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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라는 착각(이재성)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2-12-28 09:28
조회
513

이재성 / 인권연대 운영위원


하나의 유령이 대한민국을 떠돌고 있다. 법치라는 유령이.


법치가 법복귀족(noblesse de robe)의 인치(人治)로 전락한 지 오래인데도 한국사회는 법치라는 유령에 홀려, 출구 없는 반동의 터널을 헤매고 있다. 언론은 검찰의 포로가 되었고, 사법부는 검찰의 시녀가 되었다. 진보논객은 역진영논리라는 병에 걸려 제 발등 찍기에 바쁘고, 민주당과 정의당은 검찰이 놓은 덫에 빠져 정치 언어를 잃은 채 오리무중이다. 바야흐로 검찰의 전성시대다.



출처 - 경향신문


법치의 계급적 본질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탄압은 검사정권이 말하는 법치의 계급적 본질을 폭로한다. 검찰 집단이 한 번도 반노동자적이지 않은 적이 없었다는 점에서 전혀 새로운 일은 아니지만, 파업에 강경대응 했다고 대통령 지지율이 올라가는 현상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진보진영이 여론전에서 패배하고 있는 현실을 가감없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헌법이나 ILO 규정까지 거론할 필요도 없다. 특정 회사에 소속된 정규직 노동자도 아니고 화물차를 소유한 차주로서 임의의 계약관계에 있는 (투쟁의 결과 간신히 4대보험 임의가입 대상이 된) 특수고용직 노동자에게 정부가 업무개시명령을 내린다는 건 그 자체로 모순이다. 고용할 땐 책임지기 싫어서 자영업자로 만들어놓고 뭉쳐서 싸우면 자영업자에게 강제노동 명령을 내린다? 이 자명한 억지에도 맞서지 못할 만큼 진보진영의 여론 형성 능력은 바닥에 떨어져 있다.


적반하장 정치가 가능한 이유


유례없이 낮은 지지율과 무책임한 불통에도 불구하고 윤석열이 우격다짐-적반하장 정치를 할 수 있는 이유는 단지 자기가 검찰 출신이어서 기소되지 않을 거라는 확신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윤석열과 졸개들이 현대 민주사회의 핵심 작동 원리인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권한과 메커니즘을 장악했다고 믿기에 저렇게 당당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믿음은 상당부분 타당하다.


대통령 후보로 등극하게 된 계기였던 조국 일가 수사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윤석열은 오불관언의 돌쇠형 리더십으로 일관해 왔다. 비판이 없지 않았으나 법 집행이라는 명분으로 쉽게 제압했다. 법은 자신의 모든 허물과 모순과 자가당착을 파묻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강력했다.


법 해석투쟁 포기한 대가


법은 사회적 약속이지만 갈등과 타협의 산물이어서 해석과 적용에서도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법 집행의 적정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 법치를 부인하는 것 같은 분위기가 생겨 버렸다. 법은 끊임없이 재해석해서 새로 만들어 나가야 하는 정의 실현의 일시적 도구에 불과한데도, 마치 불변의 진실인 것처럼 묻지도 따지지도 않게 되었다. 법 집행의 생명은 공정성인데, 살권수라는 거짓 명분에 속아 유검무죄 무검유죄의 편파성을 용인해 버렸다. 검찰 수사의 편파성과 자의성을 지적하면 민주당 편을 든다고 눈을 흘겼다. 진보진영이 법 해석투쟁에서 스스로 백기투항한 결과가 검사정권의 수립이요,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전방위적 반동의 물결이다.


검찰의 포로가 된 언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국민은 현명해서 여론의 3분의 2가량이 윤석열 정부의 일방통행에 비판적이다. 하지만 분노는 한줄기로 모이지 않는다. 언론의 역할 또는 책임 방기가 큰 몫을 차지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자신들이 진영주의 언론이라고 낙인 찍은 매체의 보도는 아예 무시한다. <더탐사>가 보도한 ‘윤석열-한동훈-김앤장 술자리 의혹’ 사건이 그런 경우다. 만약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법의 이름으로 나라를 주무르는 법복귀족 카르텔의 실체를 드러내는 중대한 국기문란 사건이지만 팩트 취재조차 하지 않는 것 같다. 법무부 장관이 <더탐사> 기자들을 고발하고 잇달아 압수수색을 벌이고 있는데도 모른척한다. 수사기관을 완벽히 장악한 검찰 출신 장관이 법을 동원해 비판 보도에 재갈을 물리는데도 별일 아니라는 듯 무시하고 있다. 진영주의 매체는 언론자유를 누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설사 이들이 진영주의 매체라 해도 언론탄압에는 함께 맞서 싸워야 하는 것 아닌가.


주류언론이 단순히 정보가 부족해서 검찰 비판 보도에 소극적인 것만은 아니다. 유검무죄의 흔한 케이스 중 하나인 이른바 고발사주 사건을 보자. 검찰이 핵심 피의자인 김웅을 불기소 처분하기 위해 수사보고서를 허위작성했다는 검찰수사관의 폭로를 거의 지나가는 뉴스처럼 다루거나 무시했다. 공항에서 도망가려는 김학의 긴급체포를 위해 허위공문서를 작성했다고 검찰이 수사를 벌일 때는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따라가기 바빴던 언론은 대체 어느 나라 언론이었나?


역진영논리에 빠진 진보논객들


국민 일반의 상식과 주류언론 또는 지식인들 사이에 점점 더 괴리가 커지는 현상은 몇 년째 이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강준만은 최근 한 칼럼에서 윤석열과 이재명이 마주 보며 달리는 기차라며, 이걸 세우는 게 자신의 사명인 것처럼 말했다. 내가 보기에 이재명을 향해 달려가는 것은 윤석열과 검찰 부하들이고, 이재명은 피하고 싶은데 피할 데가 없어서 그냥 서 있는 것 같은데, 대체 무슨 근거로 마주 보며 달리는 기차라는 것인지, 칼럼을 봐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최근 검찰이 소환조사를 받으라고 이재명에게 통보한 성남FC 수사처럼 없는 죄도 만들어내려는 검찰의 필사적인 노력이 보이지 않는 것인지, 못 본 척하는 것인지 역시 알 수가 없다. 진영논리라는 비판이 두려운 나머지 역진영논리에 빠져 사리판단조차 흐려진 사례라고 생각한다.


어떤 진보논객은 이재명의 측근이 모두 구속되었으니 최소한 유감표명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몰아부친다. 그런데 구속된 본인들은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다. 특히 정진상의 경우, 돈을 줬다는 전언의 전언을 근거로 기소와 영장 발부가 이뤄진 것이다. (부패방지법 위반 혐의는 사안 자체도 별 게 아니고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주장이 있다) 진보논객조차 검찰 기소와 영장 발부를 유죄 판결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이런 안이한 자세가 검찰 권력을 무소불위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정녕 모르는 것일까. 정권이 바뀌어 검찰이 재수사에 착수하자 기존 진술을 뒤집어가며 검찰이 원하는 그림을 그려주는 피의자들만 혐의를 덜어주고 편의를 봐주는 게 보이지 않는 것일까. 증언 조작의 낌새를 느끼는 건 지나친 의심일까.


검찰의 시녀가 된 사법부


영장 발부 또한 유죄의 기준이 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여기서 세부 사항을 따질 여유는 없지만, 서해 피격 사건과 관련하여 서훈 전 국정원장의 영장이 발부된 것이 대표적이다. 문재인 정부 당시 양승태 대법원장 구속과 함께 사법부의 방대한 자료와 정보가 검찰에 넘어간 이후 사법부의 보수화 경향이 눈에 띄게 강화됐다고 느끼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검찰에 영혼을 털린 사법부가 검찰의 눈치를 보는 시녀로 전락한 게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물론 그렇지 않은 판사도 있겠지만, 잘 보이지 않는다. 대법원이 윤석열 장모의 요양급여 편취 사건에 무죄를 선고한 것은 그저 작은 사례에 불과하다.


스스로 무릎 꿇은 민주당


검찰권력 앞에 스스로 무릎 꿇는 건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지난여름 민주당은 기소와 동시에 직무를 정지하는 당헌을 결국 유지하기로 결정했는데, 이재명 방탄용이라는 내외부 비판 때문이었다. 나는 민주당의 당헌 개정이 기소가 본래 갖고 있는 사전적 의미-법원에 심판을 요구한다-로 제자리를 찾을 수 있는 계기라고 생각했는데, 내부 정치투쟁으로 전락해 수포가 되어버렸다. 이것이 오늘날 사분오열되어 눈치만 보면서 거의 아무런 존재감도 느껴지지 않는 거대야당 민주당의 모습이다.


민주당마저 이렇게 기소에 힘을 실어주니 검찰이 죄수까지 동원해서 증언을 연습시켜 진술을 바꾸고 기록을 조작하며 기소에 목숨을 거는 것이다. 특히 윗분들이 싫어하는 대상의 경우 일단 기소만 하면 해당 검사는 출세길이 보장된다. 재판에서 무죄가 나오더라도 대법원 판결까지 걸리는 시간을 고려하면 판결은 무의미하다. 기소 대상에 대한 여론재판은 이미 오래전에 끝난 상태고, 해당 검사의 화려한 경력을 물릴 수도 없다. 이 상태로라면 오히려 물불 가리지 않고 기소에 올인하지 않는 검사가 비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제도적 유인책이 강력하다. 이성윤, 박은정 등 문재인 정부에 협조적이었던 검사들이 죄다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에 따른 것이다. 조직의 배신자는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 보복하는 게 한국 검찰의 조폭적 규율이다.


무너진 상식의 인계철선


윤석열과 검찰이 정권 탈취의 수단으로 사용했던 수사와 기소는 이제 정적제거와 정치보복의 무기로 활용되고 있다. 제 식구(ex: 김건희, 김웅)는 뻔뻔할 정도로 대놓고 봐준다. 공정하게 보이려는 최소한의 성의도 없다. 형식적인 외관조차 갖추기 귀찮을 만큼 자신감에 가득 차 있다. 정의와 상식의 인계철선이 무너진 것이다.


그런데도 검찰의 불공정성에 대한 비판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문재인 정부 당시 공정성 논란의 주요 펌프였던 검찰과 보수언론이 기능을 멈춰서 사회적 원동력이 사라진 탓이 크다. 진보진영의 경우 앞서 언급한 각자의 사정으로 주눅이 들어 있다. 무엇보다 법 집행 자체, 법치라는 허울의 위력에 눌려 감히 저항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군사정권의 물리적 폭압과 달리 검사정권의 법리적 폭압은 알아차리기도 쉽지 않고 분노를 모으기는 더욱 어렵다. 일종의 저강도 독재인 셈인데, 그래서 언론과 지식인의 책무가 더욱 중요해진다. 적어도 진보언론과 논객들은 문재인 정부 당시 공정성 문제를 제기했던 열정의 절반이라도 할애해 검찰의 불공정성을 비판해야 한다. 검찰개혁은 진영의 문제가 아니라 인권의 문제이자 정의의 문제이며, 무너진 상식의 인계철선을 복원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