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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몰입교육 사태를 보며...(황미선)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3 17:55
조회
307

황미선/ 인권연대 운영위원



인수위가 영어몰입교육을 제안했었다. 공교육 강화를 위해서라고 했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영어학원의 설레는 들썩임을 이미 누구나 피부로 느낄 수 있다. 기러기 아빠를 몰아내기 위해서 라고도 했다. 그러나 이 또한 더 많은 기러기 가족을 양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공교육에 몸담고 있는 초등학교 교사로서 학교 현장의 상황을 전혀 파악하고 있지 못하는 인수위의 한심함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정책을 제안하고 시행하려면 해당자들의 의견수렴은 물론 세심하고 정확한 사전조사가 이루어져야하고 신중한 계획아래 차분하게 단계적으로 진행되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수위는 학교의 영어교육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안다면 그런 정책을 그 여파나 파장을 고려하지 않고 그토록 쉽게 발설하지 못할 것 같다.

나는 영어몰입교육을 운운하기 이전에 영어교육의 필요성을 짚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어 몰입교육을 하는 나라는 오랫동안 영어권 국가의 식민지였던 필리핀이나 핀란드처럼 다민족 국가로 여러 개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나라다. 그러다보니 영어를 통해 소통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그에 반하여 우리나라는 비교적 단일민족국가이고 세계적으로 그 우수성과 과학성을 인정받고 있는 한글이라는 고유한 언어를 가지고 있다. 즉 영어를 소통수단으로 삼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능숙한 영어실력의 보유가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열쇠인 것처럼 생각하는 인수위의 태도에 굳이 일본과 필리핀의 경우를 비교의 예로 들지 않더라도 영어가 그 기준이 되지 못함을 인지할 것이다. 영어권 국가들이 세계적 주도권을 잡고 있는 지구화시대에 다른 나라와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야하는 우리나라로서는 영어가 국제적 소통의 수단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국민 모두가 국제적 소통 언어인 영어를 필요로 하는 업종에서 일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즉, 전 국민이 영어배우기에 목숨 걸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단지 국가는 필요에 따라 영어 배우기를 원하는 국민이 있다면 어떤 장애도 없이 쉽게 영어를 배우도록 그 여건과 환경을 제공해주면 된다.

그리고 인수위가 영어교육만이 아닌 교육의 목표를 큰 틀에서 제대로 인지하고 있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 틀 속에서 영어교육도 자리매김해야하는데 인수위는 현재 행하고 있는 교육의 목표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 영어교육을 수단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교육의 목표로 인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과목을 영어로 수업하도록 하겠다는 것은 현재 상황으로 가능하지도 않은 것이지만 여타 과목의 수업 내용의 깊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이는 모든 국민을 우매화시키는 것이고 교육의 다양성과 전문성, 창의성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물론 여론의 반대로 영어몰입교육이 해프닝이 되었지만 인수위의 영어교육에 대한 인식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초등학교 영어시간을 주당 1시간 더 늘인다고 영어실력이 갑자기 늘어나는 것도 아닐뿐더러 그럴 경우 주당 수업 시간수가 바뀌든가 다른 과목의 시간을 줄여야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전자의 경우 현재의 많은 주당 수업시간도 문제인데 더 늘인다는 것은 말이 안 되고 후자의 경우 어느 과목의 시간수를 줄이느냐의 문제가 남게 된다. 여러 과목-특히 국어-을 통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인데 인수위의 생각대로 시행하다가는 영어만 할 줄 아는 국제적 미아를 만드는 것이고 이런 것들이 미국의 속국이니 51번째 주니 하는 비판을 듣게 하는 것이라고 본다.

 

080220web01.jpg그림 출처 - 한겨레21



 공교육의 강화가 아닌 영어 사교육의 강화! 기러기 아빠가 아닌 기러기 가족, 펭귄 가족의 확대! 그리고 영어 사교육을 통한 심화되는 교육의 양극화! 그로 인한 부의 대물림 등... 굳이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그 파장을 손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것을 인수위는 몰랐던 것일까? 아니면 알고 있으면서 모른 체하는 것일까? 진정 공교육의 강화를 원한다면 공교육에 돈을 풀어라! 2, 30년 전과 크게 다를 것 없는 학교 환경에서 지구화시대를 논하고 어학을 배우기 위한 Lab실 하나 없는 학교 환경에서 영어몰입교육 운운하는 것은 사상누각이다. 전혀 준비되어 있지 못한 지금의 학교 현장과 기초 없는 건축이 대비되면서 현실성 없고 대책 없는 정책은 정말 사양하고 싶다.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투자에는 인색하면서 말만 공교육 강화란다.

이제라도 인수위는 반성해야한다. 그리고 깨달아야한다. 교육은 인간을 만드는 아주 신중하면서도 많은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지난한 일련의 과정이다. 가장 중요한 교육의 중심, 교육의 목표를 잃지 않아야한다. 불도저를 교육에 들이대지 말아야한다. 밀어붙인다고 되지도 않을뿐더러 잘못 밀어붙이고 나중에 어떤 결과를 감내해야하는지를 생각해봐야한다. 이번 영어몰입교육 사태를 교훈삼아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열린 마음으로 귀담아 듣기를 바란다. 공교육 강화를 위한 진정한 길이 무엇인지를...


황미선 위원은 현재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