 같은 혼군이다. 스스로 무적의 장수라고 으스대면서 현명한 참모를 멀리하고 사리사욕에 가득 찬 간신을 중용한다. 한때 전투력으로는 항우가 유방을 압도했으나 최종적인 승패의 열쇠는 리더 본인의 자질에 있었다.


 윤석열 정부의 지금 형세를 요약하면, 도처에 계견승천(鷄犬升天)이요 성호사서(城狐社鼠)다. 한 사람이 권력을 얻으니 그 집의 닭과 개까지 권세를 누리고, 성벽에 여우가 살며 사당에 쥐가 살아도 잡지를 못한다. 닭과 개와 여우와 쥐가 누구인지 말하지 않아도 아실 줄 믿는다. 가장 심각한 것은 대통령 자신이 이런 상황을 만들어놓고도 스스로 잘못을 모른다는 사실이다. <장자>가 말하는 해군지마(害群之馬, 무리를 해치는 말)가 바로 윤석열이다.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