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발자국통신

‘발자국통신은’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 교수), 이찬수(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전 주독일 대사), 최낙영(도서출판 밭 주간)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경기도학생인권조례의 공포를 맞이하여(정 원 위원)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4 09:59
조회
231

정 원/ 인권연대 운영위원


 

80년대 중반 10월의 어느 멋진 날 노을이 하늘을 붉게 물들일 무렵 어디에선가 애국가가 흘러나옵니다. 길을 가던 사람들은 현 위치에서 태극기를 향해 차렷 자세로 경례를 하고 운전을 하는 사람은 차를 세우고 앉은 채 차렷자세를 취합니다. 80년대 일상적으로 볼 수 있던 국기강하식 장면입니다. 국기에 관한 규정에 의하면 국기강하시간에 국기 강하식을 볼 수 있거나 애국가 연주를 들을 수 있는 모든 옥외의 주민은 현 위치에서 국기를 향해 차렷 자세로 경례를 하고 국기강하식을 볼 수 없는 옥내의 주민들은 차렷자세만을 취하되 옥내에 국기가 있는 경우엔 국기를 향하고 없는 경우에는 애국가가 연주되는 방향을 향하도록 했습니다. 운전하고 있던 사람은 차를 멈추고 앉은 채 차렷자세를 취해야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잘 지키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당시 상황을 개탄한 시민은 “외국인들의 출입이 점점 많아지고 86, 88 국제행사가 있는데 국기강하식 때마다 온 국민이 어디를 가나 걸음을 멈추고 1분 동안 경건한 마음으로 국기에 대한 경의를 표한다면 우리국민의 단결된 애국심을 보는 외국인들의 마음가짐도 달라질 것이라 믿는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습니다(경향신문 1985. 6. 17.자 독자 의견). 2010년 현재의 대한민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80년대 인기가 높았던 “믿거나 말거나”라는 미국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미국인의 관점에서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을 소개하는 내용이었는데 그 프로그램에서 우리나라에 관한 내용을 방송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시아에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가 있다. 그런데 그 나라에서는 밤늦게까지 고등학교에 불이 켜져 있는데 학생들이 늦은 시간까지 공부할리는 없고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다. 더 믿을 수 없는 건 아침 7시 정도까지 학생들이 등교한다는 것이다. 한국 고등학생들은 새벽부터 밤까지 학교에서 공부를 한다는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대충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00374343001_20101006.JPG
지난 5일 오전 경기 수원시 영통구 청명고등학교 교내에서 김상곤 경기도교육감(가운데)과
청명고 학생 대표들이 전국 처음으로 ‘체벌 금지, 강제 야간자율학습·보충수업 금지’ 등을 담은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를 공포하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국기강하식은 폐지되었지만 우리 학생들의 현실은 80년대보다 더 악화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달 5일 경기도 교육청은 전국 최초로 학교 내 체벌금지, 강제 야간자율학습ㆍ보충수업 금지, 두발 복장의 개성 존중 및 두발길이 규제 금지 등 학생 인권 보호를 위한 학생인권조례를 공포하였습니다. 우리 교육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바른 원칙을 세우는 첫 걸음입니다.

벌써부터 반론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성적이 떨어지면 누가 책임을 질 것인지? 교사의 인권은 어떻게 할 것인지? 와 같은 문제제기들입니다. 이런 문제제기들은 여전히 학생을 교육의 객체로만 인식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학교의 강압으로 은폐되어 있는 교육 현장의 문제를 여실히 드러내고 학생과 교사의 건강한 관계를 정립해야만 우리 교육의 문제를 풀 수 있습니다. 이번 학생인권조례가 교육현장에 굳건한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멀지 않은 미래에 학생인권조례에 규정되어 있는 체벌금지, 강제 야간자율학습, 보충수업금지 등의 내용을 보고 이처럼 상식적인 내용을 굳이 학생인권조례로 공포했던 지금의 상황을 “믿거나 말거나”식으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정 원 위원은 변호사로 활동중입니다.