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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측보행 (위대영 위원)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3 16:06
조회
195

위대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어느 날 아침 출근을 위해 지하철 역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려 한다. 평소 몸이 기억하고 있는 대로 발걸음이 내디뎌졌고, 순간 앞사람과 충돌할 뻔 했다. 어제와 달리 에스컬레이터는 하행이 상행으로, 상행이 하행으로 바뀌어 있었고, 우측보행이라는 표어 같은 것이 바닥에 붙어 있다. 한동안 주로 다니는 지하철역에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에스컬레이터를 타려할 때마다 발이 꼬이는 황당한 경험을 해야 했다. “아차~. 에이 씨~.” 우측보행이라니.......

그리고 나서 얼마 후 밥 먹으며 TV를 보는데 우측보행을 생활화하자는 내용의 공익광고 같은 것이 화면에 흐른다. 선진국에서는 우측보행이 생활화되어 있다는 둥, 어떤 아이가 아빠로 보이는 사람의 손을 잡고 가고 있고, 맞은편에서는 유럽인쯤으로 보이는 백인이 뭔가를 보면서 아이의 정면으로 걸어오고 있는데, 아이는 어느 쪽으로 걸어가야 하느냐고 아빠로 보이는 사람에게 묻고, 아빠로 보이는 사람은 아이에게 서로 부딪히지 않고 길을 가기 위해서는 우측보행을 해야 한다는 식의 뜬금없는 얘기를 한다.

고등학교 시절 나의 사촌 형이 대학교 앞 차도에서 뒤에 오던 무보험 차량에 치어 사망한 사고가 있었다. 칠순을 앞에 둔 나의 어머니는 일방통행로에 서 있다가 뒤에서 오던 차에 발목을 치어 지금도 원활한 보행에 지장을 느끼신다. 내가 아는 대학생 한명은 이면도로에서 뒤에 오던 차가 왼쪽 무릎을 치어 평생 등산하기 어렵게 됐다.

난 어려서부터 좌측보행, 정확히는 좌측통행을 해야 한다고 교육을 받으면서도 좌측통행을 별로 내켜하지 않았다. 누군가에 의해 주입된 행동을 하기 싫은 것이다. 그런데 나이 먹고 나서 정부가 우측통행 아니 우측보행을 하라고 하니 더 하기 싫다. 더군다나 우측보행을 하는 것이 마치 선진국민, 문명인의 보행방식이라는 식의 얘기를 들으니 하기 싫은 기분을 넘어 역겹게 느껴진다.

난 지금 화가 나있다. 왜 내가 걸어가는 방향을 정부가 일률적으로 정하려고 하는가? 좌측통행도 자연인의 보행방향을 획일화 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전체주의적 관점이라는 거부감이 들었다. 그런데 이제는 평생을 몸에 익혀 살아온 통행방식을 자기들 입맛대로 바꾸고 또 다시 이를 획일화 시키려 한다. 게다가 그것에 선진국형, 문명국형이라는 식의 수식어까지 붙여 한순간에 나와 내 주위 사람들을 후진국형, 야만국형 인간으로 만들었으니 화가 안 날 수 없다.

사람의 의식과 행동은 자연스럽게 조화되어야 한다. 설령 아무리 우측보행이 보행방식에 있어서 우수하더라도 그것으로 인간의 행동을 강제하려는 순간, 우측보행은 그 자체로 최소한의 가치도 갖지 못한다. 차량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한 최선의 통행방식이 무엇인지, 사람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한 최선의 보행방법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것, 그것을 넘어 우측보행을 일률적인 인간의 보행방법으로 반드시 지켜야 할 어떤 문화적 규범, 법률로 만들고(실제로 한나라당 박대해 의원은 이를 입법추진중이다), 인간의 의식에 주입하려는 것은 규범, 법률을 가장한 인간에 대한 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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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연합뉴스


심지어 어떤 교통문화 단체에서는 이와 같은 우측보행을 파쇼적인 발상이라거나, 레드 콤플렉스의 반영이라고 아주 강하게 비판한다. 난 현재 진행 중인 우측보행 계도 광고가 정부가 강제력(예산, 광고 내용, 실제 생활에서의 에스컬레이터 등의 배치 변경 등)을 통해 인간의 행동유형을 획일화 시키려는 발상에 연결된 것이라는 점에서 전체주의적인 시도라고 비판하고 싶다. 더구나 이번 정부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에 엄청난 예산을 쏟아 붓는 것은 자신의 존재 근거인 국민을 기만하고 또 무시하고 있는 증거라고 비판하고 싶다. 복지예산 증액은커녕 이를 줄이기 급급하면서도 이처럼 근거 없고, 비상식적이고, 비합리적인 정책으로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정부(물론 이보다 4대강 공사에 쓰일 천문학적인 액수의 예산을 생각하면 목구멍으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에 대하여 능력이 없으면 차라리 잠자코 있으라고 비판하고 싶다.

현재의 보행문화, 통행문화에 문제가 있더라도, 정부로서는 이로 인한 손실을 줄이기 위한 노력에 앞서 차도와 인도(보도)가 구분되지 않은 전국에 산재한 많은 보차비구분도로에서 발생하는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한 대책부터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지방에 가보면 갓길을 걷는 사람들이 빠르게 곁을 지나쳐가는 차량으로 인하여 느끼는 위협이 과연 어느 정도 될 것인지, 그로 인한 생활상의 스트레스는 어느 정도일지 감히 가늠하기 힘든 도로들이 무수히 많다.

이런 위험스런 상황이 정부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장님 정부고, 무능력하며 무책임한데다 낭비벽 심한 정부다. 더 위험한 것은 이런 정부가 전체주의적, 파쇼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위대영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