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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과 질병의 고통을 학생에게 떠넘겨서는 안 된다(김영미)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09 18:01
조회
357
수동(가명)이를 만난 것은 3년 전 봄이었다.

중학교에 갓 입학한 수동이는 당뇨를 앓고 있었다. 그리고 수동이는 자기표현이 서투르고 묻는 말에도 대답을 잘 못하는 등 매번 당황스러운 눈길로 나를 바라보는 아이였다.

수동이는 생활보호대상자인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다. 수동이의 아버지도 당뇨를 앓고 있는데, 고정된 일자리 없이 여러 지역 공사장을 다니면서 노동을 하고 있었다. 수동이는 그런 아버지를 가끔씩 만나서 용돈을 받곤 했다. 공사장을 전전하며 생계를 잇는 가정의 학생을 보는 것은 아주 드문 경우가 아니다. 하지만 수동이처럼 당뇨를 갖고 태어난 학생을 만나는 일은 매우 드물다.

여러해 전에 만난 주원이란 아이도 당뇨를 앓고 있었다. 하지만 주원이는 안정된 가정에서 어머니의 지극한 보살핌으로 나름대로 질병을 관리할 수 있었다. 보건 교사로서 내가 주원이를 도울 수 있는 일은 다른 학생들이 모르게 보건실에서 인슐린 주사를 맞을 수 있도록 하고, 혈당이 떨어지면 쇼크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등의 일이 전부였다.

그런데 수동이에게는 당뇨를 관리해 줄 수 있는 가족이 따로 없다. 관절염을 앓아서 움직임이 불편한 할머니는 노환으로 누워계시는 할아버지를 돌보시느라 수동이까지 돌보지를 못했다. 적절한 조치가 없이 그저 ‘방치’된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수동이는 자기 몸의 질병에 대해 무관심했다.

그렇다보니 보건 교사로서 수동이의 건강 상태를 크게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떤 질병에 대한 검진이나 처방, 지속적인 관리 방안 등이 있더라도 이 모든 질병 관리 체제가 자동적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과학적인 의학적 관리를 생활 속에서 구현시켜줄 환자의 환경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수동이의 경우도 그런 환경이 뒷받침 되지 않았다. 수시로 수동이의 혈당을 체크하며 당뇨병에 대한 설명과 예방 방법 등을 알려줘도 별다른 차도가 없었다. 아버지나 할머니에게도 여러 차례 전화하여 수동이의 관리를 부탁했지만, 수동이의 상태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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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건강관리협회에서 '당뇨의 날'을 맞아 무료검진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 출처 - 뉴시스



수동이의 ‘건강한 생활’을 위해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여지가 많지 않았다. 돌발적인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학교에서 지속적으로 수동이를 관리하기가 불가능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학년이 바뀌었다.

그 후 매스컴에서 당뇨를 앓았던 유명 연예인이 시력을 상실했다는 보도를 접했다. 수동이의 눈을 보니 동공이 이상해 보였다. 놀란 마음에 급히 부모님께 건강검진을 하도록 하고, 담임교사와 함께 인근의 복지관에 연락해 학생을 돌봐주는 도우미의 지원을 요청했다. 그 후 수동이는 학교생활을 잘 하는 듯 보였다. 가끔씩 학교를 결석하기는 하지만.

당뇨는 음식조절과 운동요법 등을 통해 일생동안 관리해야 하는 질병이다. 중학생인 수동이는 가정과 학교에서 적극적인 도움을 필요로 한다. 수동이뿐만이 아니다. 시간이 가면서 학교에는 당뇨, 고혈압, 비만인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가정에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돌보아도, 어린 학생들이 스스로 질병을 관리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다. 하물며 가정에서 방치된 아이들의 위험이야 말할 것도 없다.

이런 부분에 대해 국가에서 복지시스템을 학교와 연계해서 펼쳐나가는 모습을 보여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수동이를 관리해 주었던 지역 복지관이 있었지만, 청소년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복지관은 적었고 이마져 홍보가 되지 않았다. 나 역시 어렵게 수동이를 의뢰해서 도움을 받았었다.

질병을 가지고 태어난 학생이 가난하다고 방치되어서는 안 된다. 질병에 대한 대처가 사회 전체의 몫인 것과 마찬가지로, 가난 또한 사회 전체가 책임을 져야 할 문제다. 더군다나 아직 자립의 기회조차 얻지 못한 어린 학생들이 질병과 가난의 고통을 혼자만의 몫으로 떠맡아서는 더더군다나 안 된다. 질병과 가난의 이중고를 겪는 그 어린 학생들을 따듯하게 감싸안고 돌보아주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김영미 위원은 현재 불광중학교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