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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와 여호수아의 경우, 예수와 이명박의 경우 (서상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9 00:48
조회
263

서상덕/ 인권연대 운영위원



   구약성경의 초반부를 이루는 부분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모세와 여호수아의 이야기는 비그리스도교 신자라도 웬만한 이라면 알고 있을 정도로 잘 알려진 얘기다. (모르는 이라도 영화 ‘십계’를 떠올리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모세는 숱한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민족을 약속의 땅인 가나안까지 이끌었으면서도 끝끝내 그 땅을 밟아보지 못하고 죽음을 맞는다. 한마디로 모세는 자신이 할 일을 다 한 존재였다. 지팡이로 홍해를 갈라 민족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적들의 추격을 뿌리치는가 하면 사막에서 샘물도 만들고, 하느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는 등 이스라엘 민족 뿐 아니라 인류사에 있어 새로운 획을 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그였지만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약속의 땅에 들어간 이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모세에 이은 다음 세대라 할 수 있는 여호수아였다.

몇 번이고 이런 장면을 접한 그리스도인들도 이 대목에 이르러서는 가슴 한 켠이 쓰릴 지경인데, 성경을 처음 대한 이들이라면 이러한 신의 모습에 야속함마저 느낄지 모르겠다. (모세 개인적으로는 또 얼마나 신이 야속했겠는가.)

하지만 멀리 성서학자들에게까지 갈 필요도 없이 앞뒤 문맥을 읽을 줄 아는 이라면 이러한 구약의 이야기에 대해 다른 해석을 내놓을 수 있게 된다. 하느님이 모세가 가나안 땅을 밟지 못하게 하신 것은 그에 대한 벌이 아니라, 모세가 요르단 강을 건넌 다음에 죽게 된다면 모세의 후계자이자 민족의 지도자인 여호수아의 지도력이 훼손될 것까지를 내다본 판단이었다는 것이다. 만약 두 사람이 함께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면 여호수아가 모세의 후광에 가려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할 수도 있었을 법하다. 실제 여호수아는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민족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 보임으로써 오늘에 이르기까지 알게 모르게 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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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십계'의 한 장면
사진 출처 - 씨네21



   수천 년 전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담고 있는 성경이 이처럼 지도자의 중요성과 더불어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아는 지도자의 자질에 대해 생생한 메시지를 전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놀랍기도 하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우리 정치 현실만 보더라도 물러날 때를 알지 못하는 지도자로 인한 폐해가 얼마나 심각한 지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다. (그 실체적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감당하기가 버겁기까지 하다.)

미국산 쇠고기문제에서 촉발된 촛불 시위를 비롯해 종교 편향 문제로 인해 빚어진 정부와 불교계, 나아가 불교계와 개신교계와의 갈등 등 이명박 정부 들어 거의 우리 사회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는 난맥상들도 따지고 보면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모르는, 때로는 외면하는 지도자들로 인한 것이 대부분이라 할 수 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고 하는 이명박 대통령이 모세와 여호수아의 이야기를 모르진 않을 텐데, 이러한 우리 사회의 모습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 암담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같은(아니, 실제 그와 나는 상당히 다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조금은 멀러 서있는 듯한 ‘갈라진 형제’를 위해 기도라도 바쳐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저 위대한 모세가 되기도, 그렇다고 새로운 세대인 여호수아가 되기도 거부하고 오로지 스스로 또 다른 예수가 되길 원하는 듯 한 모습을 그에게서 발견하게 된다면 과장일까. (과장이라고 하자.)

하지만 이런 기우가 점점 현실적 무게를 더해 가는 이 시점에서, 어쩌면 우리 세대는 ‘또 다른’ 성경으로 ‘또 다른’ 교리를 배워야 할 지 모르겠다는 염려가 커가고 있다. (그렇다면 그는 더 이상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이 아니지. 그렇게 되면 ‘MB인’인가? 하긴 벌써 기독인에서 ‘MB인’으로 전향한 이들이 나타나고 있질 않나.)

 

서상덕 위원은 현재 가톨릭 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