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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과 언론의 돌팔매와 연예인의 인권 (김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9 00:54
조회
273

김 녕/ 인권연대 운영위원



최근 ‘국민 탤런트’라는 애칭에 걸맞게 20년간의 연예생활 동안 국민들에게 가까이 다가와 함께 있던 최진실씨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자 참으로 많은 이들이 충격을 받았고 슬퍼하고 있다. 최 씨의 자살 이후 TV에서는 이전 그녀가 출연했던 장면들이 여러 채널에서 회고 형식으로 방영되었는데, 그 중의 하나는 3,000개의 악성 댓글(악플)에 관한 것이었다. 몇 년 전 인터뷰에서 최씨는 “20대에 데뷔했을 때엔 인터넷이 발달되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때 만일 지금과 같은 악플을 접했다면 참으로 힘들었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밤마다 인터넷 댓글을 보려고 하는 자신이 싫으면서도 자꾸 보게 되는데 밤새 악플을 세어보니 3,000개여서 깜짝 놀랐으며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지 회의가 생긴다고 했다. 그리고 2007년 1, 2월에 잇따라 자살한 가수 유니와 탤런트 정다빈 등에 대한 애절하고 안타까운 심경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던 최 씨는 결국 “최 씨가 사채업을 하면서 안재환씨에게 빌려준 25억 원을 받아내기 위해 안 씨를 협박해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내용의 악성 루머에 의해 목숨을 끊었으며, 심지어는 그 이후에도 “악성 루머가 사실로 확인될 것을 두려워 한 나머지 자살한 것은 아니냐?”는 2차 악성루머까지 떠도는 등, 한번 퍼진 루머는 악플을 통해 지속적으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필자는 최 씨를 경악케 했던 그 3,000개의 악플에 대해 생각해 보며 성서 말씀이 떠올랐다. 요한복음 8장을 보면 예수께서 간음하다 잡힌 여자를 데리고 나와 돌로 쳐 죽이려는 사람들에게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 하시니 나이 많은 사람부터 하나하나씩 모두 가버렸다는 일화가 나온다. 물론 최 씨는 그러한 죄인이 아니었고 비운을 무릅쓰고 삶과 연기에 최선을 다하려 억척스럽게 노력했던 사람이었다. 반면에, 악플을 다는 누리꾼들은 죄 없는 여인에게 인터넷 악플 달기라는 돌팔매질을 일삼으면서도 익명성 안에 스스로의 모습을 감추고 죄가 있어도 여전히 그 현장에 자리 잡고 앉아있는 이들이 아닌가 싶다. 악플은 인터넷 돌팔매이며 가공할 만한 위력을 지닌 이 시대의 치명적인 살상 무기라 하겠다.

연예인들은 그 살상 무기의 가장 쉬운 표적이며, 사냥감이기 쉽다. 영화제 때마다 레드 카펫을 밟고 입장하는 화려한 의상의 배우들, 수많은 팬들의 환호 속에 열창을 다하는 가수들, 그들이 한 몸에 받는 ‘동경’이 동전의 한 면이라면 다른 면은 곧 ‘질시’가 아닐까. 인간이 지닌 야누스적인 본성은 ‘동경’과 ‘질시’ 사이를 변덕스럽게 오가며 대중 심리 내지 영웅 심리에 의해 가히 폭력적이라 할 만큼 한쪽 극단으로 증폭되기도 한다. 아울러, 스타를 만든 언론은 그 스타의 사생활 곳곳을 선정적으로 파헤침으로써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유혹한다. 그러다보면 스타들이 결국 언론에 의해 탄생되어 언론에 이용되고 언론에 의해 감시당하다가 결국 언론의 돌팔매에 의해 죽음을 당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대중들 또한 진지한 대화의 주제가 아닌 심심풀이의 대상으로 흔히 연예인들을 입방아에 올린다. 연예인들의 말실수나 음주 운전, 사소한 거짓말 등에 대해서는 매우 냉혹하지만 스스로에 대해서는 매우 관대한 대중들의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모습은 약자에게 유달리 냉혹한 우리 사회의 특성과 겹쳐진다. 자신의 삶에서 만족감을 찾지 못하고 좌절과 상대적 박탈감이 많이 쌓인 수많은 이들, 과도한 입시 경쟁에 지친 10대, 제대로 된 직업을 찾지 못한 ‘88만원 세대’, 치열한 생존경쟁에 내몰린 30, 40대들은 날마다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그들의 좌절감을 이들을 속죄양으로 삼아 해소하는 건 아닐까? 한국 사회에서 ‘배려’와 ‘연대’의 따뜻한 정을 못 느껴보았을 그들에게 이런 미덕을 찾기란 힘들 것이다. 무차별한 악플의 급속한 증가는 한국 사회의 병리 현상의 하나라 할 만하다. 악플 중에 특히 초등학생의 것이라고 보이는 것들도 많다. 초등학생들이 어쩌다 벌써 그렇게 되었나!

이러한 우리 사회엔 연예인들의 인권에 대한 배려가 절실히 요청된다. 대중적 인기에 목숨을 거는 연예인들은 순식간에 사회적으로 매장될 수 있는 참으로 불안한 지위에 있다 할 것이다. 게다가, 유명해지기까지 무명의 긴 세월을 겪어야 하는 수많은 연예인들은 불확실한 성공 가능성 앞에서 한 두 번씩은 꼭 자살을 생각해 보았다고 한다. 우울증, 인기 하락에 대한 우려, 그리고 장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사업에 손대다 결국 사채에 빠져 빚더미에 앉게 되기도 하고, 어렸을 때부터 그 일에만 몰입했기에 인생의 다른 대안 내지 직업에 대한 가능성이 별로 없는 경우도 많다. 악플에 시달리는 연예인들은 불신감과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대중뿐만 아니라 제작진들까지 두려워하기도 한다. 이렇게 쉽게 우울증에 빠져 벗어나지 못하는 연예인들은 정신과 치료를 받고자 해도 혹시 엉뚱하게 퍼져나갈 소문이 두려워 치료조차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081015web01.jpg'최진실 사망사건'을 보도한 <중앙일보> 10월 2일자 인터넷판 기사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자살 후에도 연예인들은 그의 자살이 ‘모방 자살’을 일으켰다는 비난을 받게 된다. 그 ‘베르테르 효과’는 그 연예인을 따라 죽는 이들과 언론의 보도 태도 탓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고인이 된 연예인들을 또 한 번 욕되게 한다. 최 씨의 경우 특히 <중앙일보>는 10월 2일자 인터넷 판 기사에서 “자택 욕실 샤워부스에서 압박붕대로 목을 매고 숨진 채 발견됨”이라고 구체적인 자살 사망 방법을 묘사했고, 더 나아가 “압박 붕대는 일반 시중 약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며 “3m짜리가 4만~7만 원 정도”라고 하여 ‘사망도구’의 구입 방법까지 안내했다. 이로 인해 벌어진 몇 차례의 ‘모방 자살’까지도 이미 고인이 된 이 탓이란 말인가? 2004년 복지부와 자살예방협회, 한국기자협회가 공동으로 발표한 ‘자살보도 가이드라인’만 지켜졌어도 모방 자살 가운데 많은 경우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시 가이드라인은 자살 방법을 자세히 묘사하거나 충분하지 않은 정보로 자살 동기를 판단·단정하지 말고, 흥미를 유발하거나 속보 및 특종 경쟁의 수단으로 삼지 말자는 등의 내용을 담았다.

밝은 미소로 우리와 늘 같이 있었던 ‘국민 탤런트’ 최진실씨가 우리에게 남긴 유언이 있다면, 심심풀이 삼아 던지는 돌멩이 하나에 치명상을 입는 연예인들,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더 쉽게 상처를 입고 더 큰 외로움을 느끼는 이런 연예인들이 곧 우리 사회의 약자, 모습만 화려한 ‘사회적 약자’이기도 함을 잊지 말아달라는 것, 좋아하는 스타라면 제발 그들의 ‘인권’도 존중해 달라는 것 아닐까?

 

김 녕 위원은 현재 서강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